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글로벌 경제 지도가 바뀐다, 기후경제학 ]
펄펄 끓는 지구…글로벌 경제 지도 바꾼다 [기후경제학]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났다. 끓어오르는 ‘지구 열대화’ 시대가 도래했다(The era of global warming has ended ; the era of global boiling has arrived).”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7월 27일 열린 브리핑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최근 유럽연합(EU) 기후 변화 감시 기구가 7월 중순까지의 지구 온도가 역대 최고라는 관측 결과를 발표한 직후 나왔다.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더 이상 미래의 예측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끓어오르는 지구는 단순히 조금 더 더운 여름을 지내게 됐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세계적으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 극심한 고온은 공장 기계를 더 빨리 마모시키고 강철을 더욱 쉽게 휘어지게 만든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살인적인 폭염에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농산물 가격도 뛰어오르고 있다. 농업과 같은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은 물론 반도체와 관광 산업에도 그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 지도를 바꾸고 있는 ‘지구 열대화’를 일곱 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1. "온난화 시대 끝, 열대화 시대 시작"
섭씨 영상 17도. 7월 3일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NCEP)가 발표한 세계 평균 온도다. 장비를 이용해 기록을 시작한 19세기 말 이후 가장 높다. 그전까지 최고 기록은 2016년 8월 섭씨 영상 16.92도였다. 지난 7년간 깨지지 않던 최고 기온이 올해 깨졌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지구 온난화’가 지목됐다. 물론 ‘지구 온난화’가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날씨는 언제든 변한다. 올여름 무더위가 유독 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 무더위 원인이 정말 ‘기후 변화’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다. 물론 정확한 인과 관계는 앞으로 더 많은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기후 변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극심한 폭염’뿐만 아니라 폭우와 가뭄 등 극한 기후 현상이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임스 한센 컬럼비아대 기후 과학자는 “195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는 1세기에 한 번 발생하던 여름의 불볕더위가 이제는 5년에 한 번 발생하는 현상이 됐다”며 “모든 지역에서 무더운 여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 번에 두 개 이상의 지역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올여름 폭염은 지구 해수 기온이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에 기인한다. 엘니뇨는 페루와 칠레 연안의 수온이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4년 만에 엘니뇨가 발생했다고 확인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엘니뇨가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엘니뇨가 발생하면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 올라간다. 슈퍼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가 1.5도 이상으로 상승한다. 1950년대 이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것은 세 번뿐이다.

과학자들은 엘니뇨라는 자연 기상 현상과 함께 인류에 의해 발생하는 이산화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 기상과 관련, 새로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프리데리케 오토임페리얼컬리지 런던 기후과학자는 “기후 변화를 빼고 세계적으로 이렇게 심각한 무더위는 매우 드물거나 혹은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류가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를 본격적으로 태우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지구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가장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로 인정받고 있는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에 1850~1900년보다 지구 표면 온도가 1.1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시국(WMO)은 향후 5년 내에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시기보다 1.5도 이상 높아질 확률이 66%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전 지구 기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온도 상승은 5500만 년 전 일어났다. 최대 온난기라고 부르는 시기다. 이 시기 지구 평균 온도는 5~6도 정도 상승했다.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가장 인상적인 이 온도 상승은 2만 년에 걸쳐 일어났다. 온도가 1도 오르는데 평균 4000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최근 1도 상승은 단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펄펄 끓는 지구…글로벌 경제 지도 바꾼다 [기후경제학]
2. 32도에 이르면 노동 생산성 25% 하락
전 세계가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란은 8월 1일 ‘이틀간 공휴일’을 선포했다. 한낮 기온이 섭씨 영상 5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때문이다. 산이 많고 고도가 높은 이란은 서늘한 기온이 더 익숙한 나라다. 여름철 평균 기온은 섭씨 영상 26도에서 36도다. 하지만 이란 기상청에 따르면 8월 1일 12개 이상의 도시에서 섭씨 영상 40도를 훨씬 웃돌아 5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기록됐다. 페르시아만 기온이 섭씨 영상 65도까지 치솟은 영향이다. 체감 더위는 섭씨 영상 66.7도에 육박한다.

