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으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도록 한 '대환대출 인프라' 대상에 아파트 주탁담보대출이 추가된 9일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된 ATM 앞에서 구동한 대출 비교 플랫폼 모습. /연합뉴스
비대면으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도록 한 '대환대출 인프라' 대상에 아파트 주탁담보대출이 추가된 9일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된 ATM 앞에서 구동한 대출 비교 플랫폼 모습. /연합뉴스
한국투자금융은 2016년 카카오뱅크에 투자했다. 카카오뱅크가 설립됐을 당시 인터넷은행이란 존재가 없었고 은행과 산업을 분리하는 규제 때문에 카카오가 은행을 설립할 수 없었다. 이때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한국투자금융지주 지분은 50%가 넘었다. 여전히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와 같은 지분율(27.17%)을 보유한 대주주다. 한국투자금융이 카카오뱅크 설립의 백기사로 나선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시장의 가치를 높게 봤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투자금융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카카오뱅크가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차지할 점유율에 가장 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가 편의성과 낮은 금리로 경쟁한다면 엄청난 시장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관측은 들어맞았다. 나흘 만에 1조원 자 이동
"337만원 아꼈다"…하루 만에 '완판' 주담대 환승 경쟁 본격화
연초부터 1000조원 규모의 주담대 갈아타기 전쟁이 벌어졌다. 1월 9일부터 10억원 이하 아파트 주담대를 받은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게 되자, 주담대 자금이 대이동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12일 서비스가 개시된 지 나흘 만에 1조원대의 이동 신청이 이뤄졌다. 금액으로는 1조 307억원 수준이었다.

주담대 갈아타기의 경우 자주가 갈아탈 대출을 신청한 후 해당 금융회사에서 약 2~7영업일간 대출 심사를 진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이동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뱅크는 서비스를 연 지 하루 만에 대환대출 취급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연 3%대 낮은 금리와 ‘제로 수수료’를 내걸어 막대한 규모의 주담대 금융 소비자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대출 갈아타기 시 소비자가 내야 하는 수수료가 없는 금융사는 카카오뱅크가 유일하다.

이는 카카오뱅크의 독보적인 수신조달 역량에 기반한다. 카카오뱅크의 2023년 3분기 실적자료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저원가성 예금 비중은 약 56.9%로, 은행권 전체 평균 38.3%에 비해 훨씬 높다. 조달비용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카카오뱅크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제로~마이너스 가산금리를 적용하며 이용자 확보에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기준 카카오뱅크의 여신 잔액은 37조1000억원으로 1년 전(27조5000억원)보다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주담대 잔고는 8조원으로 직전 분기(5조5000억원) 대비 2조5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타 은행 대출에서 카카오뱅크 주담대로 대환한 잔고가 2조9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증가하며 전체 잔액 내 비중이 51%를 기록했다. 은행권 내 카카오뱅크의 시장점유율도 1%에서 1.4%로 뛰었다. 금리를 낮추고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선 전략이 통한 것이다.

고객 유지에 비상이 걸린 시중은행들도 변동금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금리인하에 나섰다. 10일 기준 5대 은행의 평균 대환용 주담대 금리는 3.73%로 은행권의 주담대 잔액기준 평균 금리(지난해 11월 기준)인 4.30%보다 0.57%포인트 낮았다.

같은 기간 주담대 변동금리의 준거금리로 작용하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3.97%에서 4.0%로 소폭 상승했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낮추며 저금리로 제공하고 있다. 대출금리를 정할 때는 준거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다. 가산금리는 은행의 ‘영업비밀’로 통한다.

은행별로 가산금리 기준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통상 업무원가, 리스크 관리 비용, 목표이익률 등을 포함해 가산금리를 정한다. 준거금리는 기준금리와 코픽스 등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은행이 이자 수익으로 얻을 수 있는 대출 이익은 가산금리로 결정된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낮췄다는 것은 곧 마진은 포기하고 시장 선점에 나섰다는 얘기다.

KB국민은행은 모바일앱 전용 상품인 ‘KB 스타 아파트담보대출’을 대환 상품으로 운영 중이다. 신용카드, 자동이체, 예금 관련 이용 실적 등과 관련 없이 3.68% 단일금리(10일 기준, 혼합형)가 적용된다. 특히 시장금리보다도 낮다. 전날 혼합형 금리의 기준금리로 쓰이는 5년만기 은행채의 금리는 3.816%다. KB국민은행은 자체 기준금리에서 가산금리를 ‘마이너스 0.12%포인트’ 적용했다. 조달금리보다 대출금리를 낮춰서라도 고객을 끌어 오겠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은행별로 ‘대환용 주담대’ 혼합형 금리를 △신한은행 3.69% △하나은행 3.666% △우리은행 3.83% △NH농협은행 3.77%로 제시했다. 하나은행은 주력 상품인 하나원큐아파트론의 최저금리(3.676%)보다 금리가 낮다. 수도권 주담대 비중 높은 시중은행, 고객 뺏길까
"337만원 아꼈다"…하루 만에 '완판' 주담대 환승 경쟁 본격화
은행권이 주담대 ‘환승전쟁’에 나선 이유는 고객 유지와 동시에 가계부채 관리 규제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대환대출은 신규 가계대출이 아니라 기존에 받은 대출금이 이동하는 것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에 칼을 빼든 만큼 신규 대출은 은행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대환대출은 가계부채 관리 규제에 대한 부담이 적다.

인터넷은행과 시중은행이 주담대 대환대출에 집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잔액만 1000조원이 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95조126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37조원 늘었다.

은행만 이 경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대환대출 플랫폼 운영사는 플랫폼사 7개와 금융사 16개가 참여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금융 플랫폼은 앞다퉈 주담대 대출 금리와 수수료를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역할은 은행과는 다르다. 플랫폼사는 연계된 금융사들의 상품을 조회하고 비교하고 금융사를 연결해주는 기능만 제공한다. 실제 대출의 대환은 기존 금융사에서 다른 금융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는 구조다. 카카오페이는 가장 많은 금융사(11개)와 제휴했고, 네이버페이는 6개 시중은행(신한·우리·하나·NH농협·IBK기업·SC제일은행)과 제휴해 가장 많은 시중은행과 손잡았다. 온라인 대환대출이 가능한 대상 주택은 KB 시세가 있는 아파트로, 대출 한도는 타행에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잔액 이내에서 최대 10억원이다. 단 기존에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잔액 내에서만 갈아타기가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1월 31일부터 전세대출까지 인프라를 확대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대환대출 플랫폼이 금융사보다는 플랫폼사에 더 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은행의 저금리 경쟁을 촉발하는 만큼 은행은 마진이 줄어들 수 있지만, 플랫폼사는 이용자를 확보해 다른 서비스나 수익원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부 은행들의 경우 일부 마진을 희생하더라도 주담대 잔액을 높이는 게 메리트가 있다면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며 “특히 시중은행은 주담대 및 전세대출 시장 내에서 점유율이 높고 수도권 지역의 비중이 높은 만큼 고객 유지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