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과 처벌은 목표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더 빨리 하고 더 많이 하게 한다. 되풀이되는 업무,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는 통한다. 어렵고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일 때가 문제다. 성과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새로운 시도를 피하게 한다. 불확실성을 감당하느니 누구도 딴지 걸지 않을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특히 시간에 쫓길수록 조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져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한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기막히게 요약하고 따라 해서 인간의 생산성을 높인다. 그러나 기존에 없던 문제가 나타나면 개념화하지 못한다.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간의 창의적 사고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과거의 성과주의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인간은 스스로 하던 일도 보상이 주어지면 점차 흥미를 잃는다. 성과 보너스도 승진의 기쁨도 오래가지 못한다. 더 높은 성과 목표가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표 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역효과가 난다. 미국의 대형은행인 웰스파고의 경영진이 교차 판매 실적을 강하게 압박하자 은행원들은 고객 모르게 수백만 개의 유령 계좌를 만들고 카드를 발급해서 연회비 등을 빼냈다. 2011년에서 2016년까지 가담한 직원이 5000명을 넘을 만큼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결정하는 문화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대니얼 핑크는 저서 ‘드라이브’에서 경제적 인센티브가 전체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여러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인용해 알려준다. 에드워드 데시 교수와 리처드 라이언 교수가 정립한 자기 결정성 이론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유능해지고 있다고 지각할 때,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느낄 때 그 활동 자체가 보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당근과 채찍은 딱 그만큼 일하게 할 뿐이다.
디바로 코넬대 교수가 미국의 320개 중소기업의 조직 운영 스타일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배려한 기업들은 4배나 빠른 성장률을 보였고 이직률도 3분의 1 수준이었다. 3M의 15% 룰, 구글의 20% 타임제는 근무시간 중 일정시간은 뭐든 자유롭게 해 볼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포스트잇도, 지메일·구글 맵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리 추구를 위한 통제와 개인의 결정권 보장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개인이 주도적으로 일하면서 회사가 성장하고 성과를 내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간편 송금 서비스에서 지금은 은행, 보험, 증권으로까지 사업이 확대된 토스의 창업자 이승건 리더는 최고 수준의 자율성은 최고 수준의 정보 공유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회사가 어떤 상황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더 나은 결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1975년 방 두 개짜리 회사에서 출발해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성장한 브리지워터는 모든 구성원에게 거의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구성원 각자를 완전히 독립된 의사결정자로 보는 것이다.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비판적인 의견을 걸러내지 않는다. 모두가 합의해 가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그래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고 개인도 회사도 성장한다는 철학이다.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 사의 창업자 빌 고어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만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고어 사에는 사업부만 있고 직책자가 없다. 구성원들은 프로젝트가 뜨면 자원하고 그때마다 역할이 바뀐다.
다만 구심점이 약해져 잘못된 결정을 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수위선(Waterline)’ 원칙을 두고 있다. 배가 물에 잠겨 있는 수위선 아래에 구멍이 나면 배가 침몰할 것이다. 고어 사는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평판을 해칠 수 있는 사안은 반드시 동료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검토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주도성을 높이는 작은 변화들이 지점에서 반문할 수 있겠다. 앞의 사례들은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가 발 벗고 나섰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중간 리더 선에서 자율적인 부서, 팀을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고 느낀다.
하지만 사소한 자극으로도 구성원의 주도성은 높아진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프란체스카 지노 교수는 약 1000명의 직장인에게 4주 동안 매주 메일을 보내 특정한 행동들을 해보도록 요청했다. 참여자들은 업무프로세스를 다르게 해 보고 옷차림이나 책상 배치를 본인에 맞게 바꾸고 회의 때 솔직한 의견을 내고 자신의 약점을 신경 쓰기보다 강점을 더 발휘해 보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업무성과가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는 팀장이 업무를 지시할 때를 생각해 보자. 팀원에게 최근의 매출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 그대로만 작업해 오겠지만, 경기침체로 비용을 아껴야 해서 올해는 마케팅을 집중할 대상을 선별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매출 자료뿐 아니라 마케팅 효율을 분석하고 타깃 고객군을 뽑아올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에 머물지 않고 ‘왜’를 충분히 전달하면 팀원은 융통성이 생기고 능동적으로 일하게 된다. 스스로 선택할 범위가 넓어지니 일이 즐거워진다.
내재적으로 동기가 일어났더라도 업무 현장에 시간적인 여력이 없다면 새로운 시도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수시로 회의에 불려 가고 하루 건너 보고서를 쓰느라 에너지가 고갈된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직원에게 되돌려주면 구글의 20% 타임제, 고어 사의 ‘장난 시간(Dabble time)’과 같은 제도가 아니어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시간 낭비의 주범으로 꼽히는 고질적인 회의문화를 짚어보자. 회사는 일하는 곳이 아니라 회의하는 곳이었다는 퇴사의 변이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정보 공유하고 물어도 보고 업무 지시를 하니 열심히 일했다고 느끼겠지만 아랫사람들은 정작 일할 시간이 줄어들고 해야 할 일이 쌓인다.
영국 레딩대 헨리 비즈니스 스쿨의 벤저민 레이커 교수는 직장에서 하는 회의의 70%는 오히려 생산성을 방해하고 경험 적은 리더들이 회의를 29%나 더 많이 만든다고 밝혔다.
정보 공유는 메일이나 사내 메신저로 충분히 할 수 있다. 복잡한 논의나 갈등, 조정과 같이 대면 회의가 불가피한 경우에만 회의를 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참석해서 회의가 끝나기 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 회의 중에 한마디도 안 한 사람은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다. 회의 후에 결과만 알려주면 된다.
한국은 더 이상 선진사례를 모방하던 나라가 아니다. 만난 적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지 못한다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오히려 밀려나게 될 것이다. 자율이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보장되는 조직 문화는 몇몇 빅테크, 유니콘 기업의 실험적인 복지가 아니라 회사가 생존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기본사항이 돼야 한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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