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에코프로 제공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에코프로 제공
전국 228개 시군구 중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덮치고 있다.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 부산광역시마저 ‘노인과 바다’의 도시로 불리며 유례없는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 등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수도권은 팽창을,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는 지금 이 둘의 간격을 채워 줄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에코프로 성장은 지방의 성장 “나는 지방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의 본거지를 지역에 두고 지역인재들을 고용해 세계적인 배터리 소재 회사로 발전시켰습니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해야 할 책무가 많습니다.”

K-배터리 양극재의 신화를 이끈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의 지역 사랑은 유별나다. 경북 포항 출신의 그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지방 인재’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영남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지만 이 전 회장은 지방을 떠나지 않았다.

1997년 이동채 전 회장은 뉴스에서 흘러나온 ‘교토의정서’ 체결 소식을 듣고 사업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수출입 사업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본 뒤였다. 대전 유성구에 자리한 대덕연구단지에 무작정 찾아가 연구원들을 만나 수년간 밥을 사 주고 술을 사 주면서 기술을 터득했다. 1998년엔 충북 청주시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사업의 본거지를 뒀다. K-배터리 양극재의 신화 에코프로 사업의 발원지다.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
1998년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오창에 쏟은 누적 투자액만 1조원을 넘어섰다. 어디 오창뿐인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2조원가량이 투입된 포항은 에코프로의 도약을 이끄는 핵심 엔진인 2차전지 생태계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Closed Loop System)’이 구축되어 있는 곳이다. 에코프로는 2025년까지 2조5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제2 포항캠퍼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올해 국가 첨단전략산업 2차전지 특화단지로 오창, 포항, 새만금, 울산 등 4곳을 선정했다. 이 중 울산을 제외한 오창, 포항, 새만금 3개 지역은 에코프로의 선제적 투자가 특화단지 선정에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기업들이 인재난을 내세워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지만 에코프로는 지방에서 사업을 일으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에코프로의 발전모델은 지역 소멸이 화두가 되는 지금 기업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은 기업 성장을 통한 지역경제 창출로 그치지 않았다. 2011년부터는 복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회사와 임직원들이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으며 2021년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됐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약속은 회장직을 내려놓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을 비롯한 에코프로 특수관계인들은 지난 12월 20일 지방의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를 지원하기 위한 공익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전 회장이 주요주주로 있는 데이지파트너스의 가족사 지분을 토대로 약 1000억원을 출연해 공익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공익재단은 설립 초기 1000억원으로 출발하지만 출연기금을 확대해 향후 5000억원으로 규모를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에코프로 측은 “주로 지역의 문화예술 인프라 개선으로 시작해 교육으로 지원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공익재단과 별도로 지방 벤처 기업들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펀드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공익재단 운영에는 향후 에코프로 가족사들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프로는 내년 3월쯤 설립 절차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공익재단 설립은 에코프로 성장모델의 연장선상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를 개선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지방에서도 서울 등 수도권 수준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라고 에코프로 측은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공익재단 설립은 이 전 회장의 지방 소멸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기업경영을 넘어 기업 시민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깔려 있다고 에코프로 측은 밝혔다.

또 공익재단 설립과 별개로 친환경 및 배터리 생태계 구축을 위해될성부른 스타트업 투자도 구상 중이며 이를 통해 제2, 제3의 에코프로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