이란뿐만이 아니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싼바오 지역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데스벨리 국립공원도 최근 기온이 각각 섭씨 영상 52도, 53도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미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선 최고 기온이 섭씨 영상 48도까지 치솟았다. 섭씨 영상 40도 이상 고온이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중이다. 선인장도 말라죽을 정도다. 역대 최장 기간 폭염이다.

유럽도 폭염으로 인한 고통이 심각하다. 이탈리아 로마는 지난 7월 최고 기온이 섭씨 영상 41.8도로 관측됐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 시칠리아는 섭씨 영상 47.4도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한겨울이어야 할 남반구에도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온은 8월 2일 섭씨 영상 30.1도까지 높아졌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최근 117년 중에서 8월 초 기온으로는 가장 높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마다 뜨거워지는 여름에 폭염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관측 이후 여름 최고 기온은 1994년 섭씨 영상 38.4도(서울 기준)를 찍었지만 2018년 섭씨 영상39.6도까지 높아졌다. 올해도 낮 기온이 섭씨 영상 36도까지 오르며 전국 대부분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정부는 8월 1일 폭염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올리기도 했다. 4년 만이다.

불볕더위는 인간의 노동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불볕더위 속에서 일하던 한 배달 노동자가 더위를 참지 못하고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배달 노동자 80여 명이 파업 시위를 벌이는 등 미국과 유럽 곳곳에선 파업과 사직이 잇따르고 있다.

학술지 란셋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더위 노출로 인해 미국 농업·건설·제조업·서비스업 부문에서 25억 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손실된 것으로 나타난다. 영국 ‘데이터 속 세계’ 연구소는 옥스퍼드대와 분석한 자료를 통해 2016~2020년 기상 재해로 전 세계가 입은 피해액의 규모가 연평균 1629억2157만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30년 전인 1986~1990년 피해액 193억1124만 달러와 비교해 8배가 넘는 규모다.

현재까지 발표된 다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영상 32도에 도달하면 생산성이 25% 떨어지고 섭씨 영상 38도를 넘으면 70%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주일에 섭씨 영상 32도가 넘는 날이 6일 이상이면 미국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이 8% 하락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30년 폭염으로 3000조원 이상 경제적 손실이 전 세계에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7월 폭염으로 인한 만성적 신체 위험이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을 2100년까지 최대 17.6% 위축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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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쌀이 사라진다
폭염과 폭우·가뭄·산불 등 기후 변화는 ‘뉴 노멀’이 되고 있다. 심각한 폭염은 가뭄을 불러일으키고 잦은 산불의 원인이 된다. 태풍과 폭우가 빈번해지고 홍수 등의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를 내는 것을 넘어 글로벌 시장 환경과 경영 방식을 바꾸는 등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농업이다. 당장 잦은 홍수와 가뭄은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기후 위기가 곧 식량 위기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염으로 인한 세계적인 농업 생산량의 감소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7월 설탕 가격은 1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고 쌀값은 전월 대비 2.5%, 전년 대비 17.8%나 올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일찌감치 경고한 부분이다. OECD는 2022년 ‘기후 위기가 어떻게 글로벌 식품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리포트를 내놓았다. 파키스탄은 세계 4위의 쌀 수출국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홍수로 인해 쌀을 포함한 여러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곡물을 파키스탄에서 수입하는 아프가니스탄도 피해를 봤다. OECD는 “전 세계 식량 공급이 더욱 상호 연결되고 무역 제한으로 인해 식량 체계가 복잡해지고 있다”며 “기후 변화로 인해 수백만 명의 식량을 공급하는 먹이 사슬이 붕괴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위기로 사라지고 있는 대표적인 농산물은 한국인의 주식인 ‘쌀’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수십억 명의 식량과 생계를 위협하는 쌀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이로 인해 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모내기 일정을 바꾸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모종에 물이 필요할 때 비가 충분하지 않거나 반대로 비가 너무 많이 내리기도 한다. 바닷물이 올라와 염분으로 농작물을 망치기도 하고 따뜻해진 밤 기온 또한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극심한 강우로 인해 쌀 수확량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인도는 자국민을 먹여 살릴 식량 부족을 우려해 쌀 수출을 제한했다. 캘리포니아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많은 농부들이 밭을 휴경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도 빨라지고 있다. ‘스마트 팜’을 비롯한 첨단 기술의 활용이 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해 컴퓨터·스마트폰 등으로 온도·습도 등의 재배 환경을 원격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고온 피해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태풍과 같은 극한 기상 피해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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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콘크리트도 녹이는 날씨, 뉴욕은 건설 호황
폭염은 인구 밀도가 높고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도시에 치명적이다. 콘크리트와 벽돌은 태양이 내뿜는 열기를 흡수하고 대량의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는 뜨거워진 도시를 더 뜨겁게 만든다. ‘열섬 효과’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다. 도시 면적의 10% 이상이 태양열을 최대 95% 흡수하는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다. 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녹지의 비율이 높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도심은 열섬 효과를 낮출 만큼 충분한 녹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더 많다.

