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만족도 높을수록 출산 의향 높아….”저출산 해결에 기업 역할 중요”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인 24만 9000명을 기록했다. 올해 출생아 수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48만 5000명 수준이던 출생아 수는 10년 사이 반토막이 됐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산 현상의 중심에는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 청년들이 있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17년(2006~2022년) 간 332조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생애주기 모델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하 한미연)(이사장 정운찬) 원장은 “저출산 현상을 청년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며 “오히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과 좌절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현상은 청년세대가 자초한 ‘문제’가 아니라 청년세대에게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한미연은 결혼·출산에 대한 2030세대의 인식을 알아보고자 전문 리서치업체 엠브레인(대표 최인수)과 함께 올해 심층조사를 실시한 후 7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전국 15~59세 남녀 2,300명을 대상으로 정량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신뢰도 향상을 위해 결혼·출산의향 및 성별을 기준으로 6개 그룹의 표적집단을 구성한 후 사전 심층면접(Focus Group Discussion)을 통해 설문 문항을 도출했으며 다시 이를 여러 차례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조사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2030 세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의미 있는 결과 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2030 출산에 가장 큰 영향 ‘경력단절’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특히 2030대 여성의 경우, 출산 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병행시 자녀를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제 20대에서 50대 여성의 74%가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와 비교해 남성은 13% 수준의 응답률을 보였다.

2050 여성의 경력 단절 기간은 평균 6.3년으로 나타났다. 3년 미만인 경우는 35%에 불과했다. 여성 경력 단절은 '경제 활동 단절'과 '재취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계의 문제와 직결된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기혼 유자녀 여성의 경우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에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주 양욱자는 '엄마'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한 때문이다.

기업의 근무 제도 및 분위기도 2030대의 출산 의향에 높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출산고 육아를 경험한 2030 직장 여성들은 특히 기업의 '유연 근무제'가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출산과 양육을 위한 부모의 시간적 확보와 출산 장려 분위기를 정착시키는 것이 기업 지원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030 세대의 출산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로 '미디어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언급됐다. 최근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불행한 측면을 강조하는 TV 프로그램등이 많아진 영향이다. 여성의 80.5%, 그리고 남성의 71.7%가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력에 대다수가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걸림돌 해결되면 결혼 의사 있다” 30%

우리나라의 20~39세 미혼 청년 10명 중 4명은 결혼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미혼남성의 비혼 응답률은 36.4%, 미혼여성은 50.2%로 성별에 따라 13.8%p 차이가 나타났다. 세대별로 보면, 20대 남성은 33.2%, 여성은 46.1%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반면, 30대 남성의 비혼 응답률은 41.0%, 여성은 56.6%로 나타났다. 즉 30대의 비혼 의향이 전반적으로 20대보다 높고 성별 간 인식차이도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응답한 30대 여성은 16.3%로 같은 연령대 남성 응답률인 8.7%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42.6%)’,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40.8%)’ 순으로 응답하여 경제적 상황과 현실적 조건을 비혼 선택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중복응답 허용). 반면, 여성들은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46.3%)’,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34.9%)’ 순으로 응답했으며, ‘가부장제 및 양성불평등에 대한 거부감(34.4%)’이 남성(8.2%)보다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나 결혼 이후 변화하는 삶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결혼이 직업적 성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응답한 여성 비율이 69.1%로 남성(38.6%)보다 3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직장 만족도 높을수록 출산 의향 높아….”저출산 해결에 기업 역할 중요”
출산 의향에 있어서도 성별 간 차이가 드러났다. 20~39세 미혼 응답자 중 47%가 자녀를 낳을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가운데, 남성의 비출산 응답비율은 38.5%, 여성은 56.8%로 18.3%p 차이가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비출산 의향의 차이는 비혼 의향 차이보다 4.5%p 높아 출산관련 남녀 인식격차가 결혼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대에 따라 비출산 의향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여성의 경우 ‘꼭 자녀를 낳을 것이다/ 낳고 싶다’고 응답한 30대 비율(4.7%)이 20대 응답률(9.3%)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남성의 경우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43.6%)’, ‘자녀를 돌봄·양육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1.5%)’ 순으로 응답했으며, 여성은 ‘육아에 드는 개인적 시간·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서(49.7%)’,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35.1%)’ 순으로 응답했다(중복응답 허용). 남녀 모두 출산은 결혼에 비해 시간과 자기 희생이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성은 경제적 부담감을, 여성은 심리적 부담감을 높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여성은 출산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25.1%)과 출산·양육이 직장생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13.1%)에 대해 남성보다 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산 현상을 야기하는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52.8%)’과 ‘주거 불안정(41.6%)’, ‘고용 불안정(25.5%)’ 순으로 인식하였다(중복응답 허용). 그러나 출산 이후 직장 등에서의 부당한 처우를 원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여성은 23.4%, 남성은 10.8%로 출산 이후 직장처우에 대한 남녀 간 인식차이(12.6%p)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59세 기혼 유자녀 응답자 중 여성의 74%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의 경력단절 경험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력단절 경험비율이 남성의 6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6년 정도의 경력단절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경제활동이 단절되고 공백기가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한 여성은 “유자녀 여성은 채용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기존 직장보다 처우가 낮은 수준의 회사에 취업하거나 취업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출산 후 취업의 고충을 토로했다.

