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농업 필수 원료인 요소, 공급망 교란에 다시 ‘파동’ 올까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12월 6일 서울 롯데마트 월드타워점 내 요소수 유통판매 현장을 점검했다. 사진=산업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12월 6일 서울 롯데마트 월드타워점 내 요소수 유통판매 현장을 점검했다. 사진=산업부
중국이 이달부터 요소 통관을 금지하는 조치에 나서면서 요소를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2년 전 중국의 요소 수출통제로 ‘요소수 파동’을 겪었지만 중국 요소에 대한 수입 의존도는 오히려 올라간 상태다. 중국 수입 의존도가 큰 품목이 많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더욱이 중국은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기술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자원 무기화 카드로 응수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갈륨과 마그네슘 수출통제 조치를 실시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흑연 수출통제 조치를 실행했다. 하지만 미국은 더 강력한 대응을 준비 중이다. 동맹국을 끌어들인 신(新)수출 통제체제를 구축해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면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된 한국은 공급망 불안정성을 관리하지 못하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소수 수출통제에 국내 물류마비 오나
중국 관세청은 11월 말 갑자기 중국 현지 기업이 한국의 한 대기업에 수출하려는 산업용 요소 수출을 보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뒤이어 중국 주요 비료기업 15곳은 내년 1분기까지 요소 수출을 중단하고, 내년도 요소 수출 총량을 94만4000톤에서 초과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요소는 산업용, 차량용 요소수의 원료다. 비료로도 쓰인다. 국내 경유(디젤) 차량은 환경오염을 저감하는 요소수를 반드시 넣어야 운행할 수 있다. 요소 수급이 꼬이면 최악의 경우 물류마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중국의 요소 수출량은 339만 톤이었다. 한국은 이 중 8~9%에 해당하는 약 30만 톤의 요소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10월 기준 산업용 요소의 90%가량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등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중국 정부가 요소 통관 중단 조치에 이어 내년 1분기까지 요소 수출을 금지할 경우 내년 한 해 전체 중국산 요소 수출 물량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산 요소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중국은 복합비료의 원료인 인산암모늄도 수출통제에 나섰다. 한국에서 올 1~10월 수입한 인산암모늄의 95.3%가 중국산이다. 내년 초 농번기까지 수출 제한 조치가 이어지면 국내 비료 수급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 외교당국은 중국이 자국 내 요소 수급을 우선 해결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통관 보류에 나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거시경제 주무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11월 17일 중국질소비료협회가 연 ‘가스 질소비료 기업 천연가스 수급 매칭 회의’에서 식량 안보와 내년 봄철 경작을 위한 비료 비축이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요소 등 비료 원료의 수출 제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수출통제와 자원무기화
중국은 이번 비료 원료 수출통제에 대해 자국 수급 문제라고 밝히고 있지만, 미·중 간 패권경쟁 격화에 따른 공급망 혼란과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각국이 언제든 수출통제 조치 등으로 상대 국가의 공급망을 교란할 수 있는 만큼 자국 내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서 자원무기화 카드를 주요 맞불 카드로 쓰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도약을 견제해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은 버락 오마바 행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전략을 통해 자국 대외전략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등 기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심화·강화하고, 동남아 국가들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또 인도는 핵심적인 전략적 동맹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로 꼽혔다. 이 같은 동맹 강화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었다. 실제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과 필리핀 등 중국과 영토 분쟁에 휘말린 국가들과는 안보 협력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외교적으로 공을 들였다.

하지만 아시아로의 전략축 이동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비롯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새로운 테러 집단이 부상하는 등 잇따른 난제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은 힘을 잃었고, 미국은 트럼트 시대를 맞게 된다. 트럼프는 당선과 동시에 미국의 아시아 확장 전략의 핵심이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는 동맹과의 협력보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는 무역전쟁에 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4년 내내 중국을 때렸다. 시작은 중국을 향해 던진 관세 폭탄이었다. 2018년 3월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중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해 미국 정부는 7월 25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2019년 9월 12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매겼다. 2019년에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웨이 금지령’을 내렸다.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 결과 2020년 연간 매출이 160조원을 기록했던 화웨이는 이듬해 2021년에는 매출이 114조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의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을 한 뒤 수출통제 카드를 빼 들었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주요 타깃이 됐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는 게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승리하는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첨단 반도체 장비와 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일본과 네덜란드 등 반도체 장비 선진국도 제재에 동참시켰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중국을 위한 특정 성능의 반도체 칩을 재설계하면 나는 바로 다음 날 그것을 통제할 것”이라며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新수출통제체제 구축 나선 美
미국은 대중국 수출통제에 있어서 동맹국들과의 단일대오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체제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러몬도 상무장관은 12월 2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포럼에 참석해 “중국이 AI 등 첨단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려면 동맹과 수출통제 공조가 필수”라며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수출통제의 엄격한 집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중국은 매일 눈을 뜨면 우리의 수출통제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코콤과 같은) 다자주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엘렌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도 12월 12일(현지 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바세나르를 포함한 기존 다자 수출통제체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를 적들로부터 보호하고 기술을 관리하기 위해 그런(빠른) 속도로 행동할 수 있는 수출통제체제를 어떻게 구축할지 동맹국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바세나르 체제는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과 재래식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설립된 다자 수출통제체제로 한국,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4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가 대중국 수출통제에 반대하면서 바세나르 체제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신수출통제체제 구상에 돌입한 셈이다.

문제는 신수출통제체제에 한국의 참여는 필수라는 점이다. 이 경우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 경색될 수 있고 공급망 단절 이슈가 전면에 부각될 수 있다. 미국이 신수출통제체제를 활용해 대중국 수출통제에 본격 나설 경우 중국도 자원 무기화 카드를 더 노골화하는 등 상대국들과 공급망 단절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공급망 불안정성 증가는 통상국가인 한국에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