화려한 도심과 가장 연관이 깊은 ‘건설’도 폭염과 같은 기후 변화에 취약한 산업일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극한 호우와 폭염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비용이 많이 증가한다. 콘크리트 양생에는 온도가 매우 민감한 요소다. 양생은 시멘트가 물을 만나 단단해지는 과정을 일컫는데 이 과정이 빨라도 느려도 문제가 된다.

온도가 높으면 초기 급격한 수화 반응으로 냉각 시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온도가 낮으면 목표로 하는 만큼의 단단한 콘크리트가 만들어지지 않을 위험이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콘크리트 양생에 차질을 빚게 되면 그로 인해 시공 품질이 저하되고 전반적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입주 지연 등 갈등이 많아지는 등 위기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작업장에 일하는 직원의 ‘안전 문제’다. 집중 호우에 의한 무너짐, 현장 침수 등에서 직원이 안전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 환자가 늘어나면서 적절한 휴게 장소를 마련하는 등 이와 관련한 비용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설업에 기회가 되는 요인도 많다. 폭염·홍수·태풍 등에 대응하기 위해 도심에 대규모 인프라 확대 기회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은 2021년 허리케인 아이다를 겪은 후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맨해튼 이스트 리버 파크에 홍수 방지 장벽을 세우고 있다. 땅의 고도를 높이는 공사로 전체 17억8000만 달러가 배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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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독일, 비웃던 시에스타 도입할까
사실 직원의 ‘안전 문제’는 건설업에만 국한된 위기 요인은 아니다. 배달 노동자가 많은 유통업부터 여름철 철판 온도가 섭씨 영상 50도까지 상승하는 가운데 작업을 해야 하는 조선·철강업계 직원들도 폭염에 직격탄을 맞는다.

