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값 30%까지 치솟은 팁…뜨거운 노동 시장으로 대학 진학률도 떨어져

[글로벌 현장]
미국 뉴욕의 식당 앞에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의 식당 앞에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선 미국 중앙은행(Fed)이 장기간 이어 온 긴축 기조를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하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학자와 애널리스트들이 ‘인플레이션 종료’를 선언하지 못하는 것은 강력한 노동 시장 때문이다. 미국 노동 시장에서 임금 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 직종의 임금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향후 물가상승률을 다시 자극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 임금 상승분을 고객에게 전가
뜨거운 美 노동 시장 이면엔 팁 문화와 긱 이코노미 [글로벌 현장]
미국 노동부는 7월 7일(현지 시간) 고용 상황 보고서를 내고 6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보다 20만9000개 늘었다고 밝혔다. 30만6000개였던 5월 일자리 증가 폭보다 훨씬 둔화한 수치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24만 개를 밑도는 수준이기도 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부 공공직에서 가장 많은 6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이 밖에 보건의료 부문에서 4만1000개, 사회복지 부문에서 2만4000개, 건설 부문에서 2만3000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실업률은 3.6%로 최근 7개월 사이 최고치였던 5월(3.7%)보다 살짝 내려갔다. 일자리 증가 폭도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수준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매달 필요로 하는 일자리 증가 폭은 7만∼9만 개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보다 0.4% 올라 시장 전망치(0.3%)를 웃돌았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4.4% 증가해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2.0%)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사업체들이 팁 문화를 장려함으로써 고용 부담을 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고용을 늘리지 못하지만 직원이 손님에게서 팁을 받도록 허용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인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 이전 미국 식당에선 통상 음식값의 10% 수준을 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30%까지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 23일(현지 시간) ‘왜 사업체들은 팁 요청을 멈추지 못할까’라는 분석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선 주스 가게, 가전제품 수리 업체를 비롯해 식물을 가꿔 파는 업체까지도 고객에게 팁을 요구하고 있다. 급여 제공 업체 구스토가 30만 개의 중소기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월 현재 비레스토랑 레저·접객업에 종사하는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시간당 평균 1.35달러의 팁을 받았는데 이는 2019년의 시간당 1.04달러보다 30% 증가한 금액이다.

미국의 외식 산업에서 노동자에게 주는 팁 비용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확 늘었다. 전염 가능성으로 식당의 고객 서비스 직원이 적어지면서 이들에게 주는 고객들의 팁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기업들이 다른 이유에서 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제학자인 셰헤자데 레만 조지워싱턴대 국제금융학 교수는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팁 의존도가 높다”며 “미국 기업들이 직원 급여에 대한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직원이 팁을 받으면 기업들은 임금을 올리지 않고도 임금을 인상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조너선 모덕 뉴욕대 공공정책 및 경제학 교수는 “기업들이 여전히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임금에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섣불리 임금을 올렸다가 경기 침체로 직원을 해고해야 할 시점이 오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고공 행진하는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느끼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팁 문화에 대한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금융 서비스 회사인 뱅크레이트가 지난 5월 약 24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는 기업이 팁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더 나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팁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뜨거운 노동 시장 때문에 미국의 대학 진학률마저 떨어지고 있다. 굳이 비싼 학비를 내고 대학에 가는 것보다 일찍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미국에서 최근 고교를 졸업한 16∼24세 연령층의 대학 진학률이 지난해 62%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66.2%에서 뚝 떨어졌다.

대학 진학률이 떨어진 것은 학위가 필요 없는 청년층의 일자리가 급증해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레스토랑과 테마파크 등 레저·접객업의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레스토랑 종업원의 시간당 임금 중간 값은 14달러로 미 연방정부 최저임금의 거의 2배에 육박했다.

확산하는 긱 이코노미

일부 기업들은 구인난과 높은 임금 상승률을 ‘긱 이코노미(gig economy)’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긱 이코노미는 기업에서 그때 발생하는 업무 수요에 따라 계약직·프리랜서 형태로 사람을 초단기 고용하는 경향이 커진 경제 현상을 말한다. 과거 차량 공유 업체·배달업체 위주였던 노동 시장 트렌드가 전문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시카고대에서 세금 신고를 통해 소득을 추적한 논문에 따르면 플랫폼 기반의 긱 워크를 통해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하는 사람의 수가 최근 몇 년간 100만 명에서 거의 5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또 지난 2월 우버는 2022년 4분기에 운전사와 음식 배달 노동자가 540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도어대시·그럽허브·홉스킵드라이브·인스타카트·리프트·십트·우버를 대표하는 무역협회인 플렉스는 지난 12개월 동안 23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대형 병원 그룹인 애드버킷헬스케어와 프로비던스 등은 필요한 시간대의 간호사 인력 보충을 위해 시프트키·케어레브 등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간호사들이 선호하는 시간대 급여를 낮추고 야간·휴일 근무에는 수당을 높이는 식으로 병원과 간호사를 매칭해 주고 있다. 병원으로선 불필요한 인건비 지출을 줄이고 갑자기 생긴 빈자리를 채워 인력 운용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공중 보건 전문 저널 헬스어페어에 따르면 2020~2021년 미국 내 간호사 고용 건수는 10만 명 이상 감소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40여 년 동안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간호사들의 인건비도 급등했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 활용으로 최근 인력난이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있다는 평가다. 프로비던스는 1년 전 ‘긱 간호사’를 추가해 간호사와 기타 의료 직종에 1만3000개의 교대 근무 일자리를 채웠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긱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미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긱 노동자를 플랫폼 업체 직원으로 간주해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동 규칙을 바꿀 것을 예고했다.

뉴욕(미국)=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