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옵틱스·틸론 간 소송에서 특정 주주의 사전동의권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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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주주에게 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약정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주주 평등 원칙에 위배되더라도 특정 주주가 사전동의권을 갖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스타트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투자자들에게 더 강한 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안전장치를 견고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특별한 사정 있으면 주주 차등 대우 가능”


대법원 민사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023년 7월 13일 디스플레이 제조사 뉴옵틱스가 클라우드 기업 틸론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 상고심(사건번호 2021다293213)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사건번호 2023나2029599)으로 돌려보냈다.

틸론은 2016년 12월 뉴옵틱스를 상대로 신주 20만 주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20억원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향후 틸론이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신주를 발행하면 뉴옵틱스의 서면 동의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약정을 체결했다. 이를 어기면 투자금을 상환하고 위약벌을 부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틸론은 그 후 뉴옵틱스의 동의 없이 다른 투자자에 신주 26만 주를 발행했다. 뉴옵틱스는 틸론이 사전동의권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신주를 발행했다고 주장하면서 투자금 상환을 요구했다. 틸론이 이를 거절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다. 뉴옵틱스 측은 “상환금과 위약벌 명목으로 46억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틸론은 “사전동의권은 상법상 주주 평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무효”라고 맞섰다. 주주 평등 원칙은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법적으로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상법에 규정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한국 법원에선 신주 발행, 이익 배당, 자사주 취득, 주식 병합 등 다양한 의사 결정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1심은 뉴옵틱스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들 회사가 맺은 사전동의권 약정은 상법상 기본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면서 “틸론은 뉴옵틱스에 4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봤다. 또한 “(이 같은 약정을) 허용하면 재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회사의 기존 주주들이 불리해진다”고 했다.

이 판단이 대법원에서 또 한 번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주주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면 (주주를)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틸론의 신주 발행의 경우엔 원칙적으로 주주 총회 결의가 아니라 이사회의 결의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주주가 사전동의권을 가지더라도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직접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 과정에서 차등적 대우를 정당한 지 판단할 때 필요한 기준도 제시했다. 차등적 대우를 결정한 경위와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지 여부 △상법 등 관계 법령에 근거를 뒀는지 여부 △일부 주주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불이익을 받는 주주들의 동의 여부 △회사의 사업 목적, 지배 구조, 재무 상태 등을 고려했을 때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을 고려 대상으로 정했다.

스타트업 “통제 강화” 우려…VC “안전장치 확보” 안도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투자자가 계약을 통해 기업 경영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됐다고 보고 있다.

파기 환송심에서도 대법원 판단이 유지되면 그동안 스타트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계약에 법적 정당성이 붙게 될 것이란 의견이 많다. 스타트업계에선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 운용사(PEF) 등 기관투자가들의 통제를 더 강하게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타트업들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투자 혹한기’로 인해 과거보다 기관들의 눈치를 더 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한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투자 유치액은 2조8190억원으로 2022년 상반기(9조9994억원)보다 72% 급감했다. 신규 투자 건수도 같은 기간 1177건에서 547건으로 줄었다.

스타트업들과 달리 기관들은 오랫동안 이어 온 투자 방식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위험에서 다소 벗어났다는 평가다. 대법원이 원심 판단대로 틸론 측의 손을 들어줘 판결이 확정됐다면 적지 않은 기관들이 그동안 체결한 투자 계약서에서 사전동의권 내용을 삭제해야 할 판이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사전동의권을 주식 가치 희석 등으로 투자금 회수에 지장이 생기는 일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로 여기는 기관이 많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뉴옵틱스가 파기 환송심에서도 승소한다면 다소 관행적으로 해 오던 계약 방식이 법률로도 확실하게 인정받게 된다”며 “투자 과정에서 사전동의권을 활용하려는 기관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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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틸론, 패소 후 상장 계획도 철회

이번 대법원 판결은 틸론의 기업공개(IPO) 무산으로도 이어졌다. 틸론은 판결 직후 상장 계획을 담은 증권 신고서를 정정하란 금융감독원의 요구를 받고 결국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틸론은 2023년 7월 20일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준비해 온 코스닥시장 입성 계획을 중단한 것이다. 이 회사는 7월 18~19일 기관들을 상대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는 등 상장을 위한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었다. 틸론은 “시장 여건과 공모 일정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상장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틸론이 패소한 날 금감원이 증권 신고서 정정을 요구한 것이 상장 철회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금감원의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로 틸론의 재무 구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응 방안을 증권 신고서에 적을 것을 주문했다. 뉴옵틱스가 틸론에 요구한 금액은 43억원으로 틸론의 자기 자본(3월 말 기준 14억원)보다 세 배 이상 많다.

틸론은 지난 3월과 6월 금감원으로부터 기업 가치 추정치가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 속에 관련 내용 등을 정정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 회사가 코넥스시장에서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할 때 처음 제시한 몸값은 공모가 기준으로 1495억~1794억원이었다. 하지만 5개월간 세 차례 증권 신고서를 고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778억~1077억원까지 떨어졌다.

최백준 틸론 의장도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 대표는 “상장을 준비하면서 마주했던 미진한 부분에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면서 “당분간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하면서 사태 수습에 집중하고 (수습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