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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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곳곳에서 흘러 넘쳤던 ‘차이나 머니’가 미국과 유럽을 떠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하면서 서방 투자를 급격하게 줄이고 있는 것이다. 서방에서 후퇴한 차이나 머니가 동남아와 중동, 남미의 공장, 광산·에너지 프로젝트로 흘러가고 있다. 자원 패권 확보를 위해 자원부국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비서구권 동맹을 통해 지정학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월 23일 유엔(UN)을 인용해 지난해 중국의 해외직접투자(FDI)가 1465억 달러로 1년 전(1788억 달러) 보다 18.1%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해외 투자가 정점을 찍었던 2016년(1961억 달러)과 비교하면 25.3% 감소한 수치다.

WSJ는 2017년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갈등이 최근 들어 기술패권 경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 대(對) 서방 투자를 크게 줄인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중국의 해외 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8%포인트, 유럽은 11.8%포인트 줄었다.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주요 7개국(G7)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2016년 120건에서 2022년 13건, 투자금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840억 달러에서 74억 달러로 줄었다고 밝혔다. 중국의 전체 해외투자금에서 G7이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에서 18%로 감소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 투자자들은 뉴욕의 고급 주택과 5성급 호텔부터 스위스 화학기업, 독일 거대 로봇기업에 이르기까지 대형 거래를 체결하곤 했었다. 중국 자본에 대한 서방의 적대감이 커지면서 중국의 투자가 서구에서 후퇴하면서 이제 ‘차이나 머니가 흘러 넘치던 시대는 끝났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이 반도체 수출 통제, 대만 해협 문제 등에 걸쳐 대중 포위망을 점점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의 경제 회복 둔화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수 경기 진작 필요성이 커지면서 중국 정부도 해외 투자를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 루이스 쿠이즈 S&P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3~5년간 중국의 해외투자가 상당히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며 "대체로 중국이 해외 선진 경제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AEI 집계 결과 중국이 2016년부터 미국, 유럽 투자를 줄이는 동안 동아시아 투자는 17.8%포인트 상승했다. 중동·북아프리카와 남미 투자는 각각 14.7%포인트, 3.3%포인트 올라갔다. 세계 다른 지역과의 교역과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과의 관계 악화에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의 동맹을 견고히 하는 한편, 재생에너지·전기차 등 미래 성장 동력을 뒷받침하는 자원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실제로 중국 국영 에너지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는 지난해 브라질에 19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동차 제조사인 그레이트 월 모터와 BYD는 태국에 투자했다. BYD는 이달 브라질 자동차 공장에 6억 달러 이상을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인도네시아에 투자액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올해 중국 전체 투자액의 17%를 유치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해 중국의 아시아·남미·중동 투자액은 총 24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S&P 글로벌 레이팅스의 수석 아시아태평양 이코노미스트인 루이스 쿠이스는 " 이런 흐름이 향후 3~5년 동안 많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며 “대신 중국은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분야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재편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에 이르는 신흥 시장 투자를 배가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