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반도체 그 이후 넥스트K가 온다]
K2 흑표 전차가 전차포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육군 제공
K2 흑표 전차가 전차포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육군 제공
국내 방위산업과 원전사업이 잇따른 대형 수주에 힘입어 반도체 이후를 책임질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해외 방산 수주액은 연간 20억~30억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7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2년에는 170억 달러를 돌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갈등 심화에 따라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한 가운데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격화하면서 한국이 수혜를 본 것이다.

두 개의 전쟁 이후 안보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전 세계 각국에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리며 무기 재고 비축에 나서고 있다. 군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K-방산은 단숨에 글로벌 방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래프=박명규 기자
그래프=박명규 기자
폴란드·호주 이어 중동 진격…일감만 100조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전쟁 등의 영향으로 지난 5년간 무기 수출 규모가 74% 급증했다. 2022년 폴란드와의 대규모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방산 기업들은 해외 무기시장에서 잇따라 러브콜을 받으며 173억 달러(약 22조원)라는 역대 최대 수출 성과를 거뒀다.

이 중 폴란드와 한국 기업들이 체결한 금액은 124억 달러로 전체 방산 수출액의 72%를 차지한다. 수주 잭팟을 터뜨리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넥스원·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 5사의 방산 수주 잔액은 2022년 기준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는 한국을 비롯해 폴란드, 호주, 튀르키예, 이집트 등 전 세계 9개국이 사용하는 베스트셀러 무기다. 수출 시장점유율 50%를 넘겼으며 누적 수출액 5조원에 이르는 K-방산 수출의 일등공신이다.

최근 루마니아의 자주포 도입사업 입찰적격후보에 선정돼 독일의 PzH2000, 튀르키예의 T155 Firtina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K9 자주포는 독일의 PzH2000과 비교했을 때 성능이 뒤지지 않으며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이런 흐름 속에서 방산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해 2027년까지 방산 수출 시장점유율을 5%로 끌어올려 미국·러시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 수출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17일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 ‘서울 아덱스(ADEX) 2023’ 개막식 축사를 통해 “우리 방위산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며 “원조와 수입에 의존하던 나라가 이제는 최첨단 전투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수준으로 도약했다”고 말했다.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에서도 적극적인 방산 분야 세일즈를 펼쳤다.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국·사우디아라비아는 국방·방산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사우디에 대한 대규모 무기 수출 계약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동 지역에서 K-방산 수출 확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는 2022년 11월 방한 당시 중거리 지대공 요격체계 ‘천궁-Ⅱ’ 등에 관심을 보였다. 사우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하는 다연장로켓(MLRS)인 ‘천무’를 배치한 데 이어 LIG넥스원의 유도 로켓 무기인 ‘비궁’을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사우디가 예멘 후티 반군으로부터 탄도미사일과 드론 등을 이용한 공격을 받았던 만큼 요격미사일 수요가 큰 상황이다.

중동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수니파·시아파 갈등 등 분쟁이 잦은 한편 풍부한 오일머니를 갖고 있어 세계 최대 무기 수입 지역이다. SIPRI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 5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한 국가 2위로, 세계 전체 무기 수입량의 9.6% 차지했다. 이어 3위가 카타르(6.4%)다.

K-방산이 역대급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수출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넘아야 할 과제도 있다. 폴란드 2차 수출 계약 성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수출금융 한도로 인해 2차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과 폴란드 정부는 현대로템의 K2 전차 820대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360문, 천무 다연장로켓 70문 등 약 30조원에 이르는 2차 방산 계약을 논의 중이다.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폴란드 무기 수출을 위해 구매국에 정책 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 한도가 거의 다 차 2차 수출 계약이 계속 지체되고 있다.

현행 수은법 및 시행령은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높이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함에 따라 국내 방산 기업들의 폴란드 수출 2차 실행계약 체결은 물론 향후 추가 무기 수출에서도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전경. 사진=한수원 제공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전경. 사진=한수원 제공
원전 부활 속도전…‘2.5조’ 원전 설비 수주

원전도 수출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원전 수주 성과는 이집트 엘다바 원전이었다. 이어 2조5000억원 규모의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 사업을 수주하며 정부가 핵심 국정 과제로 삼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전략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 사업에서 한수원의 사업 참여 및 사업비 비율은 대략 40%(약 1조원)가 될 전망이다.

탈원전 기조로 위축됐던 국내 원전산업은 원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통해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원자력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5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원전업계 전체 총 매출은 2020년 4조원 규모로 줄었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1억2641만 달러에서 3061만 달러로 급감했다. 활력을 잃었던 원전업계는 최근 정부의 체코, 폴란드 등 원전 세일즈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그래프=박명규 기자
그래프=박명규 기자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퇴출에 따른 공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과도기 수단으로 원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전력수급 불안정으로 원전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글로벌 신규 원전 건설이 최대 5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원전산업은 내수뿐 아니라 해외수출에서도 성과가 기대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은 원전 사업을 전면 중단했고 신냉전 국면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미국과 프랑스로 압축된다. 한국은 국내외에서 원전 31기를 건설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으며 시공능력, 가격, 평판, 정부 지원에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뉴스케일파워가 아이다호에 건설한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감도. 사진=뉴스케일파워 제공
미국 뉴스케일파워가 아이다호에 건설한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감도. 사진=뉴스케일파워 제공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수출의 새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원자로, 증기 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전기 출력 300MW 안팎의 소형 원자로다. 전력, 수소 생산, 해수 담수화, 지역난방 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글로벌 SMR 사업 확대를 목표로 기술·금융 및 제작 공급망 지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 심사를 최초로 완료하는 등 SMR 상용화에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뉴스케일파워와 지분 투자를 통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영국왕립원자력연구원은 2035년까지 SMR 글로벌 시장 규모가 6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전업계에선 SMR이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대형 원전 대비 뛰어난 안전성과 경제성을 갖추고 있어 미래 에너지의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만큼 향후 K-원전의 주력 수출 품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