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금리·경기침체 속 ‘강남불패’도 소용없어
공급가뭄에도 매수 미루는 실수요자…‘전세 대란’ 시작될까

‘겨울 온다’ 식어가는 주택시장, 그러나 예고된 전세대란[2024 재테크 키워드 금·반도체·채권]
한국 부동산시장의 역사는 반복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의 답이 곧 나올 전망이다. 올해 들어 애매하게 보합에 가까운 등락을 유지하던 주택가격이 2024년 그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금리인상에 발맞춰 집값 조정이 진행되면서 파티는 끝난 듯했다. 드디어 몇 년을 기다려온 ‘하락론’이 힘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올해 하반기 소폭 반등이 일어나며 시장 참여자들은 헷갈리는 분위기다. 10월 이후 그 열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일부 강남 재건축 단지는 전고점을 되찾았고 수도권 분양시장도 어둡지만은 않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30평형) 타입은 2021년 11월 26억3500만원에 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11월과 올해 초 저층 매물이 17억원 후반에 거래되는 등 급락했다가, 올해 하반기 들어 다시 24억원까지 가격을 회복한 상태다. 2기신도시인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 검단 웰카운티’는 11월 11일 진행한 예비당첨자 계약에서 ‘완판(전 타입 계약마감)’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버티면 봄이 온다”는 그동안의 학습효과로 인해 주택시장에서 전 같은 ‘투매 현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을 비롯해 앞으로 몇 년간은 다소 지켜보며 ‘버텨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규제완화, ‘핀셋 지원’에 그쳐이 같은 비관론은 올해 시장 반등이 ‘정부의 등판’에 힘입은 결과라는 점에서 힘을 얻고 있다. 올초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분양을 앞두고 정부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전역을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규제지역 해제의 핵심은 무엇보다 실거주와 중도금 대출규제를 완화한다는 데 있다. 결국 둔촌주공 분양은 3월 들어 무순위 청약까지 마감됐다.

이에 대해 시장에선 공공연히 “정부가 둔촌주공 미분양만큼은 막고 싶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 1만2000여 가구 아파트를 조성하는 둔촌주공 재건축은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시공 컨소시엄(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으로 엮인 대형 건설사가 여럿이었다. 무엇보다 둔촌주공이 서울에서도 워낙 상징적인 단지이므로 해당 단지가 미분양이 날 경우 ‘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동산시장과 건설경기에 미칠 파장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 수요자들에게 이제는 자리 잡아 버린 고금리 문제를 일부 보완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 나오면서 시장은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잠자고 있던 거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시가 9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할 때 6~7% 수준이던 시장금리보다 낮은 연 4~5%대(우대금리 적용 시 3%대도 가능) 고정금리로 제공되며 소득요건이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특례보금자리론이 공급목표치인 39조6000억원을 돌파하자 시가 9억원 주택까지 대출이 가능한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 9월 말 판매가 중단됐고 대출 시 소득 요건(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이하)도 생겼다. 비슷한 시기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공급 중단을 압박하면서 사실상 해당 상품 판매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공인중개사무소를 비롯한 부동산 현장에선 이 같은 대출상품 공급 중단으로 인해 수요자 발길이 끊기며 거래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 실거래 건수는 총 835건에 불과했으나 올해 들어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 2월에는 2000건, 4월에는 3000건을 돌파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급속도로 감소하며 29일 기준 11월 거래량은 다시 906건으로 돌아갔다. 강남구에서도 11월 거래량이 지난해 하반기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올해는 국내 부동산 참가자들의 기초체력이 드러난 시기”라며 “부동산을 규제하던 지난 정부에 비해 정책 효과는 좋지만, 전에는 집을 못 사게 규제해도 거래가 생기며 가격이 오른 데 비해 이제 규제를 풀어줘야 거래가 겨우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침체 속 실수요자도 어려울 것
‘겨울 온다’ 식어가는 주택시장, 그러나 예고된 전세대란[2024 재테크 키워드 금·반도체·채권]
정부는 앞으로도 대대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에 나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규제완화 후 막상 집값이 반등하자 다시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높였던 사례를 보면, 현 정부는 집값이 너무 올라 시장이 달아오르거나 거래가 완전히 막혀 경기가 침체하는 것 모두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3분기 말 국내 가계대출 잔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75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규제완화에 대해 국무위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는 선거를 앞둔 국면에서 당연히 건설경기 침체가 온 나라로 번질 것을 우려하겠지만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부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26조6000억원 규모로 출시될 신생아특례대출에 대해서도 이미 ‘영끌족’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이후 건설·부동산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리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미지근하던 시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국토교통부를 주축으로 10년 만에 ‘민관합동 건설투자사업(PF) 조정위원회’를 재구성하는 등 위기에 몰린 개발사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은 일부 현장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서 직접 구조조정을 한다기보다는 둔촌주공 재건축이나 청담동 옛 프리마호텔 부지 개발사업(‘르피에드 청담’ 프로젝트)처럼 규모가 크거나 업계에 파장이 클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되도록 관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 기준금리의 여파가 적어도 향후 수년간은 주택시장의 알파와 오메가로 자리 잡았기에 이런 외부요인의 영향을 국내 정책으로 상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기설이 이어지며 매수심리 역시 한풀 꺾인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넉 달 연속 내린 가운데 주택가격전망지수도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올해 6월 들어 소비자심리지수를 추월했다가 9월에 정점을 찍은 뒤 다시 소비자심리지수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낮으면 장기적인 평균치보다 경기에 대한 심리가 비관적인 것으로 보는데 지난 9월부터 100을 밑돌고 있다.

이에 따라 실수요는 임대차 시장에 상당 기간 머무를 전망이다. 그러나 직방이 집계한 내년 수도권 입주물량은 올해 대비 18% 감소한 14만737가구다. 서울에선 올해 3만470가구에서 내년 1만1376가구로 입주가 63%나 줄 예정이다. 이처럼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전환되지 않는 상태에서 입주물량은 줄면서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부동산시장을 덮쳤던 ‘전세대란’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강영훈 대표는 “금융위기 전 2000년대 상승기의 정점을 찍었던 ‘도곡렉슬’ 아파트도 매매가격이 급락하면서 한때 갭(매매가와 전세가 차액)이 1억원 가까이 떨어졌던 시절도 있었다”며 “대세 하락기에는 ‘강남불패’도 믿을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청약제도 역시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분양가가 오르면서 점차 메리트가 사라지고 있다. 당장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청약의 장점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 분양가가 오르면서 주택 분양시장도 전같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고 있는 서울 강남3구나 2기신도시 등 공공택지 분양을 노려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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