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회장에 낙하산이 오지 않는다고?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누가 될까?

금융계에 ‘큰 장’이 섰다. 리딩 금융그룹인 KB금융그룹이 차기 회장 선출 작업을 시작해서다. 더욱이 윤종규 회장의 3연임 임기 만료다.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작은 사뭇 산뜻하다. 7명의 사외이사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렸다. 내·외부 인사 10명씩 20명의 후보도 추렸다. 6명(8월 8일)과 3명(8월 29일)으로 압축한 뒤 9월 8일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고 한다. 그 사람이 11월 20일 임기가 끝나는 윤 회장의 뒤를 잇게 된다.

그러면 과연 누가 될까? 가장 강력한 후보는 윤 회장이었다. 본인이 결심하면 4연임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윤 회장은 그러나 4연임을 포기하고 임기가 끝나면 용퇴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윤 회장 답다.

윤 회장이 공식적으로 빠짐에 따라 내부 인사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내부 인사 중에는 허인·양종희·이동철 등 동갑내기(1961년생) 그룹 부회장 3명과 이재근 KB국민은행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등이 꼽힌다. 다들 뚜렷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은행장 경험, 재무통, 인수·합병(M&A) 전문가, 현직 은행장, 자본 시장 귀재 등 누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그동안의 경력과 행보, 감독 당국의 징계 여부 등 걸림돌도 있다. 하지만 장점이 단점을 덮을 만한 역량을 이들은 보여 줬다. 개인적으로 만나봐도 그랬다.

그러다 보니 외부 인사가 낙점될 가능성은 쑥 들어갔다. 최종 후보 3명에 외부 인사 1명이 포함되겠지만 어디까지나 ‘들러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간혹 지난 대선 때 캠프에 몸담았던 금융권 인사와 모피아들이 얘기되기는 한다. 하지만 신한금융 회장과 우리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서 당시 회장의 3연임에 반대는 했지만 후임 회장을 콕 찍어 밀지는 않았던 감독 당국의 행태를 보면 낙하산 인사가 내려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다. 하나는 MB정부 시절 ‘4대 천왕’처럼 막강한 사람이 회장 자리를 탐낼 경우다. 잡음이 많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다른 하나는 내부 후보 간 균열이다. 5명의 후보(윤 회장은 논외로 치자)로선 마지막 기회다. 평생을 은행원으로 보낸 3명의 부회장에겐 특히 그렇다. 은행원 생활 마지막을 리딩 금융그룹 회장으로 마무리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것도 없다. 인품이나 능력으로도 꿀릴 게 없다.
이런 절박감과 자신감이 넘치다 보면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자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뭐, 여기까지도 봐줄 수 있다. 이른바 ‘외부의 힘’을 업으려고 할 때가 가장 큰 문제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 판은 깨진다. 이 틈을 외부 인사가 비집고 들어설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9년 전인 2014년으로 돌아가 보자. 임영록 당시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의 ‘기세 싸움’이 대단했다. 그해 8월 KB금융은 1박 2일의 경영진 템플 스테이를 통해 봉합에 나섰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행장이 첫날 귀경해 버려 상처만 헤집어 놓은 꼴이 됐다. 두 사람은 결국 그해 9월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도 퇴진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당시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이었던 윤 회장(윤 회장은 그전에 KB국민은행 부행장으로 3년, 금융지주 부사장으로 3년 재직했다. 엄밀히 따지면 내부 출신이 아니다)에게 돌아갔다. 역설적으로 윤 회장같은 탁월한 사람이 회장에 선출된 것이 KB금융엔 행운이었지만 말이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결국 외부 인사가 차기 회장 자리를 차지할지 여부는 내부 후보들에게 달렸다. 2008년 출범한 KB금융의 역대 회장 4명(황영기·어윤대·임영록·윤종규)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