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큰 역할을 한 한국전력과 포항제철의 성공은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탄소경제’ 덕분이었다. 그리고 운영 측면에서 보면 ‘정부 주도’였고, 더 넓게 보면 원자재의 국제 ‘표준원가’ 정착이 큰 역할을 했다. 1961년 정부는 전력 3사를 통합해 한국전력을 발족했다. 그리고 1968년 포항제철을 설립했다.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정부는 전력회사를 발전·송전·배전(판매) 1사 체제로 갖추고 대규모 석탄발전소를 건설했다. 포항제철을 위해서는 정부예산을 최대한 절약해 싹쓸이 지원을 했다. 때마침 국제적으로 철광석과 석탄의 대량 수송이 가능해졌고, 생산지 가격도 국제 표준원가로 정착되었다. 석탄은 발전 연료이기도 하지만 철광석(Fe₂O₃)의 철(Fe)과 산소(O)를 분리하는 환원제(원료) 역할과 용광로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연료 역할을 하는 핵심 원자재다.
우리 경제의 큰 버팀목이던 탄소경제가 지구온난화 위기를 맞아 ‘수소경제’로 대전환을 시작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누가 먼저 적응하느냐는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수소경제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재생에너지로 물(H₂O)을 전기분해한 ‘그린 수소’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철강산업에서 그린 수소가 중요한 이유는 철강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H₂)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한 것이다. 자연히 일기나 기후 조건에 따라 생산(발전)이 불규칙하다. 그런데 이러한 간헐성·변동성이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산업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전력 생산과 소비를 최적으로 연결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즉 소비자가 원할 때 원하는 전기를 원하는 만큼 사용하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전기를 절약하고 한층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 막대한 그린 전기 공급 필수
간헐성·변동성 있는 재생에너지는 전기를 저장(ESS)해 소비자의 선택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지능형 개량 인프라(AMI)와 관리시스템(EMS)이 필요하다. 이러한 ESS, AMI, EMS를 활용하는 것이 스마트 그리드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전기를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한전의 전력 판매 독점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 다양한 발전 전기를 소비자의 선택에 맞추려면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업자가 전력시장에 참여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한전 독점으로는 재생에너지 수급의 유연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수요와 공급도 늘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그린 수소 생산이 불가능하고 철강의 탄소중립인 수소환원제철도 불가능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력 판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다양한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철강 기업의 탄소중립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부문별 온실가스배출량이 말해준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배출량은 7억2800만 톤이다. 이 중 발전(전환) 부문이 2억7000만 톤(37.0%), 산업 부문 2억6100만 톤(35.8%)의 39%인 1억200만 톤(전체의 14%)이 철강에서 발생한다. 즉 철강이 탄소중립을 하기 위해서는 발전과 철강 부문 3억7200만 톤(51%)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또 ‘추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달성해야 할 양이 얼마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포스코의 경우 전체 소요 전력 중 한전으로부터 구입하는 양이 15%(3.76TWh)고, 나머지 85%는 자체 발전량이다. 자체 발전량은 LNG발전 12%, 폐열회수발전 10%, 부생가스발전 63%다. 부생가스발전은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모아 발전하는 것으로 대부분 석탄을 연소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런데 수소환원제철을 하게 되면 석탄 연소가 없으므로 부생가스발전도 불가능해진다. LNG발전도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또 환원제인 석탄은 발열반응을 일으켜 용광로 내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지만, 수소는 반대로 온도를 낮추는 흡열반응이 일어난다. 쇳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 온도를 1600℃로 유지해야 하므로 수소환원을 할 때 추가로 온도를 높이는 전기도 그린 전기로 해야 한다.
포스코가 현재 사용하는 전기 중 한전에서 구입하는 3.76TWh는 원자력발전으로 환산하면 약 0.5기에 해당하는 전력이다. 수소환원제철을 하면 부생가스발전이 없어지므로 약 25TWh의 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추가로 수소흡열로 인해 저하된 용광로 온도를 높이기 위한 전기가 필요하므로 원자력발전소 3.6기+⍺ 양만큼 그린 전기가 필요해진다. 이러한 막대한 그린 전기 공급은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한전 독점(정부 주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철강 탈탄소의 어려움이다.
그린 수소 부족, 국내 쇳물 생산 불가능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국제 표준원가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철강회사들은 철광석과 석탄의 산지 출하 가격을 거의 같은 수준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수소환원제철 시대가 되면 철광석을 연·원료(그린 수소) 산지로 이동시켜 쇳물(HBI)을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그린 수소의 여건에 따라 HBI 가격은 다양해진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그린 수소 여건으로 볼 때 더 이상 국내에서 쇳물 생산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국내 철강산업 부가가치의 3분의 2가 상실되므로 ‘경쟁력 있는 한국 철강’은 사실상 힘들어진다.
세 번째 이유는 고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모든 철강회사들이 수소환원제철을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경제성 있는 제품 생산은 언제 누가 선점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그 이전 단계로 저탄소 철강 생산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재 기술로도 탄소를 약 20% 저감한 철강 생산이 가능한데, 이는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전로에서 정제할 때 ‘고철’을 투입하는 것이다. 고철을 녹이는 데는 석탄은 필요 없고 전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고철 투입량만큼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현재 고철 투입량은 약 15% 수준인데 20%까지 증대가 가능하다. 20% 이상 투입은 전로의 온도가 저하되어 불가능하므로 전로 설비 개조가 필요하다.
고철 투입을 통한 이산화탄소 저감은 세계 모든 철강회사들이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국, 일본 등 고철 수출국도 수출 여력이 줄어들고 있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 이럴 때 현재 2.1%인 국내 고철 수거율을 선진국 수준인 3% 수준까지 올리면 연간 700만 톤 정도 고철 추가 회수가 가능한데, 이 또한 법적 기준 미비로 어렵다. 내년부터 고철은 순환자원으로 인정돼 폐기물 관리 대상 품목에서는 제외되지만, 여전히 제조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금융이나 공장 입지에 제한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 지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유럽연합(EU)은 총예산 2조 유로 중 30%(853조원)를 그린딜 실행에 배정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에 360억 달러(47조원, 2022~2030년)를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부터 저탄소 기술개발을 위해 2조7000억 엔(180억 달러, 23조원)의 녹색 혁신(GI) 기금을 마련했다. 녹색 전환(GX) 법안에 따라 향후 10년간 20조 엔(130억 달러, 17조원)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은 2030년까지 저탄소·친환경 철강에 1410억원(1억300만 달러), 수소환원철강 R&D에 향후 3년간 270억원(2000만 달러)을 투자할 계획이다.
수소경제는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원과 규제개혁을 통한 민간 전력시장의 활성화가 핵심이다. 고철 자원화 또한 정부의 의지 문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pentagram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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