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생긴 지주택, 정비사업 규제 풀리자 토지주들과 충돌
실효성 문제 크지만 없애기 어려워, 신규 주택공급에 걸림돌

사당2동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등 관계자들이 동작구 소재 건영섬유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사당2동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등 관계자들이 동작구 소재 건영섬유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 집값 상승기에 우후죽순 생겼던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지역사회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도시정비사업 규제가 완화되면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되던 일부 지역 토지주들이 직접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 토지주는 “내 땅에 정당하게 아파트를 짓겠다는데 방해를 받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지역주택조합 대행사와 모집조합원들은 “우리가 먼저 사업을 추진했다”면서 우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도시기반 시설 및 주택정비 목적에 따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의 규제를 받는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달리 1980년 서민주거 마련을 위해 도입된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주택법에 그 내용이 규정돼 있다. 따라서 재개발과 달리 사업 추진 지역에 토지를 보유하지 않고도 토지주들로부터 토지사용권원(토지사용승낙서 등)만 확보한 상태에서 해당 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 또는 85㎡ 이하 1주택자를 조합원으로 모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승인 단계에서는 결국 토지 95%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토지나 주택 등 기존 부동산 소유주들이 모여 설립하는 일반 정비사업 조합과 달리 성공 가능성이 낮다. 땅값이 크게 올라 사업 성공의 관건인 토지매입 자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초기부터 사업을 주도한 업무대행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등의 문제로 사업비를 모은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 역시 부지기수다.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선 “(지역주택조합을) 원수에게 추천하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원칙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할 권리는 지역주택조합이 아닌 토지 소유주에게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전문가는 그동안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지역주택조합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미 손실을 봤거나 ‘내 집 장만’을 꿈꾸는 지역주택조합원들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화재 등 위험이 상존하는 노후 주택가의 정비와 신규 주택공급은 지체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선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지만, 지역주택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현행 주택법을 대대적으로 손질되지 않는 한 조합원 모집신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파트 짓기 어려운 곳에 조합원 모집
지난 8월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서울에만 118개 지역주택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2016~2017년 이후 집값 상승기에 생겨나 조합원들을 대거 모집했다. 2020년부터 신규로 신고된 곳만 38개에 달한다. 이들 조합은 매일같이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로또 분양’, ‘청포자’(청약을 포기한 수요자를 일컫는 말)라는 말이 돌 만큼 높았던 아파트 청약의 벽을 느낀 수요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청약가점이나 청약통장이 없어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서울 내 정비사업 해제구역이 생겨나며 ‘개발 공백상태’에 빠진 노후 주택가가 늘었던 것도 지역주택조합 증가에 한몫했다.

이렇게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합은 허위과장광고를 하기도 했다.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로 새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거나 “추가분담금이 없다”,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다” 등 주택 수요자들이 솔깃할 만한 내용이다.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 마찰 빚는 지역주택조합 [비즈니스 포커스]
대표적인 사례는 사당2동 지역주택조합(가칭)이다. 이 조합은 2018년 7호선 내방역 인근에 홍보관을 차리고 조합원들을 모집했다. 이 지역은 4호선 이수역 역세권인 데다 강남권과 인접한 입지를 자랑한다. 이에 따라 조합은 순조롭게 조합원을 모집해 사업비 500억원을 걷었다.

문제는 모집신고가 이뤄진 지역이 당시로서는 아파트 개발이 어려웠던 곳이었다는 점이다. 공동주택을 개발하기에는 법정 용적률이 낮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 및 제2종 일반주거지역(7층 이하)으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조합은 서울시에 새 지구단위계획을 제안해 용도지역 변경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사업초기 업무대행사 수수료 등으로 350억원이 지출된 상황이다. 조합원들은 뒤늦게 수수료가 과도하다며 다른 업무대행사와 계약했다. 하지만 앞으로 토지매입을 하려면 추가적인 부담이 불가피하다. 버티는 조합원들, 토지주와 갈등
이 같은 상황에서 사당2동 지역주택조합은 이 일대 토지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원들은 매주 속옷공장인 건영섬유 앞에서 토지사용승낙서 등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건영섬유는 속옷회사로 알려진 신영와코루가 보유한 생산시설로 사당2동 주택가 한가운데 약 6000㎡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해당 주소지의 공시지가는 1㎡당 437만원으로 공시가 기준으로만 지역주택조합이 보유한 사업비를 훌쩍 넘는다. 신영와코루 측은 토지사용승낙서에 서명해줄 의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영와코루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지역 내 토지주들의 동의율이 낮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법률 검토를 거쳐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일부 토지주들이 지역주택조합과 일부 겹치는 부지에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을 추진하고 나서면서 이해관계가 엇갈린 상태다. 사당2동 재준위에 따르면 현재 이 부지는 재개발 노후도 요건을 충족했으며 신통기획 추진을 통해 7층 규제를 완화하는 등 아파트 개발이 가능한 용적률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재준위는 동작구청에 신청서를 접수시킨 상태지만 구청은 개발 추진 시 갈등 가능성을 고려해 상호 간 조정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토지주는 “처음에 지역주택조합이 동의서를 걷고 다닐 때부터 동네 여론이 좋지 않았다”며 “이 주택가보다 먼저 생긴 공장을 상대로 나가달라고 시위를 하거나 집주인들이 추진하는 재개발을 막을 권리가 그들에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부 토지주들은 지역주택조합과 협상을 통해 사실상 지역주택조합의 손실금이 돼 버린 350억원을 떠안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박상동 재준위원장은 “몇 년 사이 동네 땅값이 너무 올라버린 데다 이곳 집주인 상당수는 ‘내 땅에 아파트를 개발할 수 있다면 지역주택조합에 땅을 팔기보다는 직접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지역주택조합이 필요한 만큼 동의서를 걷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모집조합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노원구 상계3구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조합 설립이 무산되며 재개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던 이곳은 2021년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그러나 2017년부터 같은 지역에 추진되던 지역주택조합이 공공재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홍보물을 돌리고 토지매입을 시도하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상계3구역 지역주택조합(가칭) 역시 업무대행사 임원 및 추진위원장이 아파트 일반분양이 확정된 것으로 속여 조합원들로부터 모은 91억원을 받아 빚을 갚거나 호화생활을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조합원들은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토지주와 지역주택조합 간 갈등이 발생한 곳이 몇 군데 있다”며 “서울시로서는 특정 사업방식의 편을 들기보다 인허가 등에 대해 신청이 들어오면 일단 접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지역주택조합 전수조사를 실시한 상태다. 지역주택조합 피해사례가 빈번하게 민원으로 접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31일 서울시는 ‘지역주택조합 피해사례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사례집에선 “지역주택조합원 모집 시 사업계획을 현재 토지이용계획 기준이 아닌 미래의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전제로 설명하고 가입을 유도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하고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이 지구단위계획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제안을 통해 계획이 수립되는 일은 지역주택조합 성공사례와 마찬가지로 매우 드물다”며 “지역주택조합이 1980년대 서민 주거마련을 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이제 실효성이 없어진 만큼 사라져야 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관련 법이 존재하는 한 정부에서 지역주택조합 설립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법기관인 국회 차원에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