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가짜뉴스보다 더 나쁜 엉터리 사례연구[박찬희의 경영 전략]
사례연구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로스쿨이나 경영대학원의 사례연구가 대표적이지만, 사실 의학 분야의 임상 콘퍼런스도 다르지 않다. 전쟁이나 정치에 대한 고전들도 다양한 사례들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경영전략 분야는 특히 사례연구가 중요한데 통계나 설문, 혹은 실험이 어려운 내용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사례연구의 타당성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두 건의 사실로 객관적 검증도 없이 일반론을 주장한다는 비판은 점잖은 편이고, 특정 회사나 경영자를 띄우는 홍보자료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있다. 일리 있는 얘기이고 정말 엉터리 사례연구도 많지만, 꼭 생각할 점을 짚어내는 사례연구 본연의 가치는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의 크고 작은 보고서나 컨설팅 프로젝트는 사실상 사례연구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례연구도 생각 없이 무식하게 쓰면 해악이 된다. 엉터리로 짜맞춘 사례와 대충 그럴듯하게 갖다 붙인 얼치기 분석은 가짜뉴스보다 나빠서 경영자와 회사를 망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 제대로 된 사례연구란 무엇인지, 어떻게 엉터리를 가려내서 경영자와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다.
사례연구는 ‘위인전’이 아니다사례연구는 생각하는 논점을 구체적 사실로 뒷받침하는 검증방법으로, 정보자료를 교차검증해서 객관성과 타당성을 높인다. 엄밀하게는 ‘현장연구(field study)’라는 방법론인데 그 결과를 압축해서 토론용 사례로 쓰다 보니 흔히 사례연구로 불린다.

“잘못된 보상체계가 무리한 투자로 이어진다”는 논점을 여러 기업들의 특징적 내용과 실적자료를 놓고 통계적으로 검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심지어 여러 기업들에 대해서 구하기는 어렵고 여러 사례들의 특징적 내용들이 묻혀버린다.

따라서 먼저 중요하고 특징적인 사례를 찾아서 살펴보고 여기서 얻은 의미 있는 논점들을 더 넓은 범위에서 검증하는 ‘선험적(exploratory)’ 전략이 필요한데 뻔한 이론, 막연한 상식을 넘어서는 데 효과적이다.

엔론(Enron)의 대형 스캔들은 보상체계와 투자에 대하여 특징적 사례가 될 수 있다. 경영진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으로 보상체계와 투자 경위를 확인할 수 있다.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추가적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업보고서·회의기록·내부 문건과 교신기록도 중요한 정보가 된다.

보상체계의 구성이나 투자 결정 과정, 사업실적과의 관계에 대해 몇 개의 작은 사례연구를 먼저 해보는 접근도 가능하다. 다른 기업들과 (실험처럼 일정 조건을 통제해서) 비교해볼 수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나 통계적 분석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들을 다각도로 교차해서 검증하면 일방적 기억이나 주장, 잘못된 기록이나 거짓된 내용을 가려낼 수 있다.

이는 역사적 연구(historical study)의 방법론이나 언론의 사실확인(fact check)과 같다. 미국의 산업화와 기업체제 변화에 대한 챈들러(Chandler)의 연구는 이런 과정으로 이뤄졌는데, 주요 기업들의 ‘진짜 기록’에 접근할 수 있던 집안 배경에 힘입은 것이다.

사례연구를 ‘성공요인 찾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하버드 경영사례를 좋은 회사, 훌륭한 경영자의 위인전으로 여기고 사례 출간을 로비하는 일도 벌어진다.

성공한 사례에 눈여겨볼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례연구는 특정한 논점에 집중한다. 애플의 운영체제(OS) 전략이 노키아와 무엇이 왜 다른지 보는 것이지 애플의 성공을 찬양함이 아니다.

성공 스토리를 다루어도 과연 성공이 무엇이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대안적 분석’을 시도해야 한다.

애플의 전략이 A·B·C로 구성되고 노키아의 전략이 B·C·D로 구성됐다고 하자. A와 D에 초점을 두고 애플과 노키아의 차이를 찾아보고 나머지 B·C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접근은 일리가 있지만, 애플의 모든 것이 성공 요인일 수는 없다. 잘되는 회사 이야기 뭉뚱그려서 성공전략 운운하고 이것을 외워서 떠드는 짓은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것보다 더 한심하다.
정보판단의 기본, 소통의 수단사례연구는 어렵다.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운 데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사실관계에서 정보를 찾아내려면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연구 과정이 통계나 설문처럼 표준화되기 어려우니 검증이 만만치 않고 엉터리가 끼어든다. 어설픈 경영학 단어로 대충 짜맞추면서 사례연구라 떠들거나 사례분석 요약본 몇 줄 외워서 아는 척하는 짓을 가려내야 한다.

사례연구(사실은 현장조사)는 가설검증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른다. 사전 조사로 검증할 질문을 만들고 더 깊이 파고들면서 자료조사·통계분석·설문조사를 포함해서 다른 가능성을 검토한다. 정보·감찰기관의 심층보고서, 기업의 전략보고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요한 정보판단이니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고, 복수의 채널로 교차검증해서 오류와 왜곡을 막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사와 검증, 정보판단의 마인드는 전략경영의 기본이다.

사례연구가 공급자 역할이라면 주어진 사례를 놓고 분석·판단하는 수요자의 역할도 있다. 문제를 정의해서 답을 찾는 점에서 비슷한데,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정답을 구해서 아는 척 떠들면 오히려 생각이 굳어버린다.

만약 경영자가 되면 정보조작에 휘둘려서 억울한 사연을 잔뜩 만들다가 회사와 나라를 망친다. 가짜뉴스를 외워서 따라하는 셈이다.

사례를 놓고 토론하며 공부하면 제목과 키워드만 머리에 남는다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 “XXX에 대해서 쓰라”는 미련한 암기시험을 걱정하기 때문인데, 제목과 키워드, 판단의 기억이 있다면 나머지는 찾아보면 된다.

이런 암기시험은 인공지능 시대에 박멸해야 할 구태일 뿐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한때 비슷한 불만이 있어서 책이나 논문의 요약본, 주요 개념을 담은 노트를 제공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개념과 분석틀을 외워서 떠들고 고민과 토론을 안 하는 점이 발견돼 중단한 바 있다(핵심 개념이나 인터뷰를 담은 영상물로 방향을 바꿨다). 마구 외운 지식은 무지함보다 나쁘다는 얘기다.

사례연구가 제시하는 논점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공유된 개념과 해법은 경영자의 의사소통을 돕는다. 역사책에는 군주와 신하가 문헌 속의 고사(古事)를 예로 들며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복잡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도 쉽게 사례와 논점을 공유하는 것인데, 현실을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부담을 더는 면도 있다. 이런 예화들은 사실이 아닌 공유된 가상사례인 경우도 많은데, 반란과 암살은 측근을 조심하라는 ‘브루터스 현상’도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 ‘삼국지’의 사건과 인물을 예로 들어 의사소통을 한다. 동화 속 얘기도 마찬가지다. 사례도 일정한 개념과 해법을 공유하는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실의 상황과 맥락을 더해서 새롭게 생각할 때 더 쓸모가 있다. 최근의 사례 기반 수업은 주어진 사례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스스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 검증하고 답을 찾는 훈련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보에 대한 판단은 물론 그 이상의 해석과 추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시간 읽고 2시간 생각하는’ 정보판단의 기본개념이 경영전략에도 도입된 셈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