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반도체 그 이후 넥스트K가 온다]
‘소변·다람쥐’에서 ‘자동차·반도체’까지...한강의 기적 만든 ‘수출’[넥스트K가 온다]
“소변 한 방울도 아껴서 수출하자.”

수출 주도의 경제 체제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외화벌이에 매달리던 시절이었다. 과거 한국 수출을 먹여 살린 효자 품목들을 보면 다양하다.

심지어 소변까지 해외로 팔 정도였다. 사람의 소변에서 추출하는 유로키나제는 중풍치료제의 원료였기 때문다. 당시 유로키나제 1kg은 2000달러가 넘는 고가 수출품이었다. 마땅히 수출할 게 없었던 한국에선 한 방울의 소변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다람쥐도 과거를 대표하는 수출품 중 하나다. 한국 다람쥐는 유독 귀여운 외모로 애완동물로 인기를 끌었다. 유럽, 일본 등이 한국 다람쥐를 수입하는 국가들이었다.

1970년대에는 경공업 제품들의 수출이 활발했다. 그중에서도 섬유가 최대 수출품으로 떠오른다. 1970년 섬유류 수출 규모는 약 3억4000만 달러였다. 수출총액의 41%에 달하는 수치였다. 단일 품목이 수출의 40% 이상을 점한 것은 섬유가 유일했다. 주종은 스웨터. 당시 한국 스웨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스웨덴이었다. 인구 두 명 중 한 명이 한국산 스웨터를 입었을 정도였다는 얘기도 있다.

1970년대 수출을 얘기할 때 가발도 빼놓을 수 없다. 부모 약값, 동생의 학비 등을 대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판 여인의 얘기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일 정도로 가발 수출이 활발했다. 특히 한국 가발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외화벌이를 톡톡히 해냈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자’는 식이었던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에 큰 변화가 생긴 건 1980년대다.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면서 수출 품목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경공업 제품 중심에서 기계·선박·철강 등 중화학 제품이 수출 품목의 40~50%를 차지할 만큼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그룹이 노르웨이·그리스 등에 선박을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다.

이제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가전제품들도 1980년대를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나갔다.

이렇듯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한국 경제는 수출을 앞세워 ‘한강의 기적’을 썼다. 수출은 해마다 40%씩 증가했고 이에 힘입어 연평균 경제성장률 역시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8년에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성과까지 거둔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는 ‘수출 암흑기’로 꼽힌다. 당시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이 원인이었다.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며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자연히 한국 수출 또한 위기에 빠진다.

무역적자가 한동안 이어졌다.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이 힘을 잃으면서 결국 1997년 IMF까지 맞이한다.

그러나 한국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 역시 수출에서 나왔다. IMF를 겪으며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연구개발(R&D)에 매진했다. 그 결과 자동차·반도체·컴퓨터·휴대전화와 같은 새로운 수출품목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품목들을 앞세워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의 수출 강국 중 하나가 됐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