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한국경제
서울 동대문구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한국경제
“코로나19 걸려도 일단 출근하는 게 기본 수칙이에요. 하루 정도는 연차를 소진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지만 일단 마스크 쓰고 출근하는 게 룰입니다.”(A 증권사 대리)

“작년에는 회사에서 마른기침만 해도 죽일 놈이었는데 요즘은 코로나19에 확진돼도 자기 연차를 써야 돼 3일 쉬면 오래 쉬는거죠.”(B 유통회사 과장)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하루 평균 5만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지난 6월부터 ‘7일 격리 의무’를 ‘5일 격리 권고’로 바꾸면서 기업들의 방역 수칙도 제각각 이뤄지고 있다. 격리 의무 해제,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 등 방역 규제가 풀렸고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이 줄어든 영향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기업마다, 부서마다 방역 수칙이 달라 확진되더라도 눈치를 보며 출근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몸살 감기 걸렸는데 재택한다고 해도 되느냐”는 질문과 “코로나19 걸리면 각자 회사에서는 며칠씩 쉬느냐”고 묻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한 간호사는 “병원에서 3일만 쉬고 4일째부터 나오라고 하는데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글을 썼다.

기업 경영진도 난감하다. 여름휴가를 가는 구성원이 늘어난 와중에 코로나19 사태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며 연차를 쓰는 직원들이 늘었다.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6월 정부 발표와 동시에 의무 사항이던 병가를 폐지하고 재택근무나 개인 연차 소진으로 등급을 내렸지만 확진자가 늘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선 정부 지침에 따르면서 부서별로 개인의 증상이나 심각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인지 독감인지 냉방병인지 몰라 불안”
“아픈 건 똑같은데 출근?”…코로나19 재확산에 직장인들 불만
정부가 6월 ‘의무 격리’를 해제하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이 조치를 따랐다. 삼성전자는 기존 사흘간 주어졌던 의무 격리를 완전 해제하고 확진자는 자율적으로 3일간 병가를 사용해 쉴 수 있게 했다. 출근하면 5일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고했다.

현대차·기아는 코로나19 관련 유급 휴가를 5일에서 3일로 축소했지만 심각도에 따라 유연하게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한화는 6월 이후 병가를 없애고 확진 시 재택근무 또는 개인 연차 사용으로 지침을 변경했다.

롯데 역시 이전까지 병가 또는 재택근무(지원금 수령 가능)를 방역 지침으로 세웠다가 6월부터 재택근무 또는 개인 연차 사용으로 지침을 변경했다. 하지만 이는 권고 사항일 뿐 대부분의 기업이 계열사별·부서별 자율적인 지침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허용되는 대기업은 그나마 낫다. 증권가는 대부분 마스크 착용 후 출근 또는 개인 연차를 소진해야 한다. 회사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보니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것도, 개인 연차를 소진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구조다.

증권사에 다니는 최예나(가명) 씨는 “우리 층에 50명 넘게 있는데 마스크 쓴 사람은 2명”이라며 “여기저기서 기침을 해대는데 코로나19인지 독감인지 냉방병인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 확진자 이미 7만 명 넘었을 것”그런데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하루 6만 명대로 올라섰다. 재유행했던 지난 1월 이후 7개월 만이다. 8월 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1주일 동안 집계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5만2716명이다.

하루 평균 5만388명으로 직전 1주일(4만5524명)보다 10.7% 늘었다. 6월 말 이후 6주 연속 증가다. 특히 8월 2일 신규 확진자는 6만4155명으로 1월 10일(6만19명) 이후 약 7개월 만에 6만 명을 넘었다.

1월만 해도 ‘7일 격리’가 의무였던 때라 증상이 의심되면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6월 1일 격리 의무 해제 이후에는 검사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져 ‘숨은 감염자’ 규모도 이전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신규 확진자의 절반이 재감염자였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7월 3주 주간 확진자 중 재감염 추정 사례 비율은 45.6%였다. 최근 6개월 동안 재감염자의 97.2%는 오미크론이 우세하던 2022년 1월~2023년 1월 최초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사를 받지 않은 숨은 감염자들까지 합하면 하루 확진자는 이미 7만 명 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엄중식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는“코로나19에 대한 지침은 된다 안 된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며 “지난 3년 동안 여러 번의 유행과 변이를 통해 사회적인 대응 체계나 의료 대응 체계를 갖췄고 백신 접종을 통해 중증 환자나 사망자를 줄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유행 양상을 인위적으로 컨트롤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검사·치료비 자부담은 연기 유행 증가세가 이어지자 방역 당국은 코로나19 법정 감염병 등급 조정(2급→4급)을 잠정 연기했다. 방역 당국은 감염병 등급을 하향하며 유전자 증폭(PCR) 검사 및 신속 항원 검사(RAT)를 유료화하고 치료비도 자부담 원칙(위중증 환자 제외)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다시 겨울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이를 연기했다. 전문가들은 등급 하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다. 검사비가 유료화되고 치료비가 자부담으로 바뀌면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검사를 받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이 4급이 되면 확진자 전수 조사도 표본 조사로 바뀐다. 의료계에선 확진자 전체 규모를 정확하게 모르면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최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 청사에 방문해 “우세종인 XBB 변이에 대한 국민 면역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국민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등급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코로나19 등급 조정을 연기하면서 “유행·방역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한 후 전문가 자문을 거쳐 종합적이고 신중한 검토 후 조정 계획을 다시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으로 중증화율·치명률이 떨어진 만큼 기업들의 방역 지침 자율성을 보장하되 고위험군 보호에 신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엄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이 떨어진 만큼 정부가 예전처럼 의무 격리와 마스크 의무 착용 등 방역 지침을 강화하더라도 국민 개개인이 이를 이행할 가능성은 낮다”며 “의료 대응 체계 확충에 집중하고 고위험군과 중증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