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수낵 영국 총리 / 사진=연합뉴스
리사 수낵 영국 총리 / 사진=연합뉴스
“수학은 ‘읽기’만큼이나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우리 사회에 반감이 큽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수학을 못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불리하게 만드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4월 런던 북부의 학생과 교사, 교육 전문가 및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영국 사회에서는 ‘수학 교육의 위기(Numeracy Crisis)’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수학의 위기가 연간 수백억 파운드의 경제 손실을 불러와 미래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또한 ‘수학 교육’의 위기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와 같은 수학 위기는 팬데믹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3년여간의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는 등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의 수학 능력 등에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우려다.

세계은행(WB)은 이를 ‘학습의 위기(learning crisis)’로 표현하며 “개인적,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고 꼬집었다.

수낵 총리 “연간 수백억 파운드 경제적 손실 용납할 수 없다”

수낵 총리가 수학 교육 강화를 발표하며 가장 먼저 강조하고 나선 것이 있다. 수학 능력이 부족할 경우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수낵 총리는 지난 1월에도 “통계가 모든 일을 뒷받침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며 “미래의 직업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분석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을 무방비로 세상에 내보내 좌절하게 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영국 식스폼(6th form)에서는 학생들이 에이레벨(A-Level) 시험을 준비하는 데 3, 4과목만 선택해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에이레벨 시험은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한다. 수학은 필수 과목이 아니다.

이 때문에 수학을 배우지 않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 식스폼을 거치지 않은 채 16세까지만 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도 상당수다. 이로 인해 17세 이상 영국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수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BBC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영국의 15세 학생들이 치른 시험을 기준으로 한 수학 성취도는 세계 18위 수준이다. 문제는 그보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수학 성취도가 더욱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가 올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성인 가운데 약 800만 명이 9세 아동의 기대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학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 청소년의 약 3분의 1이 중등교육자격검정시험(GCSE) 수학을 통과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저소득층 학생의 경우 16세에도 기초 수학 능력을 갖추지 못한 비율은 약 60%에 달한다.

수낵 총리는 ‘수학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의무교육 기간 연장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앞서 영국 국립교육연구재단이 중고교를 대상으로 2021년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학교들의 절반에 가까운 45%의 학교가 수학 교사가 부족해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수학 수업을 맡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 교육의 강화’라는 기본 방침에는 동의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수학을 가르칠 교사가 부족’한 현실을 먼저 개선하지 않는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18세까지 수학을 의무 교육으로 만들겠다는 수낵 총리의 의지는 꽤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수학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높은 수리력을 지닌 이들과 비교해 실업률이 두 배나 높다”며 “이로 인해 연간 수백억 파운드의 경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미래 직업과의 높은 연관성뿐 아니라 ‘금융 리터러시’ 측면에서도 수학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알리안츠의 조사에 따르면 ‘금융 리터러시’가 낮은 영국 가정들은 해마다 평균 약 2850파운드(약 460만원)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최근처럼 물가가 치솟고 경제 환경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금융 리터러시’는 단순히 금융 투자와 관련한 기술을 익히는 문제뿐 아니라, 세금 혹은 모기지 등과 관련한 지출 비용을 계산하는 등 재테크를 넘어 생존에 매우 중요한 기술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체 영국인의 4분의 1 이상이 ‘낮은 금융 리터러시’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낵 총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향후 20년간 영국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래 경제성장은 수학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젊은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에 따라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코로나 이후 더 심각해진 ‘수학 위기’…WB “불평등 심화할 것”

‘수학 위기’는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내에서도 ‘수학 위기’와 관련한 우려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내 13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전국교육진도평가(NAEP)에 의하면 2023년 학생들의 평균 수학 점수는 2020년과 비교해 9점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생들의 전국 수학 점수는 1990년 이후로 점진적으로 상승세를 기록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의 수학 점수는 약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앤드루 호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학생들의 수학 능력은 점차 발전해 왔지만 팬데믹 기간 ‘한 세대 동안 이루어낸 진보’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수학 교육 강화’와 관련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학과 과학 교육 강화를 위해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정부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 또한 “미 경제의 강력한 성장을 위해 수학과 과학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향후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 갈 리더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수학과 과학에 능통한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고, 이에 따라 ‘수학과 과학에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현재 논의 중인 ‘수학 위기’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떻게 수학에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것인지’보다 ‘어떻게 모두를 위한 기초 수학 능력을 높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특히 지난 3년간의 팬데믹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는 기간이 늘어나며 아이들의 학습 진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늦어진 학습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교육계는 물론 최근 들어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 중이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특히 ‘수학’과 같은 과목의 경우 온라인 학습에 한계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온라인상으로만 수학적 개념을 설명하면서 더욱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학 능력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연습을 통해 개선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워진 영향이다.

이로 인해 가정 내에서 부모들의 수학 교육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문제는 부모들 또한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글을 읽는 경우는 많아도 수학 연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데 있다.

코로나 이후 전반적인 학습 능력의 저하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수학 능력의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환경적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3년여간의 팬데믹 이후 ‘수학 위기’가 영국,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면서 특히 WB 등에서는 이와 관련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WB는 블로그를 통해 “수학 능력의 저하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뿐 아니라 특히 개발도상국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 이후 수학 능력에서도 개인 간, 국가 간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 나타나고 있는 ‘수학 위기’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미래의 생산성 및 잠재력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고 꼬집었다.


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