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곳도 있지만 설계된 내용과 다르게 시공되거나 철근이 누락되는 경우, 콘크리트의 품질이 저하돼 붕괴 우려가 발생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폭우로 인해 침수되는 등 안전 문제가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이다.
착공을 앞둔 재건축·재개발 사업구역에서는 공사비 협의 과정에서 공사비를 낮춰야 하는데 공사비 절감의 부작용이 부실 공사로 이어져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대책으로 시공사에 대해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하지만 과연 영업 정지가 최선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시공사의 부실 공사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것은 최근의 공사비 인상과 무관할 수 없다. 불과 2년 전에 비해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원자재 값이 상승하면서 건설 사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하다.
특히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생산비용이 추가적으로 상승했고 과거의 예상했던 공사비로는 도저히 완공은커녕 시공사에서 공사를 진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울의 한 사업구역에서는 시공사가 사업 시행자인 조합과 공사비가 조율되지 않자 공사를 중단해 입주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그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공사비 상승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된 상황에서 사업 시행자가 최대한 공사비 상승을 막아야 사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조율이 쉽지 않다.
결국 철근이 누락된다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시공 방식이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공사비를 낮춘다고 해서 부실 공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공사에 대한 경고 내지 앞으로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영업 정지나 과징금 부과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과연 그 실효성이 있는지는 상당히 의문이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시공사에 대해 영업 정지 처분이 내려진 사례들을 살펴보면 시공사는 법적 대응을 통해 어떻게든 공사를 이어 간다. 계약상 정해진 공사 기간이 있고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시공사도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시공사는 영업 정지라는 처분이 내려지면 법원에 그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고 본격적인 행정 소송이 끝날 때까지 영업 정지의 처분을 중단해 달라고 하는데 이러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사실상 영업 정지 처분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향후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진행이 예정된 재건축·재개발 구역 내의 조합원들에게 발생하는 피해 정도를 얼마나 고려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특히 시공사에 대한 영업 정지가 계속되면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공사를 앞두고 있는 사업구역에서는 그만큼 입주 일정이 지연되거나 착공 또는 준공 일정이 지연되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이 지연되면 그 과정에서 사업비가 늘어날 수도 있고 사업비 증가는 온전히 사업에 동의한 조합원들이 부담한다.
수년 전 입주를 앞두고 늘어난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시공사에서 입주를 막고 유치권을 행사한 재개발 현장이 있었는데 최근 공사비가 급격히 증가하자 이런 곳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들은 적정 공사비인지 따져보지 못하고 입주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비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수년간 사업이 지체되고 이제 겨우 사업에 진척이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원자재 값 상승에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공사비 부담까지 안아야 한다니 경기 침체를 탓할 수도 없고 운이 없다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재건축·재개발 구역의 조합원들로서는 사업비가 줄어들고 공사가 빨리 진행되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공사가 빨리 진행돼 부실 공사로 이어지면 안전과 맞바꿔야만 가능한 일이 돼 버리니 안타까울 뿐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분명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점점 우리의 의식이 제고되고 있지만 큰 사고가 발생하거나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있어야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사업의 진행이나 막대한 수익을 위한 꼼수가 당연히 배제되는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최혜진 법무법인센트로 수석 변호사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