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읽는 부동산]
유치권자가 유치물을 타인에게 사용하게 한 경우 대처법[조주영의 법으로 읽는 부동산]
공사 업체가 부동산 관련 토목 내지 신축 공사를 수행했지만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이곳은 유치권 행사 중입니다’, ‘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등의 현수막을 내건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치권은 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해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 그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다. 이와 관련해 유치권자의 선관주의의무위반에 의한 유치권 소멸이 인정되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던 대법원 판결을 소개한다.

소외인(위탁자)은 8만4966㎡에 이르는 방대한 토지를 모 신탁회사(수탁자·원고)에 신탁했는데 모 건설회사(피고)는 공사 계약에 따라 공사를 수행했음에도 약 144억원의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2008년 10월부터 위 토지에 유치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원고는 2019년 6월 ‘피고의 유치권이 부존재한다’고 주장하며 토지 인도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은 전체 토지 면적의 절반을 초과하는 6필지(5만9532㎡)에 관해 ‘피고가 제삼자로 하여금 경작지로 이용하도록 허락했거나 적어도 이를 사용하는 것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피고의 유치권은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2심은 피고가 2020년 11월 이후 모든 토지에 대한 점유를 상실했으므로 위 6필지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에 대한 피고의 유치권도 소멸했다고 함으로써 결국 피고의 유치권은 전부 소멸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의 위법을 지적하며 피고의 유치권이 전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먼저 6필지에 관해선 전체 면적은 5만9532㎡인데 그중 인근 주민이 무단 경작한 곳의 면적은 2148㎡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 인근 주민들은 피고가 공사를 시작한 2005년 이전부터 위와 같이 경작 행위를 해 왔는데 피고가 유치권 행사를 시작한 2008년 10월 이후에도 종전과 같은 형태로 경작을 계속해 왔고 방대한 토지에 유치권을 행사하는 피고가 유치물의 보존을 위해 모든 곳을 항상 감시하며 주민들의 출입 등을 철저히 봉쇄할 것까지 요구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인근 주민들이 일부 소규모로 벌인 경작 행위로 토지의 가치나 효용이 감소되는 등 토지 소유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사정도 없으므로 피고가 유치물의 보존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사용 행위 또한 대여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의 유치권이 존속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6필지 이외 나머지 토지들에 관해서는 이 사건 1심 판결로 위 나머지 토지들에 대한 피고의 유치권이 존속함을 알고 있던 소외인이 위 1심 판결 이후 무단으로 전면 점유를 시작했고 이런 소외인의 점유 침탈을 기초로 원고가 ‘피고가 점유를 상실했기 때문에 피고의 유치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 행사 또는 권리 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결국 유치권자가 유치물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용하게 한 경우 유치권의 소멸 여부는 유치물의 특성과 유치권자의 점유 태양(형태·모습), 유치권자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 사용자의 구체적인 사용 방법 및 사용의 경위, 사용 행위가 유치물의 가치나 효용에 미치는 영향, 사용자가 유치권자에게 대가를 지급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점유를 침탈함으로써 원래 유치권자의 유치권 소멸을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조주영 법무법인 신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