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주춤한 사이 하이브리드 판매 급증
안전성부터 연비까지 갖춰

[비즈니스 포커스]
기아의 미니밴 카니발도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나올 예정이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기아의 미니밴 카니발도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나올 예정이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기아는 최근 미니밴 시장의 최강자인 카니발의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하고 사전계약을 진행 중이다. 특히 기아는 12월 최초의 카니발 하이브리드 버전 출시를 예고해 관심을 끌었다. 최근 하이브리드차 인기가 높아지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확대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카니발 하이브리드 모델은 사전계약 첫날(11월 8일)부터 3만4360대 계약이 이뤄지며 ‘대박’을 예고했다. 기아에 따르면 카니발 전체 부분 변경 모델 계약 건 중 90% 이상을 하이브리드가 차지했다.

기아뿐만이 아니다. 앞서 8월 5세대 싼타페를 출시한 현대자동차도 디젤 모델을 없애는 대신 가솔린과 하이브리드로만 차량 라인업을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는 12월 선보일 준중형 SUV 투싼 부분변경 모델에도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다.

최근 자동차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하이브리드(PHEV) 열풍’이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가운데 그간 한물갔다는 취급을 받아왔던 하이브리드가 다시 ‘친환경차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하이브리드의 귀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거센 ‘전기차 열풍’이 일었다. 곳곳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전망이 빗발쳤다. 매년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전기차 판매량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무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 들어 전기차 판매량이 예상처럼 늘지 않았다. ‘전기차 회의론’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아직 전기차 시대는 멀었다’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출고 대기 1년 넘을 정도로 인기전기차의 인기 하락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1~10월 누적 기준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작년 13만9218대에서 올해 13만3056대로 4.4% 감소했다. 그간 전기차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왔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전기차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1∼10월 승용차 연료별 신차등록대수를 보면 하이브리드는 24만9854대로 작년 같은 기간(17만4074대) 대비 43.5%나 급증했다. 아울러 하이브리드 차량은 전체 등록된 신차의 19.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된 신차 5대 가운데 1대는 하이브리드였다는 얘기다.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도 이런 하이브리드의 인기를 실감한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선호 현상은 출고 대기 기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계속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12월 출시 예정인 기아 카니발 하이브리드의 경우 당장 계약해도 차량을 받기까지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누가 전기차 사요”...‘금의환향’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가 다시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비가 높아 전기차 못지않은 효율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아반떼만 놓고 보더라도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 차이는 최대 10km/L가량이 난다. 그만큼 유지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기차처럼 일일이 충전소를 찾아다니는 ‘불편함’을 감내할 필요도 없다.

높은 가성비에 더해 ‘안전성’까지 갖췄다. 최근 전기차의 경우 급발진을 비롯해 화제 시 불을 끄기가 어렵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그동안 안전과 관련해 논란이 크게 불거졌던 일이 없다”며 “하이브리드 차량이 리스크가 낮으며 유지 및 관리가 쉬운 친환경차로 다시 조명받는 이유”라고 했다.
재조명받는 ‘하이브리드 제왕’ 도요타일각에서는 그동안 전기차 시장이 너무 급속도로 팽창한 점이 다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차량를 찾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거리를 다니는 전기차가 늘어나다 보니 전기차 오너들이 겪는 각종 불편함들이 부각되며 전기차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한 업계 관계자가 내린 진단이다.

다시 하이브리드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전략도 변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연이어 하이브리드차 출시를 예고했다.

대표적인 게 현대차·기아다. 최근 다양한 차종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모델을 연이어 내놓으며 다시 하이브리드 차량 출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신차를 단 한 대도 선보이지 않았던 르노코리아는 내년 하반기에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반등을 노린다.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SUV를 내놓겠다고 예고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활을 꿈꾸는 KG모빌리티는 중국의 배터리업체 BYD와 협업해 하이브리드 모델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보는 업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동안 하이브리드 차량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하다 빠르게 사라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더 이상은 아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최근 판매 추이를 보면 소비자들은 전기차가 아직 얼리어답터적인 성격이 크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엿볼 수 있다”며 “이미 검증된 하이브리드 차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는 한국에서만 높아지는 게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하이브리드가 인기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은 한국처럼 다시 ‘하이브리드 돌풍’이 불고 있는 대표 국가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은 ‘하이브리드’라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충전 인프라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며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 구매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이 데이터 분석 및 자문업체인 글로벌데이터의 분석을 인용한 것을 보면 올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규모는 140만 대로 추정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9%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판매량 추정치는 이보다 적은 120만 대로 예상 점유율은 8%였다. 글로벌데이터는 “미국의 하이브리드 차량의 올해 판매 증가율은 35%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얼마 전 미국 내에서 급증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를 주목해 눈길을 끌었다. WSJ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가성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내연기관차 제조사들을 제치고 2030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차지하겠다는 테슬라의 목표에 제동이 걸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테슬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도요타다.

지난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는 부진했다. 자연히 도요타에 대한 전망도 어두웠다. 도요타는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차량 출시에만 몰두해온 회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도요타는 그 수혜를 고스란히 입었다. 도요타는 올해 9월까지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을 전년 대비 20% 증가한 45만5000대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이브리드 차량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주춤했던 도요타의 주가도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 완성차 업체 사이에서도 하이브리드 출시 예고가 줄을 잇고 있다.

이를테면 전기차 사업으로 대전환을 선언한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 포드도 최근 돌연 ‘하이브리드 라인업 강화’를 외치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