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반도체 그 이후 넥스트K가 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넷플릭스
한국 영화가 가장 권위 있는 미국 영화상을 받고, 빌보드 차트에 심심치 않게 한국 그룹의 노래가 오른다. 중동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에 한국 가수가 등장해 오프닝을 장식하고 83개국에서 동시에 한국 드라마가 시청 1위를 기록한다. 지난 3년간 K-콘텐츠가 쌓은 업적이다.

한류의 파도가 아시아를 넘어서자, 콘텐츠 산업이 ‘수출 효자’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콘텐츠 수출액이 가전과 배터리를 제쳤고, 무역수지 흑자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7년간 성장률만 놓고 보면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를 뛰어넘는다.

반도체 수출액이 2005년에서 2022년 4.2배 성장할 때 콘텐츠는 10배 뛰었다. 한한령(한류 금지령) 이후 중국에서의 실적은 줄었지만, 오히려 한류가 영토를 넓히며 미국과 유럽, 중동 등 세계로 뻗어 나간 결과다.
'한국 욕'까지 유행시킨 K콘텐츠, 가전·배터리 수출 넘어섰다 [넥스트K가 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30억1000만 달러(약 17조원)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2차전지(99억9000만 달러), 가전(80억5000만 달러), 전기차(98억2000만 달러) 수출액을 뛰어넘는다. 이 실적에는 해외에서 생산된 한국 기업의 가전과 2차전지의 수출액은 포함되지 않았다.

콘텐츠 산업 수출이 늘자, 국내 콘텐츠 지식재산권(IP) 관련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섰다. 한류의 역사에 비해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2010년대만 해도 콘텐츠 IP는 줄곧 무역적자를 냈다.

한국이 콘텐츠 흑자국으로 변신한 건 2020년부터다. 성장세는 가팔랐다.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콘텐츠 IP가 벌어들인 이익은 3년 반 동안 2조원이 넘는다(한국은행).

K팝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실적 축제를 벌였다. 특히 올해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섰다. BTS와 뉴진스를 보유한 하이브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316억원 가운데 63.3%에 달하는 6526억원을 해외에서 올렸다.

트와이스와 스트레이키즈가 속한 또 다른 대형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도 같은 기간 해외 매출을 52.2%까지 끌어올려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 블랙핑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48.6%로 해외 매출 비중이 창사 이래 가장 높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흥행도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해 미국 OTT 이용자는 자국 콘텐츠 다음으로 한국 콘텐츠를 즐겨봤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OTT 이용자의 90.4%는 자국 콘텐츠를 가장 많이 이용했고 한국 콘텐츠가 43.1%로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영국(28.7%), 일본(25.3%), 중국(16.2%) 순이었다.

당장 숫자로만 증명된 것보다 더 큰 성과가 있었다. 문화가 가진 낙수효과다. ‘한국풍,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 글로벌 시장에서 라면, 김밥, 갈비 등 한국 음식 열풍이 불었고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며 위기를 맞았던 K-뷰티에도 활로가 생겼다.

라면 수출액은 올해 9월까지 약 9400억원을 달성하며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고 미국에서는 김밥 열풍이 불었다. 일본에서는 K-뷰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일본의 화장품 수입액 1위 국가에 한국이 올라섰다.

한국어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프랑스에서는 19개 대학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됐고 미국 LA의 한 대학에는 세종대왕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드라마의 유행으로 ‘X발’, ‘X나’ 등 한국 욕까지 유명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더 글로리’의 영향으로 한국어 비속어가 전 세계에서 통하고 있다.

한류가 전 세계 문화에 깊숙하게 자리 잡으면서 ‘넥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경연은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불황 국면에 진입하며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이 감소 추세에 있다”며 “성장하는 K-콘텐츠 산업을 무역수지 적자 극복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