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승률을 크게 상회한 솔라나./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승률을 크게 상회한 솔라나./게티이미지뱅크
연말이 되면 내년 시장 전망에 관한 보고서가 나온다. 이는 비단 금융투자 업계뿐 아니라 암호화폐 업계도 마찬가지다. 투자사, 거래소, 리서치 기관,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 내년 암호화폐 업계 전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고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의 특성상 전망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업계 최신 트렌드를 이해하고 다른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할 만하다.

필자는 연말에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2023년 크립토 시장에 발생한 사건들 중에서 가장 의외의 결과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지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들 말이다.

돌아온 답변은 실로 다양했는데 몇 가지 추려서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시장을 전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는다. 시장을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1 테더 스테이블 코인 점유율 확대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양대 산맥은 테더 USDT와 서클 USDC로, 두 스테이블 코인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총 비중은 89%이다. 흥미로운 것은 USDT와 USDC의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USDT는 가장 오래되고 거래량이 높은 스테이블 코인이지만, 가치를 유지하는 담보자산이 위험하고 운영 주체의 거버넌스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테더는 미국 규제 당국에 순응하지 않고 소송까지 불사한 전력이 있다. USDT에 대한 신뢰도와 존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은 결코 적지 않았는데, 만약 USDT 디페깅이 심화될 경우 (실제로 과거에 수차례 디페깅된 적이 있다), 크립토 시장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항상 받았다.

반면 USDC는 일종의 미국 엘리트 스테이블 코인이라 할 수 있다. USDC를 운영하는 서클은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블랙록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을뿐더러 코인베이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USDT 대비 USDC에 대한 신뢰도와 거버넌스의 투명성은 높은 편이지만, 과거에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면서 USDC 역시 디페깅이 된 적이 있다.

USDC는 미국의 제도권 자본이 밀어주는 일종의 ‘근본 스테이블 코인’ 취급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USDT 대신 USDC의 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결과는 전혀 달랐다. 2023년 12월 6일 기준 USDT의 시총은 896억 달러로 이는 연초 대비 36% 상승한 수치이다. 반면 USDC의 시총은 243억 달러로 연초 대비 45% 하락한 수치이다.

USDT와 USDC의 시총 점유율은 각각 70%, 19%로 USDT가 USDC 대비 크게 앞서 있다.
USDT의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이 예치한 돈으로 미국채에 투자해서 이자를 취득하는 것인데, 현재의 시가 총액에 5% 이자를 적용하면 매년 앉아서 약 45억 달러를 버는 셈이다. 고금리로 인한 수익성 개선 덕분에 USDT는 기존에 제기되어온 부실 담보자산을 미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수익의 일부를 비트코인과 채굴에 투자하며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는 양상이다. 크립토 시장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USDT가 이렇게 백조로 탈바꿈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2 솔라나의 부활2022년 11월 FTX가 파산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솔라나가 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년 들어 솔라나는 멋지게 부활했다. 일단 가격을 보자. 솔라나 네트워크의 SOL 코인은 연초 대비 4배 이상 오르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승률을 크게 뛰어넘었다.

솔라나 생태계의 블루칩 NFT 프로젝트들의 가격은 더 많이 올랐다. 예를 들어 매드랩스와 클레이노사우르즈의 가격은 각각 연초 대비 9배 이상 올랐다. Defi TVL의 경우 USD 기준 연초 대비 3배 이상 올랐으나 SOL 기준으로는 플랫이다.

이더리움 생태계 대비해서 아직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모놀리틱 블록체인(합의, 실행, 데이터 가용성 등을 단일 블록체인에서 처리하는 것. 이더리움은 모듈러 블록체인) 생태계 중에서는 솔라나 개발자 생태계가 여타 체인(앱토스, 수이 등) 대비 우월한 수준이다.

또한 솔라나 재단은 크립토 생태계뿐 아니라 비자와 결제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전통 산업 시장 참여자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서구권을 중심으로 솔라나가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낙관론이 부상하고 있다. 가령 크립토 운용사 반에크는 솔라나의 가격이 최대 3211달러까지 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는데 이는 현재 가격에서 50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한때 FTX가 망하면서 솔라나도 사실상 좀비체인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1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솔라나의 가격 상승과 더불어 생태계의 성장이 지속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2023년 솔라나의 화려한 부활을 예상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3 비트코인 오디널스와 BRC-20의 부상오디널스란 비트코인의 사토시(Sat, 비트코인의 최소 기본 단위인 0.00000001 BTC)에 일련번호를 할당하여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오디널스를 통해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대체불가능한 수집품이라는 측면에서 오디널스는 일종의 비트코인 NFT로도 불린다.

BRC-20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토큰을 뜻한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기반한 ERC-20 대비 BRC-20은 스마트컨트랙트 기능이 없어 용처가 제한적이지만, 많은 유저들이 밈처럼 BRC-20토큰을 발행하고 거래하는 현상이 생겼다. 심지어 바이낸스를 비롯한 중앙화 거래소들이 ORDI와 같은 BRC-20 토큰을 상장하면서 가격 폭등을 낳았고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수수료 역시 치솟았다.

오디널스와 BRC-20은 2023년 들어 발생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시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디널스와 BRC-20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이를 긍정하는 진영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혁신의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하는 반면, 부정하는 진영은 대안 화폐로 기능해야 할 비트코인 네트워크 블록이 쓸모없는 밈으로 가득찼다고 불평한다. 이러한 논쟁이 과연 비트코인 하드포크로 이어질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2024년의 트렌드가 될 것이다. #4 친비트코인 대통령의 등장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나서서 비트코인을 옹호한 사례는 엘살바도르가 대표적이다. 엘살바도르의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는 2021년 비트코인을 법화로 지정하고 국고로 비트코인을 꾸준히 매수했다. 하지만 2022~2023년 크립토 약세장이 장기화되면서 엘살바도르가 매입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하락했고, 주류 미디어는 이를 비판했다. 그러나 2023년 4분기 들어 크립토 강세장이 실현되면서 부켈레 대통령은 엘살바도르의 투자가 성공했고, 단기간에 비트코인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한편 엘살바도르 외에도 중남미 지역에 또 다른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의외의 사건이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는 우파 경제학자이다. 정치계에서 언더도그였던 밀레이는 선거에서 역전승을 하며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공약으로 중앙은행 폐쇄, 미국 달러화 채택 등을 내세운 적 있는데 “비트코인의 목적은 민간 부문으로 돈을 되돌려주는 것이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아직 아르헨티나가 엘살바도르만큼 공격적으로 비트코인 채택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밀레이의 대통령 당선이 비트코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축통화국 미국에서 친비트코인 대통령 후보가 등장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비트코인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것이고, 비트코인으로 일부 달러의 가치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통화 주권이 없는 개도국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이 채택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대선후보가 비트코인 도입을 주창할 것이라 예견한 사람은 많이 없었다. 사실 케네디는 트럼프와 바이든 대비 언더도그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밀레이가 당선된 것처럼 대선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미국 대선은 2024년 11월에 예정되어 있다. 과연 케네디 대통령 후보는 시장의 예측을 뒤엎을 수 있을까.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