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절대 부족 VS 상대적 분배 문제, 양측 주장 평행선
‘타협설’ 음모론이라지만…의료공백·의대쏠림 등 부작용 ‘적신호’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법 집단행동 주동자는 구속수사 하겠다.”

2월 21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의료계 단체행동에 대한 합동 브리핑에서 내놓은 경고다. 의대 정원 증원 여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평행선을 그으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이 서로 앞다퉈 강수를 두며 사태는 해소되기 어려워만 보인다.

의사 집단의 반발에도 정부가 물러서지 않으면서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을 이어가고 있다. 2월 넷째 주 들어 그 수는 수천 명에 달했다.

특히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공백이 점차 현실화하자 정부는 즉각 압박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근무지 이탈이 확인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있다. ‘의료대란’ 공포에 국민 여론도 의사들에게서 돌아서며 정부에 유리해지는 분위기다. 이에 정부 대응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의료계에선 양측이 결국 타협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총선용 음모론’이라는 주장도 제기하지만 상황은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결국 증원 인원이 조정되리라는 것이다. 절대 vs 상대, 숫자 둘러싼 대립
2월 20일 밤 방영된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쟁점은 명확히 나타났다. 의대생 증원이 필수의료 및 지방의료진 확충에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의대 증원 충돌…의료대란 오나’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 등 의대 증원 찬성 측은 ‘효과가 있다’는 취지에서 “한국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명보다 적다는 것이다.

유정민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팀장은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부분도 있고 이렇다 보니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이 인력들이 수도권에 모두 집중하고 있다”며 “이미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공백으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고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급증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도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주당 80시간 일한다”며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 데 전공의들이 80시간 일하느냐”고 발언했다. 즉 절대적인 의사 수 부족이 인원 분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반면 반대 측은 제도와 의료 접근성 측면에서 의사 수를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 국민들의 평균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로 OCE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OECD 평균의 2.5배 수준으로 의료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환자 재배분, 의사 재배분 문제가 급선무이지 의대 증원이 급선무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의료시스템을 보유한 일본과 대만 모두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적다”고 설명했다.

특히 의사단체 대부분이 속한 반대 측은 일명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 불리는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사 부족 현상의 원인을 시스템 문제로 보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의 근로 강도나 위험도에 비해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재훈 교수는 “필수의료 공백은 격차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의 경제적·법적 위험성 격차가 그 원인인데 이는 공급보단 배분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갈등
파업 인원은 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월 20일 기준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총 8816명으로 전체의 71.2%에 달한다. 19일과 20일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 수는 전국 의대생 인원의 43.8%인 8753명이다. 그 수는 앞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방송 토론회는 서로의 입장 차를 드러냈을 뿐 갈등을 풀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 간 감정의 골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일부 의사들은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정부, 여당과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했지만 자신들의 입장이 이번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지난해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등 여당 주요 인사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정치권과 정부 측에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의료진의 의견과 해결방안을 조목조목 전달했다”며 “이번에 나온 정부 정책은 당시 전달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지난 2월 1일 의료개혁 민생토론회가 열린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필수의료 관련 의견을 전달하려다 체포됐다.

정부 및 의료 관계자들의 발언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2월 20일 오전 열린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정책 근거자료가 된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대해 “여성 의사 비율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도 가정해 다 집어넣어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의료계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한국여자의사회와 이화여대 의대 학생회가 해당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서울대 의대 출신 여의사 모임인 함춘여자의사회는 박 차관을 고발할 방침까지 밝혔다. 신문 1면에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 김윤 교수를 저격하는 듯한 의협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김윤 교수가 방송 토론회에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35세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4억”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 온라인상에선 “사실무근”, “제자가 돈을 잘 버는 게 배가 아프시냐” 등 의사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파업에 따른 의료공백과 이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무청은 사직서를 내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전공의가 국외여행허가를 신청하면 일단 보류하고 본청에 명단을 보내라고 지방청에 지시했다. 병무청은 각 지방청에 “의무사관후보생(전공의)의 국외여행허가 지침을 보다 세분화해 운영한다”면서 사직서를 낸 전공의에 대해서도 수련 중인 전공의와 마찬가지로 소속기관장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의협은 “병무청은 중범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발령되는 출국금지 명령이나 다름없는 공문을 보냈다”고 반발했다.

2월 21일에는 법무부와 행안부 장관이 나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불법집단행동을 주도하는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며 “복귀를 거부하는 개별 전공의에 대해선 재판에 회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의대 블랙홀 심화, 양측 대화 나설까
이처럼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곧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에 나서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의대 증원에 대해 “비현실적인 증원 규모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이걸 조정하는 척하면서 표를 가져가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 이 같은 음모론이 번지자 윤 대통령은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 규모”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에 나서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부작용은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운영 첫날인 2월 19일 하루 동안 입원 지연, 수술 취소 등 총 103건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였던 2020년에 이어 4년 만에 의사 파업이 재개되자 의사단체에 대한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일부 댓글은 “국민 생명을 담보로 자기이익을 우선시한다”며 의사들을 비난하고 있다.

의대 증원 기대감에 의대 블랙홀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서울대 자연계열 정시모집 합격자 769명 중 21.3%인 164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전년의 두 배 수준이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정시모집에선 모집인원의 220%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추가합격까지 포함해 합격자 55명이 입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월 19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소속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들은 “지난 1월 9일 본 협회가 2025학년도 입학에 반영할 증원 규모로 제안했던 350명과 큰 괴리가 있다”며 증원 재조정을 요구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 인사들은 전공의들에게 의료현장 복귀를, 정부에는 의사 인력 확대 규모 재검토를 요청하고 나섰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학마다 갑자기 증원된 의대생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현재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손볼 곳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결국 양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