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가상 콘셉트 이미지. 사진=한국경제신문
애플카 가상 콘셉트 이미지. 사진=한국경제신문
애플이 100조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10년간 공들여 온 전기차(EV) '애플카' 개발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원인으로는 애플의 전략 방향에 맞는 차량 개발·제조 역량 확보 실패가 지목됐다.

김성래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월 29일 보고서를 통해 애플의 애플카 프로젝트 실패 배경을 "완성차 산업의 특성상 애플의 차별화된 디자인·성능 구현과 낮은 공급가격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간 애플은 상대적으로 제조원가가 낮으면서 자사의 혁신적 디자인·설계 역량을 구현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공급망을 보유한 중국 등 신흥국의 현지 업체를 적극 활용해 위탁생산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애플이 아이폰과 맥북 등 자사 제품의 생산을 폭스콘, 콴타컴퓨터 등에 맡기고 있는 만큼 업계에선 전기차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시도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김 애널리스트는 "애플카 또한 우수한 전기차 플랫폼 설계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애플만의 차별화된 디자인·설계 기술을 독점적으로 구현할 업체를 수배해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애플은 기아를 비롯해 LG, 닛산 등 아시아의 유수 업체와 차량 하드웨어 개발 및 제조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타진해왔다.

그는 "하지만 애플카 연구개발·생산을 위한 별도 조직과 전용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요구하는 건, 대량 양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는 완성차 산업 특성상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애플의 차별화 요구 기능뿐만 아니라 차량 안전 등 기본 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1만5000개 이상의 부품조합과 최적의 메커니즘의 구현이 전제돼야 한다"며 "시장성 확보를 위해서는 여타 모델간 차량 플랫폼과 부품 공용화·표준화가 가능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애플카 프로젝트가 불발되면서 신규 업체들의 모빌리티 시장 진입 장벽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정보통신기술(ICT)·빅테크 기업들의 강점인 소프트웨어 역량을 활용해 차량 운영체제(OS) 구현과 자율주행 기술 개발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애플카 프로젝트 중단으로 이런 기대감은 다소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애플은 지난 10년간 차량 개발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데이터를 '애플 카플레이'(자체 운영체제와 차량을 통합한 커넥티드카 서비스) 기능 고도화에 활용, 차량제어 및 모바일 앱의 차량 연동으로 관련 서비스를 확장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예상했다.

앞서 2월 2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이 전기차를 연구해온 조직인 '프로젝트 타이탄(애플카)'에 참여하고 있는 2000여명의 직원 중 일부를 인공지능(AI) 부서로 재배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지난 10년간 애플카 프로젝트를 위해 100억 달러 이상(13조원 규모)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연합뉴스
AI 경쟁 뒤처진 애플…생성형 AI에 집중

애플은 애플카 프로젝트를 접고 생성형 AI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월 28일(현지 시간) 열린 주주총회에서 "생성형 AI가 놀라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여기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 중이며 연내 생성형 AI 관련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동안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에 생성형 AI를 탑재하는 등 업계에 AI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친 가운데 애플은 경쟁사들보다 AI 분야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AI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선보인 이후 갤럭시 S24를 필두로 AI 중심 스마트폰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4'에서도 AI 스마트폰이 최대 화두였다. 특히 샤오미, 아너, 오포 등 중화권 스마트폰 업체들은 구체적인 AI 스마트폰 출시 계획을 밝히면서 AI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 구글, 메타 등은 앞다퉈 생성형 AI와 이를 접목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애플은 이렇다 할 AI 기술을 내놓지 못했다.

애플이 AI 경쟁에서 후발주자가 되는 사이 수년간 유지해 왔던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자리도 AI를 앞세운 MS에 내준 상태다.

애플은 오는 6월 열리는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생성형 AI 기능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애플이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6에 AI 기능이 탑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