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미국의 NBC가 내보낸 기사 제목이다. 미국 전역에 56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인 트레이더 조스는 소비자들에게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식료품 마트다.
PB 신제품을 내놓기만 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수많은 ‘리뷰’가 쏟아질 만큼 주목받는다. 최근 이런 트레이더 조스 PB 중 가장 인기를 끄는 제품은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김밥이다. 현지 유력 방송사인 NBC까지 이를 조명할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해당 제품은 냉동 상태로 판매되는 김밥으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제품이다. 틱톡을 검색하면 이 냉동 김밥에 대한 수많은 리뷰와 댓글들이 게재된 것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만든 다양한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며 ‘식품 한류’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 시장만 보더라도 요즘 김밥이 일명 ‘한국산 롤’로 대박을 터뜨리며 새로운 식품 한류 대열에 합류했다.
김밥에 앞서 수출길은 뚫었던 만두와 라면 등의 한국산 식품은 해외 매출이 한국 매출을 넘어선 상황이다. 세계인이 즐기고 있는 ‘K-푸드’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들도 ‘대박’요즘 미국에서 불고 있는 냉동 김밥의 인기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한식의 존재감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현지에서 판매 중인 냉동 김밥은 유부 등과 같은 식물성 제품만 넣어 만든 채소 김밥이다. 미국 역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채식 바람이 거세게 이는 상황이다. 냉동 김밥은 이런 소비자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는 ‘비건’ 제품으로 더욱 각광받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줄에 3.99달러로 미국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싼 수준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김밥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만들어 수출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이름이 생소한 ‘올곧’이라는 식품 업체가 주인공이다. 중소기업이 수출한 한식 제품이 해외에서 이토록 각광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곧은 2020년 설립됐다. 제조한 김밥을 섭씨 영하 45도에서 순간적으로 급속 냉동하는 설비를 갖췄다. 이 제품을 수출한다. 급속 냉동 후에도 김밥의 식감을 유지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올곧의 냉동 김밥은 한국에선 ‘바바김밥’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쿠팡과 SSG닷컴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만 판매되다 보니 올곧이라는 이름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이번에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회사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올곧에 따르면 냉동 김밥은 250톤 규모의 김밥 초도 물량이 완판됐고 현재 2차 납품 물량을 준비 중이다. 식품업계에서는 향후 더 많은 중소 규모의 냉동 김밥 업체들이 수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틱톡으로 화제가 된 김밥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 유럽과 동남아 등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김밥의 인기를 주목하고 한국 업체에 수출 요청을 하는 해외 마트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일례로 경남 하동군에 있는 ‘복을 만드는 사람들(복만사)’이 제조한 냉동 김밥 역시 최근 영국 ‘H-마트’에서 ‘러브콜’을 받아 첫 수출에 성공했다. 복만사의 냉동 김밥은 10톤(약 1만5000달러어치) 규모로 H-마트에서 곧 만나볼 수 있다.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던 한국의 식품 대기업들은 갈수록 거세지는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의 도약에 성공했다. 이제는 전체 실적의 향방을 해외 매출이 좌우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CJ제일제당이다. 주력 상품은 ‘비비고 만두’다.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약 70%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 발생한다.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식품 대기업’만두 외에도 CJ제일제당의 비비고의 주력 상품으로 김·떡볶이·김치 등이 있는데 미국 프로농구(NBA) 최고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등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선수들이 ‘비비고’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뛸 만큼 인지도가 높다.
성과 또한 눈부시다. CJ제일제당의 식품 사업부문의 매출은 약 11조원(2022년 기준)인데 전체 매출의 약 46%인 5조원 이상의 매출이 해외에서 나온다. CJ제일제당의 해외와 한국의 매출 격차는 매년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해외 매출이 한국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라면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 K-푸드다. 매년 수요가 급증하는 ‘K-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농심과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은 2021년부터 해외 매출이 한국 매출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신라면을 필두로 농심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50%를 넘겼다. ‘불닭’ 시리즈를 앞세운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율은 60%가 넘는다.
한국 라면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이를 비슷하게 카피한 ‘미투 상품’도 글로벌 시장에 수없이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라면의 원조’ 격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닛신식품이 삼양라면과 농심의 제품을 비슷하게 카피한 제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종가집 김치’를 수출하는 대상은 전 세계로 번지는 ‘김치 열풍’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상의 김치 수출액은 2016년 2900만 달러에서 2022년 7100만 달러로 2.4배 이상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4100만 달러를 기록, 이미 지난해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대상 관계자는 “김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는 만큼 올해도 수출액이 최대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K-푸드의 관심이 점차 뜨거워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글로벌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일동 공신으로 꼽힌다.
한국의 가요와 영화 등 수많은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K-푸드를 먹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개되면서 글로벌 한류 팬들도 K-푸드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예컨대 불닭 볶음면은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며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치·김밥·떡볶이 등도 다양한 한류 콘텐츠에 등장하며 ‘맛’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의 인기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됐다”며 “이를 감안할 때 앞으로 K-푸드의 해외 영토 확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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