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라임 사태 마무리? 개운치 않은 뒷맛 [비즈니스 포커스]
장장 4년을 끌어온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관련 증권사와 최고경영자(CEO)들의 중징계 처분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해당 증권사들이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 있어 분쟁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 또한 근본적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단 지적도 나온다. 라임 사태가 남긴 숙제를 짚어봤다. ① 판례 거스른 중징계?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11월 30일 한국거래소 사외이사직에서 자진 사임했다. 이날 박 대표는 KB금융지주의 총괄부문장과 자본시장부문장 직책에서도 자진 사임했다.

박 대표의 자진 사임 결정은 11월 29일 금융당국이 라임·옵티머스펀드 판매사 최고경영자(CEO) 제재를 최종적으로 확정한 직후 이뤄졌다. 박 사장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 정지 3개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앞서 금융위는 11월 20일 제21차 정례회의에서 라임펀드 등 관련 7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 위반에 대한 조치를 의결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 등으로 구분되는데 문책경고부터는 연임 및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돼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융위는 이날 CEO 징계건과 관련해 KB증권의 박정림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을 내렸고,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경고’ 중징계를 결정한 금융감독원 제재 조치안을 확정했다.

박 대표는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함께 펀드에 레버리지 자금을 제공한 점이, 정 대표는 옵티머스 펀드 판매 관련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이 각각 징계 사유가 됐다. 대신증권의 양홍석 부회장에게는 ‘주의적경고’ 조치가 의결됐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징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법리적으로는 중징계 확정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서 증권사의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유로 CEO가 중징계를 받았지만, CEO를 처벌하기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에서 결정이 뒤집힌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불과 1년여 전인 2022년 12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책 경고의 징계를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의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고 판단해 손 전 회장을 문책 경고 처분했고, 손 전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했으므로 징계 처분 사유가 아니라는 취지다. 하급심은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법리를 오해한 피고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문제가 없다며 손 전 회장의 승소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대법원이 최초로 설시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내부통제기준으로 CEO를 처벌하기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법원에서 입증한 사례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증권사 CEO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경감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던 차였다. ② 가혹한 삼중 책임?
라임 사태 마무리? 개운치 않은 뒷맛 [비즈니스 포커스]
물론 분위기는 서슬 퍼렇다. 금감원이 지난 8월 라임·옵티머스 사태 추가 검사를 통해 대규모 횡령과 유력 인사 등의 특혜성 환매를 밝혀냈고, 올해 들어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와 ‘영풍제지 사태’ 등 증권가 잡음이 계속되면서 내부통제 문제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사인 증권사가 사기 행각을 벌인 운용사를 대신해 투자자 피해 보상에 나섰다는 점에서 증권가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NH투자증권은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 100% 원금 전액 반환을 결정해 일반투자자 831명에 대해 투자금을 지급했다. 옵티머스펀드 최대 판매사라는 점에서 1개 펀드에 대해 NH 측이 반환해야 할 총액은 2780억원으로 2021년 1분기 당기순이익 5769억원 절반 수준에 달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20~2021년에 걸쳐 라임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 비율 최대한도 수준인 80%를 배상하기로 결정하고, 약 95% 이상의 피해자들에게 보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KB증권도 박정림 사장의 지시 아래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건 발생 이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결정한 60~70% 비율의 배상안을 업계 최초로 받아들이는 등 발 빠른 사후 대처에 나섰다.

사기 행각을 벌인 운용사를 대신해 증권사가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을 인정하고 투자자 피해 보상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중징계가 가혹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의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기관 제재도 받았고 투자자에게 보상이 시급한 시점에서 운용사 대신 보상 책임도 짊어졌는데 이제와 CEO에게 중징계를 내리니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CEO 잃은 증권호?이번 징계로 해당 증권사들의 경영상 불확실성이 가중됐다는 점 또한 문제다.

