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풀어낸 해양패권 흥망사[서평]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폴 케네디 지음|이언 마셜 그림|강주헌 역|한국경제신문 |4만원
22세기를 앞둔 지금도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까지 연이은 참혹한 전쟁 가운데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뉴스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터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전쟁사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역사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울프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 저자 폴 케네디가 오랜만에 바다에서의 승리가 모든 것을 좌우했던 해양 전쟁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해양 전쟁에서 펼쳐지는 강대국의 흥망에 대한 스토리를 미국의 대표적인 해양화가 이언 마셜의 아름다운 수채화들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 여러 군함들과 해양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삽화 53점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도 매우 기념할 만하다.

폴 케네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러한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1945년 미국이 갑자기 세계 최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된 성장 과정을 추적하고 평가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동안 바다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연구인 동시에 더 큰 안목에서 근대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연구이자,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패권 전쟁의 시기에 국제 체제 내에서 힘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넓고 깊게 추적한 기록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식이 아니라 다각도의 관점들을 탁월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해군의 군사적 작전만이 아니라 교역과 외교, 재정 정책 및 혁신적 과학기술까지 언급하면서 해양패권과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해전의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진 단계들을 찾아내고, 그 단계들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이면들을 파헤친다. 엄청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학술서에 걸맞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고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몰입감을 더한다.

폴 케네디는 1936~46년(10년) 사이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해군 강대국들의 전략적 풍경이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짚어낸다. 첫째, 이탈리아·독일·일본·프랑스의 해군이 소멸하며 유지해온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고, 둘째, 대포를 장착한 군함(수상함)의 시대가 끝났다. 셋째, 원자폭탄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군의 효용성과 역할에 의문이 던져졌고, 넷째,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새롭게 개편된 국제 질서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대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해군력에 영향을 주었는지, 또 그로 인해 세계 주도권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으며 진정한 승리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 파헤친 생생하고도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폴 케네디가 남긴 또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을 통해 전쟁의 인과관계의 사슬을 되짚는 일은 오늘날 끝나지 않는 전쟁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제러미 블랙은 이 책을 추천하며 “과거와 현재의 전쟁을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역작”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혜영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