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오렌지족 겨냥한 고급 상권 형성
과거 명성 현재도 이어져

[커버스토리 : 압구정 현대아파트]
1996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축제가 열린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6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축제가 열린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0년대엔 ‘오렌지족’이 있었다. 부모의 막대한 부를 이용해 어린 나이에도 호화스러운 소비생활을 하던 20대를 일컬어 이렇게 불렀다. ‘수저’라는 단어로 사회적 계층을 나누는 현 세대에 비유하면 남부럽지 않은 ‘금수저’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다. 수입차가 귀하던 시절 고급 수입 스포츠카를 몰고, 하루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써대던 오렌지족의 사치스러운 일상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준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런 오렌지족들이 주로 나타나는 지역으로 알려지며 명성을 쌓은 상권이 하나 있다.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은 압구정동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가치를 논할 때 뛰어난 ‘상권’은 빼놓을 수 없다. ‘고급 쇼핑·문화의 중심지’이자 ‘불멸의 상권’으로 불리는 압구정 상권이 인근에 위치했다.

‘최신 트렌드가 궁금하면 압구정에 가보라’는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국내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명품 브랜드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편집숍’, TV에 나오는 유명 셰프들이 운영하는 비싼 ‘맛집’도 모두 압구정에 가면 찾을 수 있다. 기가 막히게 성형을 해준다는 병원들도 압구정에서 운영 중인 곳들이 많다. 현대아파트 주민들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도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동산업계는 현대아파트가 높은 집값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주저 없이 상권을 지목한다. 압구정 일대 아파트가 심하게 낙후됐지만 여전히 많은 정재계 관계자 및 연예인들의 거주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빼어난 상권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상권’‘로데오 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압구정 상권은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상권으로 꼽힌다. 유동인구만 놓고 보면 명동, 강남역, 홍대 등과 같은 상권에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 최고의 고급 상권’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들이 수익을 내기보다는 마케팅 목적으로 압구정에서 점포를 운영하기도 한다.

현재 압구정 로데오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가 대표 격이다. 이곳의 점포세는 천문학적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을 운영할수록 적자 역시 커지는 구조지만 언더아머는 2020년부터 현재까지 약 3년 넘게 점포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고급 쇼핑문화의 중심지로 불려온 압구정에 점포를 내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곳에 오래 살았던 현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압구정 상권이 이 같은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던 배후에는 과거 논란의 대상이었던 ‘오렌지족’이 큰 역할을 했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들은 분명 당시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의 중심축이었다.

이런 오렌지족들이 주로 찾아 돈을 쓰는 지역이 바로 압구정이었다. 자연히 압구정 거리 곳곳에는 이들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비싼 술집과 고급 식당·옷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고급 상권이 형성됐다.

사람도 몰렸다. 부유한 오렌지족들을 만나기 위한 젊은이들의 발길이 각지에서 이어진 것. 그렇게 압구정은 ‘야타족’들이 판치는 ‘헌팅의 메카’로도 떠올랐으며 상권 역시 날로 부흥해 나갔다.

이런 명성(?)을 토대로 압구정 상권은 2000년대 접어들며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1990년대 압구정동이 ‘오렌지족만의 전유물’이었다면 2000년대는 전국 각지에서 ‘멋’과 ‘맛’을 찾아온 사람들로 연일 붐볐다. 특히 2000년대 압구정은 패션의 중심지였다.
압구정 재건축도 상권엔 호재2000년대 초 유행하던 힙합바지와 나이키 포스·덩크 등의 신발 모두 압구정에서 유행이 시작됐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캠프, 오일, 러벤 등 힙합 패션 소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멀티숍들을 찾기 위해 지방에서까지 원정쇼핑을 오는 일도 흔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압구정에 몰리다 보니 연예기획사 관계자들도 이곳을 기웃거렸다. 압구정 거리를 거닐며 명함을 건네는 ‘길거리 캐스팅’을 펼치기 위해서다. 이런 사실이 소문이 나자 연예인을 꿈꾸는 지망생들까지 압구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듯 다양한 목적으로 압구정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한때 압구정의 유동인구가 강남역 못지않았던 적도 있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거리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압구정은 명실공히 최고의 상권으로 떠올랐고 현재까지 그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압구정 로데오 초입에서 운영 중인 언더아머 매장.  사진=김정우 기자
현재 압구정 로데오 초입에서 운영 중인 언더아머 매장. 사진=김정우 기자
물론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상권이 그렇듯이 압구정도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점차 임대료가 크게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났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9년엔 쌍방통행이었던 로데오 거리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정비하며 다시 한번 상권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로를 뒤엎고 공사를 하면서 한동안 압구정 로데오는 차는 물론 사람도 쉽게 다닐 수 없는 거리가 됐다. 급격히 유동인구가 줄면서 거리엔 적막이 감돌았다.

이때 많은 이들이 압구정을 대신해 찾은 곳이 바로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이다. 압구정의 쇠락이 가로수길의 부흥을 불러왔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공사가 완료된 후에도 압구정 상권은 이전 같지 않았다. 한번 떠난 이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압구정 상권은 수년 전부터 다시 살아났다. 건물주들은 힙을 합쳐 임대료를 낮췄다. 이때 싼 임대료를 기회 삼아 수많은 상인들이 상권으로 몰려들었다. 자연히 압구정 상권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상점들로 새롭게 채워졌다.

그리고 엔데믹을 맞은 올해 들어서는 다시 서울에서 가장 ‘핫한’ 상권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부활로 압구정 상권이 꺼지지 않는 ‘불멸의 상권’ 반열에 올랐다는 진단도 나온다.

압구정 상권을 바라보는 전망도 밝다. 현대아파트 등 인근의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이 예고된 상황. 재건축이 완료되면 압구정동은 ‘상위 1% 부자’들만이 입성할 수 있는 동네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저층이었던 아파트들이 고층으로 변신하면서 인근 거주자들도 늘어나게 된다. 이는 압구정 상권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내다봤다.돋보기
왜 오렌지족은 압구정으로 모였나
1990년대 소비의 중심축이었던 오렌지족들은 왜 수많은 상권들을 제쳐놓고 압구정을 찾았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도 압구정 상권이 형성 과정부터 이들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분석에 가장 무게가 실린다. 일반적으로 상권은 다양한 구매력을 갖고 있는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한 점포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형성된다. 하나의 상권에 저가부터 고급까지 다양한 브랜드나 음식점들이 들어선 이유다.

반면 압구정의 타깃은 애초부터 명확했다. 부자들이었다. 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미성아파트 등에 사는 재력을 갖춘 주민들을 겨냥한 점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너도나도 비싼 식당이나 옷가게와 같은 ‘고급 상권’이 형성된 배경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 맥도날드의 한국 1호점,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쟈뎅) 등도 압구정에서 첫 점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패스트푸드와 원두커피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먹거리였다. 이렇게 형성된 압구정 상권이 일찌감치 유학과 같은 해외생활을 경험했던 오렌지족의 취향을 저격하며 자연히 이들을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물론 오렌지족들 중 상당수가 현대 혹은 한양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자연스럽게 집에서 가까운 상권인 압구정동을 찾아 상권을 활성화시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커버스토리 : 압구정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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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