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반도체 그 이후 넥스트K가 온다]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 1공장에서 직원들이 주력 모델인 ‘2170 원통형 배터리’ 완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은 거의 전량이 글로벌 1위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에 공급된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 1공장에서 직원들이 주력 모델인 ‘2170 원통형 배터리’ 완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은 거의 전량이 글로벌 1위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에 공급된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미국·중국 간 기술 패권전쟁이 반도체를 넘어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로 확대되며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터리는 미래산업의 발전 방향성인 전동화·무선화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동력원이다.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을 선점해야 향후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19년 232만 대에서 2030년 약 5568만 대로 연평균 3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도 늘어나 2019년 118GWh 수준에서 2030년에 3647GWh로 연평균 3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전기차와 배터리 수출액은 최근 몇 년 새 급증하고 있다. 2022년 전기차 수출액은 82억 달러로 2017년 4억 달러 대비 20배가량 증가했다. 배터리는 2020년 49억 달러에서 2021년 58억 달러, 2022년에는 73억 달러로 집계됐다.
그래프=박명규 기자
그래프=박명규 기자
자동차, 반도체 공백 메우며 수출 1위로

반도체가 업황 악화로 주춤한 사이 자동차가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자동차가 친환경차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무역수지 1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자동차의 무역수지가 전체 수출 품목 중 1위에 오른 것은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반도체를 앞지른 것은 자동차가 2위, 반도체가 3위를 기록했던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

현대차·기아의 2022년 국내 생산은 전년 대비 6.9% 증가한 173만2317대, 수출은 9.9% 증가한 100만9025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상반기 수출 물량이 처음으로 100만 대가 넘어 연간으로는 2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등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이 주효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전 세계 판매량(365만8000대·도매 기준) 중 미국 내 판매량은 85만9000대로, 비중이 23.5%에 달했다. 미국 다음으로는 한국(18.9%), 유럽(17.5%) 등 순이었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판매량은 2022년보다 16만 대 증가했고, 이에 따라 판매 비중도 2.3%포인트 커졌다. 친환경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제네시스의 판매 호조가 현대차·기아의 미국 시장 선전을 이끌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22년 현대차그룹의 자동차판매량은 684만5000대로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국내 완성차 수출은 2022년 541억 달러(222만 대)로 내수판매(117만 대)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222억 달러, 비중 41.1%) 수출 비중이 가장 높고 캐나다(33억 달러, 6.1%), 호주(33억 달러, 6.0%), 영국(22억 달러, 4.1%), 독일(17억 달러, 3.2%) 순이다. 다만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자동차부품업체들의 해외 생산공장이 중국에 많이 분포하고 자동차부품 수입의 중국 의존도 47%로 높아 중국 내 생산 여건 변화, 미·중 갈등에 따른 중국발 부품 공급 차질에 대비해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 정부는 환경 규제 강화와 함께 보조금, 세제지원 확대 등을 통해 전기차 육성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판매 톱4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정부도 전기차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반도체 등 주력 업종의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자동차 분야가 수출과 투자를 견인하고 경제 활력 제고를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국가전략기술에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형 이동수단을 포함해 올해 투자분부터 대기업·중견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최대 3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4월 11일 경기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4월 11일 경기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IRA 수혜’ 배터리, 수주액 1000조 돌파

한국 경제는 수출에 기반한 개방형 경제이기 때문에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경기침체에 빠지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가 큰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요인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악재가 되고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에는 오히려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제조업 강화를 위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판 IRA’로 불리는 EU의 핵심원자재법(CRMA)도 한국 배터리업체들에는 호재다. 특히 IRA 시행에 따라 한국과 경쟁 중인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북미시장 진입이 어려워져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체들은 IRA 시행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도 보게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7312억원을 거뒀는데 이 중 AMPC에 따른 공제액이 2155억원이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성능, 주행거리, 충전시간 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자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터리는 탄소중립과 미래 모빌리티 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머지않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초월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배터리는 한국 경제를 이끌 ‘제2 반도체’로 불려왔다.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16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해 메모리 반도체(1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의 배터리 3사가 IRA 시행 이후 생산거점 확대를 위한 북미 투자를 이어가면서 누적 수주액이 올해 3분기 기준 700조원을 넘어섰다. 배터리 3사의 누적 수주액은 연내 1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기차 생산라인. 사진=한국경제신문
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기차 생산라인. 사진=한국경제신문
배터리 3사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하락세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중국 CATL과 비야디(BYD)에 점유율이 밀리는 모습이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60%를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중국 CATL과 BYD가 각각 전년 대비 1.2%포인트, 3.9%포인트 증가한 36.8%, 15.7%를 기록했다. 상위 10개 업체 중 6개 업체가 중국 업체다.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021년 30.4%, 2022년 24.1%, 2023년 상반기 23.8%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업계에선 유럽과 북미지역 증설을 바탕으로 배터리 3사의 시장점유율이 향후 50% 이상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기존 단점을 보완하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판매에서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원가 절감 차원에서 저렴한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전기차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LFP 배터리를 채택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니켈 비중을 줄인 미드 니켈 제품을 출시해 중국 LFP 배터리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미드니켈의 경우 니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 메탈가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