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과 ‘레토르트 파우치’에서 2차전지 소재와 사업적 연결 고리 찾아
‘배터리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 목표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동원그룹 본사 3층에는 2021년 말부터 특별한 연구·개발(R&D) 사무소가 하나 운영되고 있다. 참치 통조림 회사로 유명한 동원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2차전지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소다. 현재 연구소에는 40여 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며 제품 개발이 한창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그룹 본사에 연구소를 마련했다”며 “이를 앞세워 동원참치 캔 등을 생산하는 포장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를 전기차의 필수품인 2차전지 소재 개발 1등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목표를 세웠다”고 강조했다.

가시적인 성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숱한 R&D 끝에 2022년부터 한국 최고 수준의 초고강도 양극박 개발에 성공해 현재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한 상태다. 국내외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에 이를 공급하며 매출을 키워 나가고 있다.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 정확한 매출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내년 전체 매출의 약 9%가 2차전지 소재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참치 캔과 같은 포장재 전문 계열사에서 미래 유망 산업으로 주목받는 2차전지 소재 전문 기업으로 성공리에 변신 중인 동원시스템즈의 비밀을 파헤쳐 봤다.
“참치캔 회사의 혁신”…2차전지 소재 다크호스 떠오른 동원시스템즈



1977년 설립된 동원시스템즈는 한국 1위 포장재 기업이다. 동원시스템즈는 당초 카메라 조립 회사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렌즈와 현미경·카메라 등을 만들어 팔던 회사였다. 그러다 1988년 포장 용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참치캔과 양반김 등 동원의 식품 사업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면서 식품 포장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자체 생산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동원은 1996년 과자와 식품을 담는 연포장재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인스턴트식품의 포장재인 레토르트 파우치 사업에도 진출하며 명실공히 포장재 사업 1등 기업으로 도약했다.

페트(PET)·유리병·알루미늄·종이·산업용 필름 등 거의 모든 소비재의 포장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를 통해 거둬들이는 연매출만 1조4000억원(2022년 기준)에 달한다.

이런 동원시스템즈는 최근 들어 배터리 캔과 알루미늄 양극박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소재 분야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며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비결은 간단하다. 식품 포장재인 ‘캔’과 ‘레토르트 파우치’에서 2차전지 소재와의 사업적 연결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참치캔을 만들면서 터득한 캔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전해액 등의 배터리 내용물을 담는 ‘원통형 배터리 캔’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확인하고 시장에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연쇄적 혁신’ 전략 앞세워 신사업 진출
이런 역량을 하루아침에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권그룹 하면 생각나는 게 동원참치 통조림이다.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며 한국 시장에서 약 40년간 독보적 1위 자리를 차지해 온 캔참치의 대명사다. 하지만 기후 변화에 따른 어획량 감소 등으로 경영 환경이 계속 급변했다.

이에 동원의 김재철 명예회장은 꾸준히 신사업을 키워 나가라는 경영 철학을 갖게 됐다. 동원그룹이 1차 산업인 수산업에서 시작해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으로 끊임없이 사업을 넓힌 배경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업 확장은 지난해 동원그룹이 창사 이후 최대 매출(9조263억원)을 달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동원이 신사업마다 성공을 이뤄낸 배경에는 이른바 ‘연쇄적 혁신’ 전략이 자리한다. 방식은 간단하다. 본업을 파고들어 혁신의 고리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 신사업과 연결 짓는다.

동원시스템즈의 2차전지 소재 신사업 또한 이 같은 ‘연쇄적 혁신’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원시스템즈가 지난해 개발한 한국 최고 수준의 초고강도 알루미늄 양극박은 오랜 기간 참치 캔에 사용되는 알루미늄박 제조 과정에서 터득했다.

초고강도 알루미늄 양극박은 당겼을 때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인 연신율을 유지하면서 인장 강도를 크게 개선한 제품이다. 배터리 용량이 늘어날 때 생기는 균열을 해결할 수 있어 한국 주요 배터리 제조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원통형 배터리 캔 생산 모습. 사진=동원시스템즈
원통형 배터리 캔 생산 모습. 사진=동원시스템즈
또한 식품 연포장재와 레토르트 파우치를 생산하며 알루미늄을 얇고 고르게 펴는 기술을 확보한 동원시스템즈는 이를 활용해 배터리 내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알루미늄 양극박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공격적인 M&A로 선제적 투자과감하면서도 공격적인 인수·합병(M&A)도 빼놓을 수 없다. 동원그룹은 신사업을 염두에 두고 2010년을 기점으로 대한은박지·한진피앤씨·테크팩솔루션 등 포장재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겉으로 보기엔 포장재 회사를 인수해 외형을 키우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이 회사들을 인수한 진짜 이유는 신사업 진출 때문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2012년 단행한 대한은박지 인수가 대표 사례다. 대한은박지는 알루미늄 압연박과 가공품을 제조하는 알루미늄 부문 전문 기업이다. 동원시스템즈는 대한은박지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알루미늄 포장재 R&D 부문은 물론 향후 2차전지 소재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M&A를 진행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언젠가는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이렇게 되면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알루미늄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치캔 회사의 혁신”…2차전지 소재 다크호스 떠오른 동원시스템즈
당시 전기차 시장은 이제 막 꽃을 피우려고 하는 태동기였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콘셉트카를 하나둘 선보였고 LG화학과 삼성SDI 등 한국 화학 기업들은 2차전지 사업을 막 검토하던 단계였다. 이때 동원도 미래를 준비하며 대한은박지를 인수한 것이다.

과감한 선제 투자는 전기차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며 빛을 봤다. 동원시스템즈는 2016년부터 2차전지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부품인 알루미늄 양극박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들어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배터리 시장도 급성장했고 이에 동원은 이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 또 한 번 M&A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1년 인수한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업체 엠케이씨(MKC)다. 2002년 설립된 엠케이씨는 원통형 배터리 캔을 전문으로 생산해 온 업체로, 금형 설계부터 드로잉과 프레스, 표면 처리까지 배터리 캔의 모든 공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동원시스템즈는 참치 캔 제작 기술과 엠케이씨의 배터리 캔 생산 공정을 접목하면 시너지를 낼 것으로 판단했고 결국 2021년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2차전지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소까지 설립하며 R&D를 단행했고 2022년 말 초고강도 알루미늄 양극박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동원시스템즈의 목표는 ‘배터리 솔루션 기업’으로의 진화다. 목표 달성을 위해 동원시스템즈는 충남 아산에 약 706억원을 투자해 신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동원시스템즈가 양산 중인 국내 최고 수준 초고강도 양극박.   사진=동원시스템즈 제공
동원시스템즈가 양산 중인 국내 최고 수준 초고강도 양극박. 사진=동원시스템즈 제공
신공장이 완공되면 2만1700(지름 21mm, 높이 70mm) 규격 배터리와 4680 규격(지름 46mm, 높이 80mm)의 원통형 배터리 캔을 연간 약 5억 개 이상 생산할 수 있게 된다. 4680 배터리는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표준 규격으로 채택하기로 하면서 업체 간 개발 경쟁이 치열한 소재다.

이와 함께 최근 351억원 규모의 양극박 소재 생산 라인을 추가로 증설하기로 결정하는 등 2차전지 소재 제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2차전지의 또 다른 형태인 셀 파우치 개발도 진행 중”이라며 “2차전지 소재 분야의 최고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