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통해 균형안 마련해 내는 게 정치의 요체인데, 지금은 오로지 치킨 게임뿐

홍영식의 정치판
지난 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의 본회의 부의의 건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지난 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의 본회의 부의의 건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6월 30일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해 퇴장한 가운데 일방적으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했다. 민주당은 7월 임시 국회 본회의 상정을 거쳐 처리하기로 하고 대통령실은 재의(거부권) 요구를 시사했다. 이렇게 된다면 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셋째 충돌 국면을 맞는다. 앞서 야당이 주도해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야 간 이견이 큰 법안이 국회 상임위 과정부터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를 통한 야당의 일방적 처리→본회의 직회부→상정→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재표결→법안 폐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은 타협이 전혀 작동이 안 되는 정치 부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든 타협을 통해 균형안을 마련해 내는 게 정치의 요체인데 지금 정치권은 그런 과정이 사라졌고 오로지 극단적 대결뿐이다.

무조건 반대하는 극단으로 정치 피로도 극에 달해

여야 모두 책임이 있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툭 던져 놓아 버리고 여권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해 버리면서 정치는 실종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조건 반기 드는 극단적 행태로 인해 국민의 정치 피로도는 극에 달하고 정치 혐오만 팽배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는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는 바탕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무한 충돌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합의점을 찾기 위해 치열한 논리 공방과 설득을 벌이는 것 자체가 정치의 과정인데 지금 한국 정치판은 모 아니면 도식, 극단만 횡행할 뿐이다.

악순환의 시작은 양곡관리법 개정안부터다. 양곡관리법안의 주요 내용은 쌀이 예상보다 3~5% 이상 더 생산되거나 가격이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했다. 다만 개정안 시행 이후 쌀 재배 면적이 증가한 부분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민주당은 애초 쌀 초과 생산량 3% 이상, 전년 대비 5% 이상 쌀값 하락 시 정부가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당이 반발하자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 끝에 수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권은 정부의 매입 비용 부담, 농업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을 들어 정부의 쌀 초과 생산량 의무 매입에 반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 제정안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간호법의 쟁점은 간호사 역할을 의사 진료 보조를 넘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확대하고 활동 영역도 의료 기관에서 지역 사회로 넓힌 것이었다. 의사들은 고령화로 인해 돌봄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들의 단독 개원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반대하면서 첨예한 갈등을 불렀다. 간호사법은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윤 대통령은 5월 16일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5월 30일 본회의 재표결에서 최종 부결됐다. 민주당이 간호법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의사(14만 명)보다 3배 이상 많은 46만 명의 간호사의 표를 얻겠다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 타자는 노란봉투법이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2022년 8월 독 점거 파업을 벌인 하청 노조 집행부 5명에게 470억원가량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자 정의당과 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사용자 범위를 확대했다.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 및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했다. 하청 근로자는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한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노동 쟁의에 대한 손배 청구 제한 조항도 논란이다. 기존에는 공동으로 불법 파업을 한 경우 책임을 일괄적으로 인정한 것을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정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 쟁의의 대상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되면 임금 등 이익 분쟁만 가능했던 쟁의 행위가 근로 조건과 같은 권리 분쟁까지 포괄하게 된다. 야당은 노란봉투법이 노동권의 정당한 보장을 담보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권은 노란봉투법이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고 노조원의 손배를 차단해 명백한 불법 파업까지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대기업의 경우 하청 업체가 수십 개에서 수천 개가 있는데 교섭 창구를 원청으로 단일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 절차에 들어가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해 맞대응할 계획이다. 또 개정안이 통과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대통령실도 “위헌 요소가 심각하다”며 거부권을 시사했다.

“대통령에게 ‘불통, 독불 장군’이미지 씌우려는 전략”

여야가 주요 법안을 두고 이렇게 도돌이표처럼 충돌하는 속셈은 뭘까. 민주당은 내년 총선 전략과 연계돼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수의 힘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불통, 독불 장군’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회가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건너뛰고 ‘기승전 법안 처리’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다수결의 원칙은 반대 의견을 밝힐 기회를 충분히 주고 상호 토론과 설득 과정을 통해 다수결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이를 원천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기 쪼개기를 통한 무제한 토론 봉쇄, 안건 조정 제도 무력화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 다수 세력의 일방 통행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21대 국회에서는 안건조정위의 의결이 지나치게 빨라 숙의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며 “이는 소수 세력에 의견 개진 기회를 보장하고 숙의를 통한 안건 심의를 목적으로 하는 안건조정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민주당이 독불 이미지를 뒤집어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여권은 너무나 무력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엄연한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는 바탕 아래 거대 야당을 상대할 정교한 전략이 전무하다시피 한 게 현주소다. 원활한 정국 운영을 위해선 좋든 싫든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상을 통해 중재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여당이 여소야대 정국에 맞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적극 나서 야당과 대화, 타협을 통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국정이 돌아가는데 오로지 마이웨이뿐이다. 국정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국가의 통치자로서만 자신을 인식하고 정치를 종속 변수로 생각한 결과라고 한 정치 평론가는 지적했다. 거부권은 대통령이 입법부 독단을 막기 위한 최후 보루인데 지금은 정치적 대응을 위한 수단처럼 돼 버렸다. 여권과 야당의 이런 극단적인 간극은 내년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