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는 유명 삼계탕집 따라했다가…법원 “부정경쟁 행위”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종로구의 토손촌삼계탕이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종로구의 토손촌삼계탕이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토속촌삼계탕’의 상호를 다른 음식점이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이 음식점과 이름이 상당히 비슷한 삼계탕집인 ‘엄마 토속촌삼계탕’이 소비자들의 오인과 혼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했다. 엄마 토속촌삼계탕은 매장과 각종 광고물에 적힌 현재 사명을 모두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별안간 등장한 ‘엄마 토속촌삼계탕’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0부(재판장 임해지 부장판사)는 지난 9월 토속촌삼계탕이 ‘엄마 토속촌삼계탕’ 대표인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 행위금지 등 가처분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한식 일반음식점의 상호로 토속촌삼계탕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엄마 토속촌삼계탕의 영업소, 사무실, 창고, 차량에 보관 중인 간판과 광고물에 실린 표지를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토속촌삼계탕은 1983년부터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영업을 해왔다. 40년째 영업 중으로 서울의 대표 삼계탕 맛집 중 하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삼계탕 외에도 닭백숙, 닭볶음탕, 전기구이 통닭, 해물파전 등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평균 100억원대 연 매출을 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A 씨가 2020년 12월 서울 중구에서 운영 중인 음식점 이름을 기와집삼계탕에서 엄마 토속촌삼계탕으로 바꾸면서 비롯됐다. 이 가게 역시 토속촌삼계탕처럼 삼계탕을 주력 메뉴로 삼고 있다. A 씨는 상호 변경 이후 토속촌삼계탕 앞에 가맹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붙이기도 했다.

이에 토속촌삼계탕은 지난 3월 A 씨가 지금의 가게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법률대리를 맡았다.

토속촌삼계탕 측은 “A 씨는 동일·유사한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해 토속촌삼계탕이란 상호에 편승하고자 했다”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토속촌삼계탕과 엄마 토속촌삼계탕을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르신들이 서울 시내 한 삼계탕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르신들이 서울 시내 한 삼계탕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 “소비자 오인·혼동…상호 바꿔야”

법원은 토속촌삼계탕이 창업자부터 현재 대표까지 40년간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면서 유명 음식점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상호 등 영업표지가 독자적인 식별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지난 3월 초 기준 지금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 올라온 토속촌삼계탕 방문자 리뷰는 총 6735건, 블로그 리뷰는 3207건에 달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토속촌삼계탕이란 해시태그가 붙어 올라온 게시물도 약 1만4000건으로 집계됐다.

설문조사에서도 토속촌삼계탕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설문조사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6월 7~9일 만 20~58세 남녀 5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7.6%가 ‘토속촌삼계탕의 영업표지를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응답한 사람의 84.5%는 ‘토속촌삼계탕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토속촌삼계탕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중도 70.1%로 집계됐다.

재판부는 “‘엄마’를 제외하면 두 음식점의 상호가 완전히 동일한 데다 외관이나 호칭, 관념이 매우 유사하다”며 “삼계탕을 주메뉴로 취급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A 씨가 지금의 상호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의 오인‧혼동을 일으킨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와 비슷한 이름이나 디자인을 쓰면 부정경쟁 행위로 보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또 한 번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2조는 ‘국내에서 널리 인식된 다른 사람의 성명, 상호, 표장 등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을 사용해 그 사람의 영업상 시설이나 영업 활동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는 행위’를 부정경쟁 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널리 인식됐는지 여부는 사용 기간, 방법, 사용량, 거래범위 등 거래 상황과 사회 통념상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돋보기]

쌀국수업체 미분당, 인테리어 모방 두고 소송 벌여 승리

음식점 이름뿐만 아니라 가게 인테리어를 모방하는 문제로도 종종 법정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쌀국수 프랜차이즈 업체인 미분당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인테리어 무단 도용 여부를 두고 월미당과 소송전을 벌여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0부(임해지 부장판사)는 지난 5월 8일 미분당이 “월미당의 매장 인테리어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취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미분당은 이광숙 대표가 2014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문을 연 쌀국수 전문점으로 2018년 법인으로 전환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성장세를 이어가며 직영점·가맹점 수를 74곳(2022년 말 기준)까지 늘렸다.

이번 사건은 2021년 월미당이 정식 영업을 시작한 이후 사세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미분당과 비슷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꾸미면서 비롯됐다. 월미당은 미분당처럼 한자로 된 상호명을 붓글씨체로 쓴 목재 간판을 달았고, 매장 외부도 일본식 목재로 만들었다.

내부 역시 △일본식 카운터석 △천장 갓등 △목재 소스 받침대 등 미분당과 닮은 점이 많았다. 월미당은 이 같은 인테리어로 만든 매장 17곳(3월 말 기준)을 두고 있다.

월미당의 매장이 자사와 상당히 비슷한 것을 확인한 미분당은 2022년 11월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 법적 분쟁을 시작했다. 미분당 측은 “월미당이 영업외관 표지를 무단 도용해 소비자들의 오인·혼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월미당 측은 “이 같은 인테리어는 다양한 요식업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미분당이 약 9년간 같은 인테리어를 사용해온 점 △온라인 검색포털사이트에서의 월간 검색량이 증가하는 등 인지도가 높아진 점 △방문 고객들이 매장 모습을 SNS에 올려 대중과 공유한 점 등을 근거로 미분당의 매장 인테리어가 독자적인 식별력을 갖췄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미분당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자로 표기된 간판, 일본풍의 외관이나 분위기를 낸 베트남 쌀국수 음식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분당은 영업외관 표지를 장기간 독점적·배타적으로 사용해 국내에서 널리 인식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월미당이 지금의 인테리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에서 금지한 영업표지 혼동 행위로 이대로 영업을 계속하면 미분당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볼 것”이라고 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