결혼에 부정적 의사를 밝힌 20~39세 미혼 응답자(603명) 중 결혼의 걸림돌이 해결될 경우 결혼할 의향(결혼의향 유동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30%로 조사됐으며 남성의 결혼의향 유동성(32.5%)이 여성보다 5.8%p 높게 나타났다. 출산의 경우, 부정적으로 응답한 20~39세 미혼 응답자(662명) 중 24.5%가 비출산 원인 해소 시 출산할 의향(출산의향 유동성)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남녀 간 차이는 결혼의향 유동성보다 다소 낮은 수준인 3%p로 나타났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으로 집계되지만 실제로는 결혼과 출산 행위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결혼·출산 이후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 효과로 의해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집단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숨어있는 혼인율과 출산율을 확보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출산율 낮춘다? 직장만족도 높으면 출산율 높아져

직장 만족도가 높은 20~39세 미혼자는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직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의 68.4%가 ‘결혼을 할 것이다’ 또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응답한 반면, 만족도가 낮은 집단은 긍정적 응답률이 46.3%에 그쳐 두 집단 사이에 인식 차이(22.1%p)가 크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 만족도에 따른 출산 의향도 만족하는 집단(60.2%)이 불만족 집단(45.2%)보다 15%p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성 중 현재 직장에 만족하는 집단은 결혼 의향이 66.3%, 출산 의향이 55.8%인 반면, 불만족 집단은 37.1%와 32.6%에 그쳐 각각 29.2%p, 23.2%p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직장 만족도에 따라 결혼 의향은 최대 14.2%p, 출산 의향은 최대 5.2%p 차이가 있었다.

이 결과는 남녀 공통적으로 직장 만족도가 결혼과 출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여성직장인 중 현재는 출산의사가 없으나 추후 변동될 수 있는 유동층의 절반 정도가 불만족 그룹에 속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직장 만족도가 저출산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70.8%), 육아휴직 보장(63.0%), 출산 후 복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56.9%), 출산장려 분위기(46.4%) 등이 높은 순위로 조사됐다. 따라서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 개선 및 출산지원제도 확대 등을 통해 직장 만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은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들어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한미연의 조사 결과는 여성의 경제활동과 출산이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여성의 경제활동 자체가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보다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의 근무환경에 따라 출산율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유혜정 한미연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성별, 세대, 계층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라며 “특히 불안감이 높은 청년층에게 기업문화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먼저 청년들의 불안을 읽고 변화해야 한다.”며 기업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강조했다. 한미연은 앞으로도 매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하여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인구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