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시한폭탄' ELS, 중국 주가 부양책으로 숨통 트일까
“증시가 반토막이 나지 않는다면 최대 6% 이자를 보장한다.”

증시에서 우량기업만 묶은 주가지수가 반토막 날 확률은 낮다. 이런 조건으로 최대 6% 이자를 보장하는 상품은 솔깃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는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은 대부분 투자처가 은행이라는 걸 믿고 베팅했다.

‘설마 홍콩 증시가 반토막 나겠어?’ 그런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2021년 최고 1만2000을 넘겼던 H지수가 올해 5000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1월에는 장중 4943.24까지 떨어지면서 심리적 지지선마저 무너졌다.

H지수가 높던 2021년 발행한 홍콩 ELS의 3년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기준 금융권의 홍콩 ELS 총 판매잔액은 19조3000억원. 대부분 은행에서 팔렸다. 이 중 80%가 올해 만기를 맞는다. 홍콩 ELS가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 만기가 몰려 있다. H지수가 반등하지 못하면 올 상반기 투자자 원금 손실액은 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은행도 좌불안석이다. 금융당국이 판매사에 대한 고강도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 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 검사를 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어떤 창구에서 판매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의 실질에 맞는 것인지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이후 농협, 하나, 국민, 신한 등 은행 4곳이 ELS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은행권은 추후 상황을 보고 판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ELS가 뭐길래?ELS는 말 그대로 주가와 연계한 금융 파생 상품이다. 기초자산으로 하는 지수나 종목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된다. 개별 종목은 주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 S&P500, 유로스톡스50, 홍콩H지수, 코스피200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지수형 ELS가 대부분이다.

만기와 기대수익률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채권처럼 안정적인 것 같지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조건은 하한선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다. 약속한 기간에 지수가 하한선(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주가 기준)을 뚫고 내려가지 않으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예를 들어 S&P5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3년 만기 상품의 녹인 구간이 45%인 경우 3년 내 S&P500 지수가 현재의 45% 이하 수준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확률에 베팅하는 것이다.

ELS는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 상환 기회를 준다. 하지만 만약 만기가 되는 3년째까지 마지막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지수 하락폭만큼의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H지수, 왜 폭락했나?중국의 경기 둔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50개 중국 기업들로 구성된 항셍중국기업지수다. 2021년까지는 상한선을 그렸지만 중국 정부가 부동산·플랫폼(기업)·사교육 규제를 강화하면서 고꾸라졌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과 빅테크 기업을 때려잡자 외국인 투자자들마저 이탈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증시 부양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위안(약 372조원)의 증시안정화기금을 조성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홍콩 ELS에 늦게 가입한 투자자라면 기다리는 전략이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중국 정부의 부양책에 따라 지수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하반기는 H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의 시가총액 관리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했다”며 “국유기업이 먼저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우량자산 주입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 민영기업 역시 국유기업들의 추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어 홍콩 증시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 파생상품 판매 다시 도마 위에홍콩 ELS 판매는 은행에서 가장 많이 이뤄졌지만 설계와 발행은 증권사에서 한다. ELS는 증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 중 하나다.

ELS를 발행해 모은 돈으로 채권에 투자하고 코스피선물을 산다. 선물을 사면 적은 비용으로 주가지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이렇게 보유한 자산의 가치와 ELS 평가가치 간의 차이를 유지시켜 수익을 낸다. 은행은 증권사 대신 ELS를 판매해 수수료를 챙긴다.

비(非)이자 수익에 속하는 수수료는 은행에 중요한 수익원이다. 이자 변동성이 커지고 있고, 정부에서도 은행권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고 있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비이자 수익 확대가 절실하다.

하지만 고위험에 속하는 파생상품을 은행에서 판매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매년 나오고 있다. 2016년 홍콩 ELS 사태, 2019년 DLF 사태, 2019~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때도 같은 논란이 반복됐다. 금융 당국은 2019년에도 사모형 신탁 등 은행의 금리·주가 연계상품 판매를 금지시키려 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비이자 수익을 늘려야 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며 “공모형 ELS는 팔게 해달라”고 반발했다.

대신 금융당국은 은행별로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한도를 설정했다. “2019년 11월 말 신탁 잔액 계정을 초과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을 팔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 결과 당시 DLF 사태를 비껴간 국민은행이 홍콩 ELS는 가장 많이 팔았다. ELS 피해자, 모두 배상받을 수 있을까
30일 국회 소통관에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이 국회의원들에게 보낼 탄원서가 놓여 있다./한국경제
30일 국회 소통관에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이 국회의원들에게 보낼 탄원서가 놓여 있다./한국경제
“자기책임 원칙하에 투자한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적합성, 설명의무 위반은 각각의 쟁점으로 따로 봐야 한다. 일방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이번 사안을 두고 한 말이다. 자본시장에서 상품 운용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모두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쟁점이 있다. 판매처가 제대로 된 설명을 이행하지 않았고, 투자자가 고령자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안정형 투자를 원하는 은행 소비자에게 고위험 상품을 제시하는 게 맞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투자자 대부분이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을 재투자하려고 했는데, 직원이 ELS를 권유했다고 주장한다. 손실 위험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이해 없이 ELS에 가입했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불완전판매’ 여부가 배상의 쟁점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60대 이상 고령층 대상 판매 과정에서 은행원의 부당한 판매 사실이 없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홍콩 ELS는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가 30.5%에 달한다.

은행들의 내부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은행들이 직원들 성과를 평가할 때 고위험 상품 판매 실적에 30∼40% 이상을 배점해 사실상 ELS 판매를 부추겨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 은행원 개인의 비위까지 적발됐다.

국민은행에서 ELS 담당 직원이 증권사들로부터 15차례나 골프 접대를 받아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10명 중 9명이 재가입자?판매사도 할 말은 있다. 2021년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라 당시 시중은행 예금금리는 1%대였다. 이때 2~3%를 제시하는 ELS 금융상품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ELS는 십수 년간 대체로 큰 탈 없이 약정 수익률을 내왔다”며 “물론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재가입자가 대부분이고 그동안 조기 상환을 통해 수익률을 챙긴 투자자들마저 ‘무슨 상품인지 모르고 투자했다’고 말하며 배상만을 요구하니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실제 홍콩 ELS 투자자 10명 중 9명(91.4%)이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있는 가입자였다. 재가입자의 경우 상품 구조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여겨져 불완전 판매가 온전히 인정되기 쉽지 않다. 독일 국채금리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재가입자는 5~10% 정도 낮은 배상 비율을 적용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은행이 실제 불완전판매를 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다른 사안과의 구제 형평성도 따져봐야 한다”며 “하지만 금융 당국이 강한 기조로 나오고 있는 만큼 DLF 때처럼 비율에 차등을 둔 배상이 이뤄질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