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데가 볼베르 경영 3대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보데가스 볼베르 제공
보데가 볼베르 경영 3대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보데가스 볼베르 제공
돈키호테와 플라멩코, 투우로 잘 알려진 나라. 지난 10월 말 스페인행 비행기 보딩브리지에 올랐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4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수도 마드리드. 비좁은 좌석을 상기하면 멀고도 힘든 여정이다.

이튿날부터 강행군을 이어갔다. 카스티야 라만차(Castilla-La Mancha)를 거쳐 알리칸테(Alicante)와 바르셀로나 인근 도시 빌라노바 일라 헬트루(Vilanova I La Geltru)까지, 스페인 주요 와이너리(이하 스페인어 ‘보데가’ 사용)를 돌아봤다. 장장 1000km 넘는 거리다.
스페인의 포도 재배 면적은 총 160만 헥타르(KREI ‘EU 와인산업 동향’ 기준)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와인 생산량은 세계 3위에 머물고 있다. 이베리아반도의 고온·건조한 기후와 모래·바위투성이의 척박한 토양이 포도 생산량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황량한 중부 고원지대 라만차가 첫 방문지다. 평균 해발고도는 600m 이상이다. 이동하는 길,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올리브나무 몇 그루와 포도밭뿐. 드문드문 정의를 좇던 돈키호테가 흉악한 거인으로 착각, 맹공격을 퍼붓던 풍차도 보인다.

마드리드 시내에서 차로 4시간 거리. ‘보데가 볼베르’의 최상급 포도밭 핀카 로스 훈카레스(Finca Los Juncares)가 눈앞에 펼쳐졌다. 해발고도 700m, 전체 넓이는 29헥타르(축구장 41개 넓이)에 달한다.
보데가 볼베르 라만차 포도밭에는 60~70년 수령의 포도나무가 식재 돼있다/ 사진=김동식
보데가 볼베르 라만차 포도밭에는 60~70년 수령의 포도나무가 식재 돼있다/ 사진=김동식
와인 메이커이자 오너인 라파엘 카니자레스는 “템프라니요는 만생종이지만 올해 가뭄이 심해 수확시기를 9월로 한 달 앞당겼다”며 “최상급 레인지 와인 ‘볼베르 퀴베’는 가장 우수한 싱글 빈야드의 오래된 포도나무 열매만 선별해서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라만차는 석회석 조각이 많이 섞인 모래 토양으로,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은 지역”이라며 60년 안팎 수령의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은 1~2kg에 불과하다는 점도 굳이 밝힌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와인을 만들고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한 듯.
볼베르 퀴베 와인은 템프라니요(80%)와 카베르네 소비뇽(20%)을 섞어 20개월 오크 숙성 후 병에 담는다. 첫 잔에서 열대과일 향을 단박에 잡을 수 있다. 조금 지나면 짙은 가죽과 초콜릿 향이 라만차 기후 조건을 잘 전한다. 부드러운 질감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왼팔을 잃었다. 50대 중반에는 감옥에 갇혀 돈키호테를 집필했으니 그 심경이 어떠했으랴. 라만차 정기 가득 담긴 볼베르 퀴베 한잔으로 ‘지각 위로’를 보낸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알리칸테 타리마 포도밭. 전체 면적은 185헥타르. 지중해 영향으로 온화한 대륙성 기후 조건. 겨울 평균 기온은 섭씨 12도 안팎. 높은 산악지역에는 눈도 내린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최대 섭씨 46도까지 올라간다. 강수량은 일 년 평균 150mm 정도. 일교차도 커 산도 높은 포도 재배에 유리하다. 좋은 와인을 양조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이다.

