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프랜차이즈 사업 철수…가맹점주에게 안내문 전달
지난해 말에는 물티슈 사업·영유아 식품 사업 철수 결정
시장 전망 부정적이거나 수익성 개선 어려운 사업 정리 나서

LG생활건강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정리한다. (사진=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정리한다. (사진=LG생활건강)
중국 판매량 감소, 면세 침체 등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린 LG생활건강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써내며 승승장구했지만 2021년 말부터 해외 실적이 크게 악화, 지난해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여기에 원가와 고정비 증가 문제까지 겹치며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손보기로 했다. ‘포트폴리오 다이어트’다. 지난해 말부터 시장 전망이 부정적이거나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은 철수하고 있다. 반면 잘하는 부문은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지난해 말 18년 만에 수장이 바뀌면서 이 같은 변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아직 성과는 나지 않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3년 만에 ‘프랜차이즈 사업’ 철수, 이유는 ‘힘들어서’LG생활건강은 최근 ‘프랜차이즈(가맹)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네이처컬렉션과 더페이스샵 점주들을 대상으로 계약 내용 일부를 변경한다는 설명문을 전달했다. 기존의 ‘가맹 계약’을 ‘물품 공급 계약’으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네이처컬렉션은 더페이스샵을 포함해 LG생활건강의 일반 화장품(럭셔리 제외)을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물품 공급 계약은 제품만 공급받는 것으로, ‘가맹 계약’에 비해 자율성이 크다. 계약이 변경되면 LG생활건강이 공급하는 브랜드와 제품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매장에서 자유롭게 타사 제품을 조달해 판매할 수 있다. 점주들의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향후 2년간 현재의 프로모션과 정책 운영 방식은 유지한다. 기납부한 가맹비는 전액 환급하고 간판 교체와 인테리어 개선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계약 전환 대신 사업 철수를 선택해도 된다. 가맹점 유지가 힘든 경영주들에게는 타 업종 전환을 비롯해 합리적인 수준의 지원과 보상도 지원할 계획이다. 재고 반품, 임대료 지원, 가맹비 환급, 보상금 지급, 인테리어 잔존가액 보상 등이 핵심이다. 보상금은 최근 1년(2022년 6월 ~2023년 5월) 기준 매장의 월평균 실매출액 20%를 기준으로, 6배의 금액을 지급한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올리브영과 같은 멀티 편집숍이 인기를 끌면서 ‘단일 브랜드숍(일명 로드숍)’들은 존폐 위기”라며 “이번 결정은 시장 변화를 고려해 점주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이 가맹 사업을 철수하는 것은 13년 만이다. 앞서 LG생활건강은 2010년 당시 한국 1위 중저가 로드숍 업체인 더페이샵을 약 3400억원에 인수, 가맹 사업을 시작했다. 더페이스샵의 기존 인력과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연구·개발(R&D) 역량을 접목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멀티 편집숍 올리브영의 매장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단일 브랜드를 판매하는 LG생활건강 가맹점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리브영 가맹점은 2015년 552개에서 2017년 1010개로 늘어났고 지난해 1289개를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 후의 신규 라인을 출시했다. (사진=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 후의 신규 라인을 출시했다. (사진=LG생활건강)
“돈 안 돼? 철수!” 달라지는 LG생활건강이번 결정은 시장 변화에 따른 대응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가맹 사업 현황 통계 자료’에 따르면 화장품 업종 가맹점 수는 2018년 3407개에서 2021년 1588개로 크게 줄었다. 전체 가맹점 수가 크게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같은 기간 가맹점의 평균 연매출은 4억3000억원에서 2억원으로 감소했다.

화장품 가맹점의 개점률은 1.0%로 주요 도소매 업종 가운데 가장 낮게 나타난 반면 폐점률은 28.1%로 가장 높았다. 또한 가맹점을 100개 이상 운영하는 브랜드는 2019년 이후 지속 감소하고 있다. 가맹점 100개 이상을 보유한 대형 브랜드는 2020년 8개에서 2021년 6개로 줄었고 지난해 4개가 됐다. 아리따움(650개), 이니스프리(400개), 토니모리(143개), 미샤(125개) 등이다.

공정위는 “화장품 업종은 온라인 판매의 확대, 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가맹점 평균 매출이 2018년 이후 지속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LG생활건강의 가맹점이 가장 많았을 때는 2017년으로 600여 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약 400개로 줄었다. LG생활건강은 가맹점의 실적 부진이 구매 편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근본적인 구매 패턴 변화라고 판단, 가맹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진행해 온 물티슈 사업을 철수했다.

일부 제품에서 살균 보존제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혼합물이 검출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판매 중지 명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 신뢰도가 하락했다. 물티슈 사업의 매출은 연간 기준 80억원 수준으로, LG생활건강 전체 매출(7조1858억원)에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 자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유아 브랜드 베비언스의 사업 일부를 종료, 영유아 식품 사업을 정리했다. 베비언스는 LG생활건강이 2012년 내놓은 영유아 전문 브랜드로, 아기(베이비)와 과학(사이언스)의 합성어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차세대 먹거리로 분유 사업을 택했지만 저출산 기조로 수요가 꾸준히 감소하고 매출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자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시장 변화에 따른 판단”이라고 밝혔다.

베비언스의 주요 제품인 ‘베비언스 킨더밀쉬’와 ‘카브리타 산양분말우유’ 등은 지난해 말까지만 생산됐고 올해 2월 공식 홈페이지 ‘베비언스몰’도 종료했다. LG생활건강은 베비언스를 스킨케어 브랜드로만 육성할 예정이다.

반면 중요한 사업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특히 LG생활건강의 대표 브랜드인 ‘후’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40대 여성을 위한 신규 라인 ‘로얄 레지나’를 지난 6월 론칭하고 배우 안소희 씨를 로얄 레지나 한정 모델로 기용했다.

로얄 레지나 라인은 후 브랜드 최초로 리필이 가능한 패키지를 선보이는 등 친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 소비(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포기하지 않는 소비 성향)’ 트렌드를 집중 공략했다. LG생활건강은 후의 기존 제품과 제품 디자인부터 모델 전략까지 모든 부분을 차별화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성 고객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 숨에는 가수 겸 배우 수지 씨를 모델로 기용하며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만 당장 실적이 개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원가와 고정비 등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주요 브랜드의 리빌딩에 나서며 마케팅 비용까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 사업은 중국 시장의 소비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북미·일본·동남아 등에서 유통 기반을 확대하고 있지만 매출 규모가 당장 늘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콘텐츠가 관심을 받으면서 일본·동남아에서 뷰티 제품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는다”며 “시장 자체가 좋지 않아 당장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