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비 전문가, 유혜영 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하는 'K스트리트 공략법'

유혜영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약력 : 1983년생. 2014년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미국 정치, 로비 전공). 미국 프린스턴대 공공정책대학원 및 정치학과 교수(현)
유혜영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약력 : 1983년생. 2014년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미국 정치, 로비 전공). 미국 프린스턴대 공공정책대학원 및 정치학과 교수(현)
“한국 CEO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으니 한국 기업에 유리할 것이다? 굉장히 한국적인 마인드다. 미국의 정책 의사 결정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한국은 난감해졌다. 1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대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고 12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해 다양한 신청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중국 투자 제한, 초과 이익 환수, 민감 정보 제출 등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지만 부담스러운 세부 지침이 따라붙는다.

IRA와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에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말한다. 유혜영 프린스턴대 교수는 법 통과 이후에도 하위법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밑 작업에는 실패했지만 각 주무 부처에서 주관하는 하위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유 교수는 우선 미국 관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로비는 의회보다 관료가 더 중요하다. 재무부·상무부·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닿을 수 있는 로비 라인을 강화해 IRA 관련 시행령을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을 계속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IRA 통과 이후 개정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준’을 예로 들었다. IRA는 지난해 8월 통과됐다. 당시 기준으로 테슬라의 5인승 ‘모델Y’나 폭스바겐의 ‘ID.4’ 등은 보조금 기준에서 SUV가 아닌 세단으로 분류돼 세액 공제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SUV 기준을 수정해 세금 공제 혜택을 확대했다. 테슬라·폭스바겐·포드 등 자동차 기업들이 해당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재무부에 꾸준히 로비한 결과다.

유 교수는 “2010년 의회의 문턱을 넘은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은 여전히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며 “미국은 각 단계마다 정책 결정 권한을 쥐는 사람이 달라지는 만큼 이 시스템을 빠르게 파악하고 결정권자에게 가장 많이 접근한 로비스트를 고용해 시행령의 규제나 혜택의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비 전문가가 말하는 K스트리트 공략법 미국에서 로비의 중요성에 대해 유 교수는 “시민의 국가인 미국은 청원의 권리, 소수가 다수의 횡포에 억압받지 않을 권리가 건국 때부터 중요하게 여겨진 가치”라며 “내 돈을 써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수정 헌법 1조’에서 강조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고 말했다. 로비는 ‘검은돈’이고 전관 인사를 통해 로비하는 것을 부정부패로 인식하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미국 워싱턴D.C. 내 ‘K-스트리트’는 세계 최대 로비 시장이다. 미국 최고 로비스트들이 모여 기업이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기업들은 규제와 입법에 대응하기 위해 K-스트리트에 둥지를 틀고 있다. 로비는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정치인과 인맥 위주의 인재 영입이 로비 시장에서 중요한 이유다.

유 교수는 “미국에서도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관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 전관 출신 로비스트들이 정치인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정보도 더 빨리 입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 로비 시장의 큰손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지출한 로비 금액은 2억3617만 달러(약 3130억원)다. 중국(3억3377만 달러), 일본(2억9129만 달러)에 이어 3위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돈은 많이 쓰는데 로비 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특히 지난해 IRA 법 통과 이후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관련 정보 수집이 제대로 안 됐고 대응책 마련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유 교수는 한국 로비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지적했다. 전략의 부재, 일관성의 부재, 경험의 부재다.

전략의 부재는 ‘미국통’이 부족하다는 문제와 연결된다. 유 교수는 “미국 정치의 문맥을 파악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파악하려면 전문가도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공평하게 기회를 분배해야 한다는 문화 때문에 외교부든, 기업 주재원이든 로테이션이 너무 빨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조직에서 키우기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인 만큼 모든 데이터가 공개된다. 정보 싸움이 아니라 전략 싸움이라는 말이다. 전문가 없이 잘나가는 대형 로비 펌과 계약하고 일을 다 맡겨버리는 식의 로비는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비 펌 중 하나인 스콰이어패튼보그스에 속한 로비스트만 1500명이다. 이 로비 펌이 한 해에 맡은 클라이언트만 수백 개다. 1500명의 로비스트 중 어떤 로비스트가 할당되는지, 정부와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정부와의 연결 고리가 있다고 해도 이번 행정부와 연결된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유 교수는 “IRA 시행 전 현대차 로비 리포트를 살펴보니 현대차 인하우스(법인 소속) 로비스트 중 전관 출신 로비스트가 한 명도 없었다”며 “현대차가 고용한 로비 펌에는 전관 출신 로비스트가 있었지만 기업 담당자가 고용된 로비스트들이 해당 이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문제는 일관성의 부재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미국에 대응하는 사람도, 미국에 요구하는 사안도 변한다. 미국 의회와 주무 부처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특정 이슈에 힘을 실어 주기 어려운 구조다. 유 교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자민당의 일당 독재 체제여서 ‘일본의 국익을 우선시한다’는 외교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며 “정권이 바뀌거나 해당 기관의 대표자가 바뀌더라도 대미 정책만큼은 확실하게 이어진다”고 말했다.

경험의 부재도 문제다. 유 교수는 일본과 한국의 로비 활동을 비교했다. 일본의 로비가 ‘전방위적’이라면 한국의 로비는 이슈 대응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기업은 1980년대에 이미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의회뿐만 아니라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을 직접 지원하고 꾸준히 접촉해 왔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미국 내에 재단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고 교수 자리를 만들어 채용하고 일본을 연구하는 센터를 만들어 지원하는 등 학술 행사도 적극 지원했다. 일본의 국가적 이미지와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해 온 것이다.

유 교수는 로비 활동을 두고 일본과 한국의 접근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큰 그림’에 집착한다면 일본은 ‘디테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을 만나는 것보다 보좌관과 스태프를 만나는 게 더 효과적인 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안 작성은 의원이 아니라 보좌관과 스태프가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로비 실무자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 가는 활동을 펼치는 반면 한국은 국회의원을 직접 만났는지, 몇 번 만났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법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실무자라는 것, 큰 그림보다 세부 사항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혜영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약력 : 1983년생. 2014년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미국 정치, 로비 전공). 2023년 미국 프린스턴대 공공정책대학원 및 정치학과 교수(현)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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