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니 초능력자가 나오는 드라마가 최근 대세다. 7월 이후 방영된 드라마만 해도 얼마 전 막을 내린 ‘무빙’을 비롯해 ‘경이로운 소문2’, ‘기적의 형제’, ‘소용없어 거짓말’, ‘힙하게’,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등에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조만간 방영될 ‘힘쎈여자 강남순’과 ‘마이 데몬’에도 초능력자가 나온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초능력자는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메뉴였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악당을 때려잡고 지구를 구했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록키’, ‘맥가이버’ 등에서도 주인공들은 초능력자만큼의 능력을 과시하며 악을 징벌했다. 액션은 화려했지만 뻔한 스토리였다. 뭐 안 봐도 그만이었다.
최근 방영되는 초능력 드라마는 결이 다르다. 초능력자가 사회적 약자다. 학대받는 고아, 학교 폭력 피해자, 지방에서 소를 키우는 청년, 묻지마 폭력에 희생된 여성 등이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다.
초능력도 가지가지다. 순간 이동을 하거나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 않고 손을 대면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으며 거짓말하는지까지 분별할 수 있다. 이들이 초능력을 행사하는 목적도 거창하지 않다. 물론 권선징악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구는커녕 나라도 구하지 않는다. 크게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다. 따뜻한 휴머니즘이다. 그래서 스토리가 뻔하지 않다. 다양하고 재미있다. 사극이나 범죄 드라마만 골라 보던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고 있다.
초능력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상황이 그렇다.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가족주의의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학교 폭력, 가짜 뉴스, 묻지마 폭행, 마약 확산 등의 뉴스는 답답함을 배가시킨다. 초능력자라도 나와 얽힌 실타래를 풀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퍼져 있다.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서 따뜻한 인간미에 대한 갈망이 초능력 드라마에 투영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전문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한 현실 위안’이라고 했다.
전문가가 아니니 이쯤 하자. 가족들이 모이는 한가위다(뭐 상당수 가족들은 잘 모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추석 밥상에 오를 메뉴는 황폐함투성이다. 넌더리를 칠 만한 정치 이슈는 둘째로 치자. 먹고사는 문제만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OOO는 아직도 결혼 안 했느냐”, “XXX는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얘기가 오가다가 비싼 집값, 어렵기만한 취업,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옮겨 갈 게 뻔하다. 학교 폭력과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죽음, 묻지마 폭행에 통계 조작 시비까지 밥상에 오른 뒤 “답답하다”며 헤어지는 가족이 많을 듯하다.
쉽지 않다.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선 가계 부채, 세계 최저 출산율, 높아지는 연체율, 둔화되는 수출, 기대와 달리 살아나지 않는 경기,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 경제 환경 등. 이런 난제를 풀어 가기는커녕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가는 선수들만 모인 징치권까지…. 어쩌면 이를 차근차근 풀어 갈 초능력자라도 나와야 할 듯싶다. 추석을 지내더라도 초능력 드라마는 한동안 인기를 끌 듯하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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