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위기의 해결사들을 떠올리는 겨울[EDITOR's LETTER]
벌써 2024년을 얘기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올해도 어려웠는데 내년은 좀 나아질까요.

올 한 해 한국 경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크게 내렸던 주가는 찔끔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수출은 마이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 대출 이자 부담은 돈 빌린 사람들을 압박했습니다. 가계 수입은 줄고, 물가상승으로 교육비·교통비 지출은 더 늘었습니다.

경제에서는 좋은 것을 찾기 힘든 한 해였습니다. 곳곳에서는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음이 울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 정책 책임자들은 꽤나 담담해 보입니다. “세계경제가 좋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말을 많이들 했습니다. 물론 다 거짓말이지만.

이럴 때 자연스럽게 과거 위기의 해결사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1997년 겨울 외환위기가 터지고, 야인이었던 이헌재는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냈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외환위기에서 한국을 구해낸 1등 공신으로 불립니다.

그가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기자실을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국가 중대사에서 언론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참모에게 지시합니다. “기자 두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언제든 불러라. 내가 직접 설명하겠다.” 물론 언론인들의 조언도 들었습니다. 국내외, 직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아이디어를 찾아나섰습니다. ‘워크아웃’ 이란 솔루션도 이 과정을 통해 찾아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이 부총리는 “DJ는 믿어줬다. 소신대로 일하게 하고, 책임은 당신이 진다고 했고,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도 카드사태의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다시 부총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386(현재는 586)세대와 각도 세웁니다. “정책의 뒷다리를 잡는 세력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할 정도로 결기도 보여줬습니다. 지금의 관료들과는 많이 달랐지요? 능력, 소통, 책임, 신뢰 등이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 카드사태 등 대란을 넘어선 비결이었습니다.

다음은 강만수 장관. 논란의 인물이긴 합니다. 2008년 장관이 된 그의 철학 하나만큼은 확실했습니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환율이 높아야 수출중심의 한국 경제가 살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비판도 받았습니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서민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외환보유고는 줄었지만 대기업의 경쟁력은 강화됐습니다. 2009년 이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6조원에서 9조원대였던 삼성전자 이익이 수십조원대로 올라선 것도 이때입니다. 트리클다운 효과가 줄었다 해도 한국에는 큰 힘이 됐습니다. 일본에서 “왜 우리에게는 이건희, 정몽구 같은 경영자가 없는가”라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일본은 엔고 현상으로 한국 제품과 경쟁에서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과거 관료들과 현재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R&D 예산을 줄이라고 하면 줄이고, 원전 예산을 줄이라고 하면 줄입니다. 논란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 글이 나갈 때쯤 개각이 이뤄져 있을 듯합니다. 새 경제팀이 과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2024년 재테크 시장을 전망해봤습니다. 투자는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정책이 투자자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헌재 장관의 말로 글을 맺습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매 순간 최악을 피하자는 생각으로 정책을 선택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