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10월 23일 기준 연 4.56~7.145%다. 상단은 9개월여 만에 7%를 다시 넘어섰고, 하단은 3% 금리가 자취를 감췄다.
주담대 변동금리가 오른 건 은행채 등 시장금리와 예금금리 상승으로 변동형 주담대 준거금리인 코픽스(COFIX)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가 10월 16일에 공시한 9월 신규취급액 코픽스는 3.82%다. 한 달 새 0.1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올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의 금리 변동이 반영된다. 코픽스가 떨어지면 그만큼 은행이 적은 이자를 주고 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고, 코픽스가 오르면 그 반대다. 시중은행들은 지난 10월 17일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에 이날 공개된 코픽스 금리를 반영해 변동금리를 인상했다.
신규 코픽스는 지난해 11월 4.34%로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타 올해 4월 3.44%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5월부터 다시 반등해 등락을 거듭하면서 올 들어 최대치인 3.82%까지 올랐다. 이달 대출 실행 예정인 차주라면 코픽스 상승분만큼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변동금리를 선택한 기존 차주들도 금리인상 통보를 받게 된다. 변동금리 주담대의 경우 일반적으로 6개월마다 대출금리가 재산정되는데 최근 코픽스가 다시 오르면서 변동주기인 6개월 전보다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상승 전망도 커졌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6회 연속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는 동안 시중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오히려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은이 10월 25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18에서 128로 한 달 사이 10포인트나 올랐다. 지수로는 올해 1월(132) 이후 가장 높았으며, 상승폭 역시 2021년 3월(10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해당 지수는 “6개월 후 금리가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하락을 예상한 사람보다 많으면 100을 웃돈다. 1개월 사이 시중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는 상승 전망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고 장기 국고채 금리도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이)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것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주담대 최고금리가 연내 8%에 근접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연내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데다 은행채 상승, 은행권 수신경쟁까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은의 진퇴양난하지만 한은이 연내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시장은 한은이 금리인상을 결정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있다. 백윤민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준금리 인상·인하 요인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이 현실화되기 전에 한은이 어느 쪽이든 선제적으로 통화정책 대응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는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연내 동결을 예상하고 있다.
한은이 우려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대출 부실 가능성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금리를 왜 올리지 않느냐’는 의원들의 추궁에 고금리에 따른 금융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등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저희(한은)가 금리를 더 올릴 경우 물론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에 따른 금융시장 안정 문제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하고, 물가(소비자물가상승률)도 한때 2.3%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의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국내 가계대출 대출자는 모두 1977만 명으로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3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전체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3%로 나타났다. DSR은 연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40%가 넘었다는 것은 대출자들이 연간 소득의 40% 이상을 대출 원리금으로 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DSR이 100% 이상인 차주도 전체의 8.9%를 차지했다.
자영업자들의 이자 부담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한은의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 말의 684조9000억원과 비교해 50.9%나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00%를 기록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인 0.2~0.3%대와 비교해 3배 이상 높았다. 금리를 동결하는 동안에도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이 총재는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인상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5월에도 “한은이 (추가 금리인상을) 절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고, 7월 금통위에서도 “최종금리에 대해 금통위원 6명 모두가 기준금리를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구두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시장의 신뢰다. 계속된 경고와 달리 금리 동결이 지속되자 한은의 선택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치기 소년의 말”, “폭탄 돌리기”, “물가보다 부동산 걱정하는 한은”, “국토부 장관이 된 한은 총재”, “한은 본연의 임무를 내팽겨친 상황”…. 기준금리 동결 소식에 달리는 반응이다.
인상론자들은 2.0%포인트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나 원·달러 환율 상승, 다시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가계부채의 증가다. 가계 빚은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3조6000억원)와 올해 1분기(-14조3000억원) 잇따라 뒷걸음치다가 올해 2분기, 즉 세 분기 만에 다시 반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는 뜻이다.
한·미 금리 역전 차로 원·달러 환율 상승과 자금 유출 압박도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뛰면서 원·달러 환율은 10월 4일(종가 1363.5원)은 지난해 11월 10일(1377.5원) 이후 약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다.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도 9월 14억3000만 달러 빠졌다. 8월(-17억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순유출이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물가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3.7%로 한은의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물가 불안은 큰 상황이다. 10월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심리지수는 석 달 연속 하락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물가 불안 우려, 고물가로 인한 내수 부진, 긴축 기조 장기화 등이 소비자심리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
한은의 설립 첫째 목표가 물가안정이란 점도 인상론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행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단 여기에 “이 과정에서 금융안정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뒷말이 따른다. 한은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딜레마가 빨라도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2분기 이후에나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과 함께 한은도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시각이다.
김지만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2024년 상반기까지 동결 후 내년 3분기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내수 부진에 따른 물가 안정을 바탕으로 내년 3분기부터 물가가 관리 목표치(2%)에 근접할 것”이라며 “이 경우 한은은 내년 하반기 두 차례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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