우선 정영채 NH증권 대표의 경우 2018년 3월 대표직을 맡아 3연임에 성공해 내년 3월까지가 임기다.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소송이 진행되면 이론상으로는 연임에 도전할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각자 대표 체제인 KB증권은 박정림 대표의 직무정지 기간 김성현 대표가 박 대표의 관할업무까지 직무대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정 대표와 박 대표는 증권가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서울대 경영학 82학번 동기인 두 사람 모두 각사의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타공인 ‘IB’의 강자 정 대표는 NH투자증권을 지금의 ‘IB 하우스’로 올린 입지전적 인물로 ‘창사 50년 이후 최대 실적’, ‘창사 최초 1조 클럽 달성’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박 대표 역시 재임 기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KB금융지주 총괄부문장에도 선임됐다. 특히 그는 증권가의 유일한 여성 CEO일뿐더러 한경비즈니스가 매년 선정하는 ‘100인의 최고경영자(CEO)’에도 유일한 여성 CEO로 이름을 올릴 만큼 탁월한 경영 성과를 자랑했다.

두 사람이 라임 리스크로 퇴진할 경우 NH와 KB 모두 경영 리스크를 지게 된다. NH의 경우 지금까지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정 대표가 증권사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 왔지만, 그가 떠날 시에는 예전처럼 ‘낙하산 리스크’, ‘은행 지주의 개입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 대표가 떠나더라도 은행지주의 개입을 최소화한 NH투자증권만의 효율적인 경영 방침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우려했다.

KB의 경우 올해 IB가 주춤한 사이 실적을 끌어올린 것은 박정림 대표가 맡은 리테일 브로커리지(위탁매매)와 WM(자산관리)부문이었다. 수장의 위기가 곧 회사 수익에 직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으로도 불명예다. 각사의 화려한 실적을 이끌었던 두 명의 CEO는 중징계 확정 시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만큼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된다. ④ 근본적 책임?금융당국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가 터졌을 당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확 풀면서 사후 감독체계를 마비시킨 게 사모펀드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액셀(정책)과 브레이크(감독 기능)가 한 곳(금융위원회)에 몰려 있는 게 문제라며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4년이 지났지만 금융당국의 자기반성은 없다. 감독이 소홀했던 데 대한 성찰 없이 사고를 유발한 기업을 제재하는 쪽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쉽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9년 사태가 벌어지고 4년이 지난 후 재조사했던 점은 표적수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라임 사태를 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문재인 정부에서 해체됐다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부활했다. 여기에 검사 출신인 이복현 원장도 지난해 6월 취임 당시 라임 사태와 관련해 “다시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해보겠다”면서 재수사의 신호탄을 쐈다.

일각에선 금감원의 라임 사태 재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합수단 부활부터 금감원의 재조사 결정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이 원장은 “원칙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한편 CEO에게 중징계가 내려진 해당 증권사들은 대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들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법원에서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준 만큼 유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전·현직 CEO들도 개인의 명예 회복을 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은 금융위 결정 이후 “금융위의 결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란 입장을 냈다. 대응 방향에 대해선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다.

가장 강한 수위의 징계를 받은 KB증권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잠깐! 라임 사태란 무엇인가피해 규모 1조6000억원대.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극’으로 불리는 라임 사태는 2019년 10월 당시 국내 헤지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건이다. 앞서 라임자산운용은 시중금리가 1~2%인 상황에서 5~8%가량의 수익률을 줄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이에 라임자산운용은 2019년 한때 6조원에 가까운 돈을 굴리며 국내 1위 헤지펀드 운용사로 등극했다. 하지만 펀드 돌려막기 의혹이 불거진 뒤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 요청을 하면서 ‘펀드런’이 발생했고,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은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일반 투자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투자 피해액은 무려 1조6000억원대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라임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나 은행들 역시 사건에 연루됐다. 특히 사모펀드를 주도적으로 판매하거나 개입한 의혹이 있는 증권사 임직원에게 철퇴가 내려졌다. 라임 사태 주범인 라임자산운용 이종필 부사장, 라임의 전주(錢主)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등이 환매 중단을 막기 위해 정재계에 전방위 로비에 나섰던 사실 또한 드러났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