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 사진=페이스북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 사진=페이스북
“안녕하세요. 이부진입니다. 주식시장에 진출해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금융그룹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회사 재무분석팀이 추천한 주식이 지난주에 30% 올랐으니 5000만원을 사면 6500만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상세보기’를 클릭해 ‘카카오톡 토론방’에 참가해주세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사진과 이름을 도용, 사칭한 가짜 불법 광고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명 정·재계 인사를 사칭해 ‘주식 리딩방’ 가입을 유도하는 불법 광고가 기승을 부리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문제 떠오른 SNS 사칭…피해 입어도 속수무책

이부진 사장 등 삼성 오너일가가 고(故)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최근 전해진 가운데 이부진 사장을 사칭한 광고 계정은 이런 상속세 이슈까지 반영하고 있어 수법이 점점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NS에 유명인 사진과 이름을 사칭해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글을 올리고 카카오톡 등 대화방 가입을 유도한 뒤 투자금을 편취하는 게 ‘유명인 사칭 리딩방 사기’의 주요 패턴이다. 누가 속을까 싶지만, 사칭 계정을 실제 당사자라고 착각해 응원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는 만큼 실제 피해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칭 대상이 다양해지며 피해자도 늘고 있다. 기존에는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 경제전문가나 리서치센터장, 유명 연예인들을 사칭해 주식 투자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등 총수들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까지 등장했다.

사칭 광고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플랫폼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사칭 광고를 활용한 사기나 명예훼손 등 2차 피해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재점화하자 정부 규제당국은 대응에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명인을 사칭해 불법 금융투자업 등을 영위한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시정 요구와 함께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방통위가 관계기관과 협조해 심의, 차단, 삭제 등 조치를 통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현행법상 단순 사칭만으로는 적발하더라도 뚜렷한 법적 처벌 근거나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칭 SNS는 엄연한 불법행위지만 한국에선 처벌이 쉽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가 인터넷에서 타인을 사칭하는 계정을 만들면 ‘아이디 사기죄’로 형사처벌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사칭 행위 자체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칭 SNS에 올린 내용이 비방목적으로 명예를 훼손했거나 금전적 피해를 일으키는 등 2차 피해가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2016년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형벌권의 지나친 확대”라는 우려에 부딪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도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 사진=페이스북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 사진=페이스북
“더 이상 못 참아” 호주 최고 부호, 저커버그에 항의 편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인 메타도 사칭 계정 단속을 위해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사칭 계정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최고 부호로 손꼽히는 자원개발 기업 핸콕의 지나 라인하트 회장은 자신을 사칭하는 거짓 광고가 만연한데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이를 방관한다며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항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가 사칭 계정에 대해 수개월 전부터 항의했지만 메타 측이 응답이 없자 직접 나선 것이다. 라인하트 회장은 “사기성 콘텐츠가 제공되거나 광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무고한 호주인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사기 희생양이 되는 만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타는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메타가 최근 유럽에서 광고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한 것과 관련 일각에선 메타가 국내에서도 유료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사칭 광고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메타는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 강화로 인해 제기되는 광고 수익 감소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에서 11월부터 광고가 없는 유료 구독 서비스를 도입했다. 메타는 광고가 없는 유료 구독 서비스를 유럽 외 다른 국가에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만큼 사칭 계정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연예인 유재석 씨 이름을 도용, 사칭한 광고. 사진=인스타그램 릴스
연예인 유재석 씨 이름을 도용, 사칭한 광고. 사진=인스타그램 릴스
앞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10월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사칭해 주식 리딩방 광고를 하는 온라인 계정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며 문제의 계정을 메타에 신고했으나 규정 위반이 아니라서 삭제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주 전 대표는 11월 2일 경기 분당경찰서에 사칭한 주식투자 광고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고 이후에도 여전히 가짜 광고가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도 가짜 광고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사칭 계정 광고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종목 추천 계약을 유도하는 유사투자자문서비스를 일컫는 ‘주식 리딩방’ 피해는 최근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소비자원에 2022년 접수된 유사투자자문서비스 관련 소비자 피해 건수는 5643건으로 2020년(3148건)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사투자자문업체 수는 2020년 1254개에서 올해 5월 기준 2139개로 70%가량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주식 리딩방 피해 관련 상담 건수는 2018년 7625건에서 2022년 1만8276건으로 2.5배나 증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운영하는 계정이라고 오해 받는 가짜 SNS 계정. 팬 페이지 계정이지만 팔로워가 44만명에 육박한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직접 운영 중인 SNS 계정이 없다. 사진=인스타그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운영하는 계정이라고 오해 받는 가짜 SNS 계정. 팬 페이지 계정이지만 팔로워가 44만명에 육박한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직접 운영 중인 SNS 계정이 없다. 사진=인스타그램
이재용 회장 사칭 인스타, 가짜인데도 팔로워 44만명 육박

기업들에선 SNS상의 총수 사칭 계정을 주시하고 있다. 사칭 계정 광고처럼 주식이나 코인 등 투자를 권유하지는 않지만 타인을 사칭하는 만큼 2차 피해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연예인, 유명인 등을 사칭하는 행위를 ‘프로파일 스쿼팅(profile squatting)’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이재용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를 사칭하는 계정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팬 페이지를 표방하는 비공개 계정으로 유의미한 움직임은 없다.

총수 사칭 계정 중에선 2020년 8월 만들어진 이재용 회장을 사칭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유명하다. 해당 계정은 팔로워 43만8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SNS 계정이 없다.

이 계정이 프로필 상단에 팬 페이지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 회장 본인이나 삼성 측이 관리하는 것처럼 회사 주요 이슈에 대한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어 진짜 이 회장이라고 착각하고 응원 댓글을 달거나 해당 계정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팔로워가 44만 명에 육박하는 만큼 게시물당 댓글이 적게는 수백 건에서 많게는 1000여 건 이상 달린다. 팬페이지가 아닌 진짜 이 회장 계정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만큼 이로 인한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를 사칭한 가짜 계정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칭 계정과 관련해 실제 피해가 발생하면 기업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