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2억명의 선거와 새로운 세계화의 원년 [EDITOR's LETTER]
올 한 해 ‘세계화의 종말’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을 축으로 하나처럼 돌아가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입니다. 싸거나 잘 만들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세계 어디서나 팔리는 시대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지요. 비교우위 이론에 입각해 설계된 글로벌 공급망 파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2024년을 코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거 때문입니다. 내년을 ‘지구촌 선거의 해’라고 합니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한국 총선, 미국 대선 그리고 러시아, 영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등 줄줄이 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선거가 치러지는 나라의 인구만 42억 명에 달합니다. 이들 선거에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끝났다는데 왜 남의 나라 선거에 관심이 갈까.

폴란드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 10월 폴란드에서 총선이 있었습니다. 폴란드는 축구 외에 노동자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탄 레흐 바웬사 정도밖에 관심 없는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 선거가 한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권이 교체되자 한국 기업들과 맺기로 한 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지요. 잘나가던 K방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폴란드가 이 정도면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1월 대만 선거는 한국 외교에 큰 고민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양안관계가 악화되면 한국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한발을 들여놓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이라이트는 11월 미국 대선입니다. 벌써 세계 곳곳에서는 트럼프 당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해관계는 모두 다릅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폐기되면 보조금도 없어집니다. 보조금 때문에 할 수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지은 한국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도 큰 변화를 겪겠지요. 트럼프는 또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편에 서겠다고 장담했던 한국 정부가 좀 머쓱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봐도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 강력한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세계화의 원년이 2024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과거 방정식은 단순했습니다. 시장이 있는 곳에 좋은 제품을 들고 나가면 됐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 편에 서면 됐습니다.

앞으로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제품력과 기술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성큼 다가온 것입니다. 제품력은 기본, 외교력, 정치력, 정보력까지 더해져야 생존할 수 있는 질서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엑스포 유치 실패가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2024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될 선거와 글로벌 경제 및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한국에서도 내년 중요한 선거가 있습니다. 22대 총선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경제투표를 한다고 합니다. 기존 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좋으면 여당에 유리하고, 좋지 않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얘기입니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장률, 물가, 실업률, 주가 등의 경제변수가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성적 투표행위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대뇌피질(영장류의 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파충류의 뇌로 불리는 ‘뇌간’과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가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뇌 발달 순서로 보면 가장 원시적인 부분이 투표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파충류의 뇌와 변연계, 그리고 대뇌피질이 투쟁하면 누가 이길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