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사업 착수 기준 ‘노후도’로 일원화, 재건축 ‘안전진단’ 장벽 사라지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사업지연 문제 지적, 소규모 정비사업 지원 계획도 밝혀

1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시 중랑구 중화2동의 모아타운 현장을 점검하고 전문가, 주민 등과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등 노후 주거지 정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대통령실
1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시 중랑구 중화2동의 모아타운 현장을 점검하고 전문가, 주민 등과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등 노후 주거지 정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모아타운(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 현장을 찾아 도심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소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이는 최근 공사비 인상과 추가분담금 상승 등으로 조합과 조합원, 시공사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수도권 주택공급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 발언인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서울 중랑구 중화2동 모아타운을 방문한 뒤 현장에서 열린 ‘도심 주택공급 현장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도심에 더 많은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재개발·재건축 사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랑구 노후 주택가 일대는 약 20년 전 서울시 뉴타운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으나, 박원순 전 시장 임기 당시 해당 사업이 해제됐다. 곧 신규 빌라들이 들어서며 재개발이 어려워졌고 일부 부지에서 모아타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모아타운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저층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모아 하나로 묶어 신속 정비하는 소규모 주택정비 사업(가로주택정비사업)이다. 기존 재개발 방식보다 사업 기한도 절반 가까이 단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 주거지를 둘러본 윤 대통령은 “이제 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주택을 편안하고 안전한 주택으로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면서 “새 집을 찾아 도시 외곽으로 갈 것이 아니라 직장 가까운 도시 내에 집을 구해 살 수 있도록 생활 환경을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실수요가 집중된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재건축과 재개발을 추진하려면 먼저 기존 주택에 대한 안전진단부터 받아 이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인정받아야 사업을 시작할 수가 있다”며 “이렇게 되다 보니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 위험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웃지 못할 상황이 또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재건축은 안전진단 D등급 이하, 재개발은 노후도와 호수밀도, 접도율 등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는 재개발·재건축의 착수 기준을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다”면서 도시정비사업 추진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고금리와 공사비 인상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한 소규모 정비사업에 대한 지원 정책도 나올 방침이다.

오세훈 시장은 모아타운 현장에서 “아마 3~4년 지나면 (신규 주택이) 집중적으로 공급이 되기 시작될 테지만 올해와 내년이 보릿고개”라면서 “지난 시장님 때 인허가 된 물량이 거의 없는 데다가 건설 원가가 너무 올라 올해와 내년은 공급되는 게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렇게 모아타운 같은 걸 통해서 계속 집을 지어줘야, 아파트도 짓고 해서 공급이 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과 오 시장은 재개발·재건축 사업 여건을 개선하고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모아타운은 물론 재개발·재건축 후보지를 적극 발굴하고, 정비사업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가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갈등 코디네이터 파견,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세입자 갈등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재정 지원과 이주비 융자를 확대해서 국민들의 거주 환경을 속도감 있게 개선하고, 정부는 국민이 각종 규제를 합리화해서 근본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얼마 전 상계주공5단지가 공사비 문제로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고 추가분담금 문제로 지연되는 현장이 생기는 등 주택시장 환경이 악화하면서 도심에 주택을 공급해야 할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의 움직임이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그동안 주택공급과 사유재산 활용을 막았던 비합리적 규제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