래리 케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에어컨·선풍기·그늘 없이 인체가 자연적으로 견딜 수 있는 기준선은 섭씨 영상 35도 정도”라며 “땀을 증발시켜 몸의 열을 식히는 기능은 외부 온도가 체온(36.5도)보다 높으면 인간의 신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미 각 국가와 기업들은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 환경을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업장에 그늘막을 설치하거나 적정 온도 이상이 넘어가면 작업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AP에 따르면 독일 공중위생의사회는 이탈리아·스페인의 전통인 ‘시에스타’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시에스타는 아침에 집중해 일한 뒤 점심시간 후 낮잠·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다시 일하는 관습이다. 요하네스 니센 독일연방공중보건의사회 회장은 “시원한 아침·저녁 시간대에 일하는 것은 노동자의 위험을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불볕더위를 피해 노동 시간을 조정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는 미국 우정공사(USPS)가 근무 시작 시간을 1시간 앞당겼다. 올여름 우편 배달원이 근무 중 배달 나간 집 정원에서 숨진 사고가 계기가 됐다. 스페인에서도 무더위 속에서 실외 작업 금지, 노동 시간 조정 등의 대책이 나왔다. 지난해 여름 마드리드에서 환경미화원이 섭씨 영상 40도를 웃도는 환경에서 일하다 열사병으로 숨진 이후 나온 대책이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폭염을 피해 새벽 4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교대 근무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폭염은 쉬는 방식도 바꾸고 있다. 이미 폭염과 같은 기후 변화는 사람들의 휴일 일정과 휴양지 선택에 영향을 주고 ‘관광 산업’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름다운 해변과 고대 조각상 등이 있는 이탈리아·그리스 등은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다.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올해 극심한 무더위에 큰 산불까지 이어지며 관광 산업에 타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는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낮 시간에 관광지 폐쇄를 결정했다.

따뜻한 지중해 지역으로 향하던 이들이 발길을 돌린 곳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이다. 무더위를 피해 더욱 선선한 지역을 선택한 영향이다.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올여름 지중해 지역 방문을 계획한 이들의 비율은 10% 줄어든 반면 스칸디나비아 지역으로의 여름 예약은 37% 정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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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럽에서 에어컨이 팔리기 시작하다
유럽은 에어컨 보급률이 낮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에어컨은 미국 문화의 일부이고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인식까지 더해져 유럽 가정 내 에어컨 보급률은 10% 안팎인 나라가 많다. 폭염은 이런 인식도 바꿔 놓고 있다. 유럽에서 에어컨은 ‘없어서 못 팔’만큼 잘나간다.

AP는 8월 2일 유럽 내 에어컨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2년 86만5000대였던 이탈리아의 연간 에어컨 판매량은 지난해 192만 대로 2배 이상 뛰었다. 1990년 5%에 불과했던 스페인의 가정 에어컨 보급률은 2040년 50%로 높아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스페인 최대 백화점 체인 중 하나인 엘코르테잉글레스의 지난 6월 에어컨 판매량도 급증했다. 지난 7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 에어컨 보급률이 2000년 10%에서 지난해 19%로 증가했고 올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 연구팀은 1990년 5%였던 스페인 가구 에어컨 보급률이 2040년 50%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에어컨은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져 ‘에너지 위기’에 대한 우려를 높이는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에너지 혁신’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태양광이 주목받고 있다. 폭염과 기후 위기로 늘어난 전력 수요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EU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에너지 비용에 직면해 태양광 투자도 늘었다. 그 결과 EU는 2022년 기준 태양광이 전년 대비 2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연간 발전량의 13.6%를 태양열과 풍력에서 조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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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반도체 산업의 잠재 위험 ‘물’에 주목해야 할 때
폭염은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는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가 꼽은 대표적인 물 사용 민감 업종이다. 반도체 공정에 물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만 TSMC는 2021년 가뭄으로 공업 용수가 부족해지며 반도체 생산량을 맞추지 못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시가 가뭄에 시달리며 ‘물 사용 자제’ 권고까지 내려져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물 부족’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제조업과 관련해 대부분의 공정에 물이 상당수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물과 관련한 담수화 사업 등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산업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가뭄이 장기화되는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물이 풍부했던 지중해 국가들에서도 이제 해수 담수화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스페인·이스라엘·알제리 등이 수자원 인프라를 재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9년 가동을 시작한 바르셀로나의 요브레가트 담수화 플랜트는 바르셀로나 식수의 5% 미만을 공급했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초당 1900리터 이상의 담수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 지역에서는 아드리아해 건너 알바니아에서 강물을 끌어 쓰기 위해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들여 100km에 이르는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폐수 처리장을 추가로 증설하고 이탈리아 최초의 주요 식수 담수화 플랜트도 건설할 계획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