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에 ‘객단가 높이기’로 관광전략 전환, 일본 여행비용 더 오를 것

간사이 지방 오쓰 축제(오쓰 마쓰리) 모습.  사진=일본 정부 관광국
간사이 지방 오쓰 축제(오쓰 마쓰리) 모습. 사진=일본 정부 관광국
엔화 가치(100엔당)가 900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일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억’ 소리 나게 오른 항공료와 호텔 숙박값이 일본행을 망설이게 하는 게 사실이다.

시장 조사회사 메트로엔진에 따르면 도쿄 도심(23구) 호텔 가격(2인 1실 기준)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당시 3만9053엔(약 34만원)에서 2023년 8월 6만9281엔(약 60만원)으로 77%나 올랐다. 교토 호텔 요금은 3만9000엔에서 7만3143엔으로 88% 뛰었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삿포로에서도 20~30%가량 요금이 올랐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일본 관광지 가운데 호텔 숙박료가 떨어진 곳은 오키나와 나하시(-18%) 정도다.

항공료가 떨어지지 않는 건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반면 항공편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아서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호텔 가격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서 급등한 걸까. 상황은 반대다. 일본의 호텔 역시 대부분 가격변동제를 실시한다.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린다는 뜻이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 10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51만6500명으로 2019년 10월보다 0.8% 많았다. 월간 기준으로 처음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호텔 수요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못 미쳤거나 이제야 비슷해졌다는 뜻이다. 일본인의 자국 여행 수요도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반면 호텔 숫자는 코로나19 전보다 훨씬 늘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숙박시설을 대폭 늘린 영향이다. 2014년 1만710곳이었던 일본 전역의 호텔은 10년 만인 2023년 1만4260곳으로 1.3배 늘었다. 올림픽 개최도시인 도쿄에선 2014년 800곳이 안 되던 호텔 수가 현재 1600곳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호텔값이 제일 많이 오른 교토도 200곳에서 600곳으로 공급이 3배 증가했다. 인기 관광지 가운데 유일하게 숙박료가 떨어진 오키나와 역시 400여 곳에서 1200곳으로 3배 늘었다. 종합하자면 일본의 호텔 공급은 1.3배 늘고 수요는 그대로인데 가격이 1.5배 가까이 뛴 것이다. 심지어 도쿄와 교토는 공급이 2~3배 늘었는데도 가격이 두 배로 치솟았다.

일본의 호텔값은 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거부하는 걸까. 여기에도 ‘인구감소의 역습’인 인력난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인력난을 가장 심각하게 겪는 업종은 관광·레저·외식업이다. 코로나19 동안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을 이탈한 탓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관광·레저·외식업종이 가장 먼저 인력을 줄이는 것을 경험한 해당 업종의 근로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옮겨간 결과다.

호텔 객실 수는 크게 늘었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일본의 호텔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기로 한다. 특별 할인행사 등을 실시해 무리하게 가동률을 올리기보다 단가를 높인 것이다.

이처럼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드는 게 경제원리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가격과 수요의 반비례 법칙 또한 먹히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호텔값을 비싸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일본의 숙박료가 해외에 비해 저렴했던 데다 지난 1년 새 엔화 가치가 30%가량 떨어진 영향이다.
일본 호텔·항공료 ‘억’ 소리 나게 비싸진 이유[글로벌 현장]
일본 관광청 조사에 따르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숙박비 지출 규모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호텔 단가가 오른 데다 한국, 중국인 관광객보다 체류기간이 긴 미국과 유럽의 관광객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구감소의 역습, 인력난은 일본의 관광정책마저 바꿔놓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이 넘치니 가격을 올리는 배짱 영업에 나선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박력 있는 축제 ‘아오모리 네부타마쓰리’에는 지난해부터 100만 엔(약 875만원)짜리 박스석이 등장했다. 최대 8명이 지역 전통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바로 눈앞에서 거대한 네부타(아오모리 지역 특유의 축제 차량)의 행진을 관람할 수 있는 특등석이다.

네부타마쓰리가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반나절 남짓 구경에 1000만원 가까운 거금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올해 준비한 6석이 연일 매진됐다. 일본 3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교토 기온마쓰리’에는 좌석 한 개 가격이 40만 엔인 프리미엄 관람석도 생겼다. 이 좌석 역시 84석 가운데 65석이 팔렸다. 에히메현 오즈시의 오즈성을 통째로 빌리는 ‘캐슬 스테이’는 1박에 110만 엔(약 959만원)을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고 있다.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가격대의 관광 상품들은 외국인 관광객과 부유층이 주고객이다. 코로나19 이후 단순히 둘러보고 먹어보는 관광에서 체험형 관광이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변화다. 도쿄 긴자의 고급 기모노 가게 ‘긴자모토지’에서는 중국의 젊은 커플이 한자리에서 기모노와 오비 800만 엔어치를 구입해 화제가 됐다. 모토지 게이타 긴자모토지 사장은 “10월 매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두 배 늘었는데 매출은 10배 이상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일본 최대 항공사인 ANA(전일본공수)홀딩스의 국제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배 늘었다. 반기 기준 사상 최고 기록이다. 여행객 숫자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60~70%에 머물렀지만 항공권의 단가가 50% 오른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기록이다.

인력난 때문에 항공사들이 인력을 늘리기가 쉽지 않지만, 굳이 인력을 늘려가며 항공권 가격을 떨어뜨릴 이유도 없는 상황이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규모는 1조3904억 엔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7.7% 늘었다.

이처럼 배짱 영업이 통하자 일본 정부도 전략을 바꿨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확정한 ‘관광입국 추진 기본 계획’을 통해 관광전략을 외국인 관광객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고 보는 ‘양 중심’에서 관광객 1인당 소비 규모를 늘리는 ‘질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양을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2019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188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일본 정부는 2019년 기록을 2025년까지 깨뜨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아가 2030년까지 6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인다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2030년 중국, 이탈리아와 맞먹는 세계 5대 관광대국으로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관광객 숫자보다 주목할 부분은 관광객 소비 목표다. 일본 정부는 2025년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소비 규모를 20만 엔으로 2019년보다 20%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일본에서 5조 엔을 쓰고 가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부유층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 가동률보다 객단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마쓰리(축제) 프리미엄 좌석, 캐슬 스테이 등 초고가 여행 상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 한 차례 일본 방문에 100만 엔 이상을 쓰고 간 ‘고부가가치 관광객’은 29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이들의 소비 규모는 전체의 11.5%(5500억 엔)에 달했다.

일본 정부가 관광업 종사자를 늘리는 대신 돈 잘 쓰는 관광객을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향으로 관광 전략을 바꾸는 것. 이것이 일본의 호텔 숙박비와 항공료가 비싸지는 원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인이었다. 현재 중국인 관광객의 숫자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40%에 머물러 있다. 중국인 관광객까지 가세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일본의 호텔·항공료는 더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