라파엘에 이어 5대째 보데가 경영수업에 한창인 소피아는 “이곳 포도밭은 국립공원 내에 있다. 로마 건축물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어 조심스럽다”며 “대표 와인은 모나스트렐(스페인에서 잘 자라는 포도 품종, 프랑스어 표기는 무베드르)을 베이스로 한 ‘타리마 힐’과 ‘트리가’ 두 종류가 있다”고 꼽았다.
보데가 볼베르 전경 / 사진=김동식
보데가 볼베르 전경 / 사진=김동식
근처 양조장 겸 테이스팅 룸으로 옮겨 대표 와인을 직접 마셔봤다. 모나스트렐 100%를 사용한 타리마 힐은 첫 모금부터 상쾌하다. 검은 과실 향과 가죽 향이 성큼 다가온다. 포도 껍질이 두껍고 당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트리가 와인의 맛과 향은? 먼저 짙고 매혹적인 루비 컬러가 눈에 들어온다. 초보자라도 다크 초콜릿 향을 쉽게 잡을 수 있다. 병 레이블의 3개 원 모양은 ‘살리나스와 움브리아, 시마 3개 산맥에서 각기 자란 포도를 블렌딩해서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어 연말 단합대회용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 두 종류 모두 동원와인플러스에서 수입한다.

스페인어로 ‘돌아오다(귀향)’라는 의미의 보데가 볼베르는 2004년 라파엘 주도로 설립됐다. 대학에서 농업경제와 양조학을 전공한 그는 2011년 알리칸테 지역의 피노소(Pinoso)에 새로운 셀러를 완성했다. 그곳에서 올드 바인(오래된 포도나무)과 모나스트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제고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현재 라만차(D.O. La Mancha), 알리칸테(D.O. Alicante), 후미야(D.O. Jumilla), 알만사(D.O. Almansa) 등 4개 D.O.등급 산지 보데가를 소유하고 있다.

라파엘은 “스페인대사관 서울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품질과 가격 경쟁력 모두 충족해야 한다”며 “우리 보데가는 고품질 와인을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와인시장 선점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호메세라 카바’ 공장 자동화로 가성비 실현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한 나탈리아 에스테소 워커(와인 엠버서더)와 타니아 마르티네즈(국제업무 담당)가 호메세라 보데가 성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김동식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한 나탈리아 에스테소 워커(와인 엠버서더)와 타니아 마르티네즈(국제업무 담당)가 호메세라 보데가 성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김동식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빌라노바 일라 헬트루 소재 호메세라 와이너리 본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가성비 좋은 카바(스파클링 와인의 스페인어 명칭) 생산 1위 업체. 지중해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경사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와이너리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 구입 여부를 결정하자’고 외친다. 자신감이다.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부를 가르겠다’는 것이 주요 영업 전략이다.

실제 한국에서 판매되는 호메세라 카바 한 병당 소비자가격은 2만~3만원대. 품질 대비 이해할 수 없는 가격. 10만원대가 훌쩍 넘는 샴페인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얼마 전 전문가 그룹이 뽑은 스파클링 와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과연 그 비결은 뭘까. 이번 방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냈다. 한마디로 ‘공장자동화 라인업’으로 압축할 수 있다. 포도 선별부터 양조 과정 및 병입, 차량 적재까지 전 공정을 첨단 센서와 컴퓨터가 처리한다.

모든 시스템은 국제 품질규격인 ISO와 BRC를 따른다고. 그 덕분에 고품질과 매력적인 가격, 두 가지를 동시에 유지한다.

호메세라는 스페인 최대 규모, 4헥타르가 넘는 카바 양조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내부 견학 때는 정작 작업자를 만나기 힘들 정도로 한적하다. 지하 복합건물 안에서 연간 카바 6000만 병과 스틸 와인 2000만 병을 생산할 수 있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나오면서 엄청난 시설에 연신 감탄사를 지르자, 관계자 모두 만족한 표정이다. ‘잘 봤지, 그리고 놀랐지’라는 무언의 표현이 전해졌다. 한국 스파클링 와인 소비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고품질이라는 구실 아래.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