“회사가 동의 없이 촬영”
검은 봉지로 CCTV 가린 타타대우 직원들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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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워 가리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처음 나왔다. 법원은 2심까지도 이 같은 행위를 영업 방해로 봤지만 대법원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고 설치한 CCTV가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효과가 있다면 위법하다고도 봤다. 보안이나 화재 감시 목적으로 설치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기업이 주요 업무 장소나 동선에 CCTV를 설치하려면 노동자의 사전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법정 노동 시간 단축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CCTV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산업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의 없이 설치된 CCTV 가린 것은 정당한 방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023년 6월 29일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국금속노동조합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조합원 3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타타대우상용차는 2015년 10월 군산공장에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을 내보인 노조 측과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회사는 노조 동의 없이 그해 11월 CCTV 시험 가동을 시작하고 회사 소식지에 이 사실을 공지했다.

피고들은 “사전 동의가 없었다”고 항의하면서 CCTV 51대에 수차례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웠다. 검찰은 업무방해죄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1·2심 재판부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각각 벌금 70만원을 매겼다.

1·2심 재판부는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피해자의 CCTV 설치·운영을 통한 이익, 피고인들의 행위 내용, 다른 구제 수단의 존재 등을 고려하면 정당 행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전체 CCTV 중 주요 시설물에 설치된 16대와 출입구에 설치된 3대에 비닐봉지를 씌운 행위는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노동자 다수의 노동 현장과 출퇴근 장면을 찍고 있었다”며 “피고인들의 의사에 반해 개인 정보가 위법하게 수집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또 “CCTV 설치 공사를 시작할 당시 노동자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회사가 주간만이라도 CCTV를 대체할 방법을 찾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사업장에 CCTV를 설치할 때는 노동자들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엔 노동자가 CCTV 촬영을 막아도 형사상 죄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 어려워진 노동자 불법 파업 입증

이 판결 이후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불법 쟁의 행위를 입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법원은 올해 6월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 배상을 청구할 때는 조합원별로 책임 정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중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별로 개별적 책임을 묻는 제3조 내용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다는 평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선 노동자들이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린 채 기물을 파괴하는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며 “법원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판결을 낸 데 이어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것마저 어렵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은 최근 CCTV와 위치 추적 장치 설치 등이 개인 정보 침해인지를 두고 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반도체 전기 검사 업체 테스트테크는 노동자 동의 없이 회사 건물에 CCTV 40여 대를 설치했다가 6월 31일 노조에 고소당했다.

한 화학 업체는 최근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 의무를 준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안전모에 위치 정보 시스템(GPS)을 부착하려고 했다가 노조 반대로 무산됐다.

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법 등 노동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개인 정보 수집을 반대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정보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한국 기업 118곳을 대상으로 개인 정보 처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업의 88.1%가 CCTV를 설치하고 있고 61%가 출입 통제를 위해 생체 인식 장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노동자가 법정 노동 시간을 1분만 넘겨도 민감해 하면서 임금 체불로 회사를 고소하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회사도 노동자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살펴볼 최소한의 권한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
CCTV 소송, 노동자 연이어 승소

기업들은 하급심에서도 CCTV 설치 문제를 두고 노동자 측과 다퉈서 이긴 경우가 많지 않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대법원에서 노동자가 승소한 사례가 추가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다.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용덕)는 2014년 12월 교사 동의 없이 어린이집에 설치한 CCTV를 비닐봉지로 가리도록 지시한 혐의(업무방해죄)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노동조합 지부장 A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 후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로 판결이 확정됐다.

대덕연구개발특구복지센터 산하 공동직장보육시설인 대덕특구어린이집은 2012년 11월 CCTV 21대를 설치했다. 그해 5월 원아 체벌 사건이 발생한 뒤 CCTV를 설치하라는 학부모 등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였다. 어린이집 교사들을 포함한 대덕연구개발특구 진흥재단 노조 측은 “동의 없이 설치됐다”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어린이집 교사들이 A 씨의 지시를 받아 CCTV에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진흥재단 노조 지부장인 A 씨는 2012년 11월 대덕연구개발특구복지센터 산하 공동 직장 보육 시설인 대덕특구어린이집에 교사들의 동의 없이 CCTV가 설치되자 교사들에게 CCTV를 비닐봉지로 가리라고 지시했다.

A 씨와 교사들은 대덕연구개발특구복지센터 측으로부터 고소당한 뒤 업무방해죄로 기소됐다. A 씨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CCTV가 영유아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치된 만큼 업무방해죄로 보호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교사 등의 동의를 받아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에도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CCTV를 설치했다”며 “CCTV에 비닐봉지로 씌우도록 한 것은 어린이집 교사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라고 판단했다.

회사의 CCTV가 노동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줘 업무상 재해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 판결도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함종식 판사는 2008년 4월 전자 부품 제조업체 B사의 노동자 1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사건은 그 후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원심대로 노동자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B사는 2002년 노조의 파업 종료 후 생산 현장 등에 CCTV를 추가로 설치했다. 이에 원고들은 “회사의 감시·통제로 우울증이 생겼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공단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까지 제기한 것이다.

함 판사는 당시 “원고들의 우울증은 쟁의행위 과정에서 겪은 사업주와의 갈등, 파업 이후 CCTV 설치 등을 통한 감시와 통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