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에서 강력한 지도자로
군사원조·위기타파 극복 과제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편을 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2년간 이어지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자국 군인 3만1000명이 전사했다고 밝힌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미래가 서방의 지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대선에서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결의 인물로 ‘인민의 종’이라는 시트콤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선입견으로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무명의 젤렌스키에 대한 평판은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진 2022년을 기점으로 그는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에서 강력한 지도자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다. 혼돈스러운 전쟁 상황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행보로 서방의 무기 지원을 성사시키고 막강한 국방력을 지닌 러시아의 푸틴을 상대로 유연하게 대처하며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예로 2020년 1월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이 격추 사고임을 알고도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확보를 위해 발표를 늦췄던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CNN에서는 젤렌스키가 처칠보다 더 비현실적인 영웅이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평가절하됐지만 침공 예고일에도 도피하지 않고 자국에 남아 지금까지 항전 의지를 일관적으로 고취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젤렌스키의 이미지 브랜딩을 ABC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5월 29일 방탄조끼를 입고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하르키우에서 군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5월 29일 방탄조끼를 입고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하르키우에서 군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A(Appearance)
국민 마음 하나로 모으는 방탄조끼, 국방색 패션정치 파워


젤렌스키가 국방색 옷을 입는 것은 군대와의 단결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그가 국가의 군사적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군인은 물론 국민과 함께 서 있다는 결속력 메시지를 전달한다.

군부대에서 협찬받은 국방색(육군 군복의 빛깔. 카키색이나 옅은 초록빛) 티셔츠가 무려 20개나 있다고 전해지는 그는 유럽·영국·미국 의회 연설에서도 격식 있는 정장이 아닌 평범한 티셔츠를 입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의 의상 선택에 대해 일부는 매너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의 복장이 오히려 우크라이나 자국민에 대한 존중과 충성의 표시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의 패션은 전쟁의 고통을 국민과 공유한다는 의미로 애국심의 상징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정장은 전쟁이 끝나면 입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그의 벙커 집무실 안쪽에는 군복만 가득했다. 정장 대신 티셔츠나 후드티를 착용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평등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전달하는 젤렌스키는 탁월한 이미지 전략가로 분석된다.

대통령이 국방색 옷을 입고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군대 내의 동기 부여와 의욕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패션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패션정치 파워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패션지 보그가 촬영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의 화보. 사진=보그
패션지 보그가 촬영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의 화보. 사진=보그
B(Behavior)
패션 잡지 화보촬영 논란 vs 전쟁 트라우마 극복 방안


최근 젤렌스키의 유튜브를 통해 그가 우크라이나 영웅들에게 수령 증서를 수여하는 영상을 봤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우크라이나 영웅 가족들과 일일이 눈 맞추며 악수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태도에서 영웅에 대한 감사함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최근 기자회견에서는 전쟁 상황을 설명하다가 참담한 표정으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내외는 미국 패션 잡지 ‘보그’의 화보를 함께 찍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보그가 올린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미국의 한 기자는 그들의 보그 촬영을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평가절하하며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반면에 보그 촬영을 통해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직접 세계에 알리고 트라우마를 겪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행동이라고 맞서는 의견도 있다. 젤렌스키의 정치적인 경험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그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충분히 엄격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치에 진심을 담고 있는 태도를 통해 러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옹호하는 리더십에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고 분석된다.

C(Communication)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는 대통령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가 남긴 인상적인 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는 말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2022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죽는 게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내겐 (도망가는 차를)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며 함께 싸울 의지를 표명했다. 어린아이의 눈을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그것이 자신이 우크라이나인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강단 있게 말한 바 있다.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의사소통은 명확하고 존중적인 의사 전달과 열린 소통으로 국민을 동기부여하고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소통법에는 국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명확함과 직접적이고 솔직한 것이 특장점이라고 분석된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자국군 사망자는 푸틴이 말한 숫자가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유럽이 약속한 포탄 100만 발 중 30%밖에 못 받았다고 밝히며 서방의 지원을 요청하는 그의 말에 투명성과 간절함이 배어 있다고 해석된다.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나는 내 초상화를 여러분들 사무실에 걸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우상 그리고 초상으로 삼는 대상이 아니다. 대신 여러분의 자식들 사진을 걸어놓고 매사 결정에 앞서 바라봐라.”

2019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가 한 말이다. 자국 군대가 열세함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자신한 그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군사원조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2023년 12월 12일 워싱턴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023년 12월 12일 워싱턴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정치인 이미지 생명은 바로 ‘진정성’

러시아를 상대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는 젤렌스키의 행동은 용기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행동이 꾸준했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미지 메이킹으로 국민을 한두 번 속일 수는 있어도 유지하기는 어렵다.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국민이 그 정보를 모두 인지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더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접하는 개별적인 정보들을 처리한다. 국민에게 각인된 정치인의 이미지는 국민의 태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도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각 후보의 이미지 브랜딩 전략은 점점 더 다양하고 구체화되고 있지만, 그 바탕에 ‘진성성’이 담기지 않는다면 국민의 배신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 실패로 부족한 군사원조 등으로 더욱 위태로워진 가운데 젤렌스키 리더십이 이 위기를 어떻게 타파해나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