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툰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EMR에 따르면 한국 웹툰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5억4000만 달러(약 2조463억원)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2024년부터 2032년까지 18.2%로 성장해 2032년에는 69억2000만 달러(약 9조1950억원)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에는 웹툰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미디어 믹스(media mix)가 뜨고 있다. 미디어 믹스란 ‘미디어 산업에서 IP를 소설, 웹툰, 만화, 영화, 게임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웹툰 경험자 3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만화·웹툰 이용자의 다른 분야 선호도는 애니메이션이 59.4%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방송 41.3%, 영화 35.3%, 음악 31.7%, 출판 14.6%, 소셜미디어 14.5%, 게임 13.3% 순이었다. 2차 저작물과 관련해 원작 웹툰 팬들은 애니메이션을 가장 반긴다고 풀이된다. 스토리는 한국이 짜고 영상 제작은 일본이 웹툰 기반 미디어 믹스 가운데서도 주목받는 트렌드는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이 중 대표 격은 추공 작가의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최약체 헌터 성진우가 우연한 계기로 능력을 성장시키며 강한 인물로 거듭나는 내용이다. 원작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웹툰은 누적 조회수 143억 회를 기록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소드 아트 온라인’, ‘청의 엑소시스트’, ‘페어리테일’ 등을 맡았던 에이픽처스(A-1 Pictures)가 담당했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은 지난 1월 7일 1화를 공개했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는 월간 2억5000만 명 이상의 고유 방문자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인기 있는 TV쇼’ 차트를 내놓는다. 2월 20일 기준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는 75위를 기록했다. IMDb는 ‘원피스’가 당시 70위인 점을 감안했을 때 ‘나 혼자만 레벨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표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런치롤에서 별 4.9점을 받았다. 이는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과 같은 평점이다. 크런치롤은 1000만 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 1억2000만 명 이상의 무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애니메이션화로 인해 원작 재유입도 늘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의하면 국내 카카오페이지 기준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 조회수는 애니메이션화 소식이 알려진 이후 2023년 11월 대비 올 2월에 약 750% 증가했다. 웹소설의 경우 같은 기간 조회수는 약 600% 늘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IP를 보유한 디앤씨미디어 주가는 작년 12월 15일 최저점인 2만2250원에서 1월 24일 3만8600원으로 올라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작으론 박태준 작가의 ‘싸움독학’도 일본 현지에서 애니로 제작된다. ‘싸움독학’은 네이버웹툰을 통해 2019년 11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학원 액션 장르 웹툰이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 유호빈이 스스로 SNS에 올라온 싸움 강의를 독학하며 강해지는 내용이다. 2월 11일 일본 영화 순위 사이트 ‘에이가닷컴’은 웹툰 ‘싸움독학’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4월부터 방영된다고 밝혔다. ‘음양대전기’, ‘얏타맨’(2008년판), ‘프리티리듬’ 등을 감독한 히시다 마사카즈가 연출을 맡는다. 韓 애니메이션 산업의 한계도 드러나 한국의 스토리와 일본의 영상 제작 노하우가 힘을 모아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끈다는 점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국내 커뮤니티에서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도 직접 영상을 제작할 수 없다는 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 IP가 일본에서 애니화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본력, 즉 시장 규모다. 일본동화협회(AJA)에 의하면 2021년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시장 규모는 2조7422억 엔(약 24조4800억원)으로 2020년보다 113.3% 커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2019년 대비 96.5% 성장해 2조4261억 엔을 기록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경우 2021년 매출액은 75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30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웹툰 산업이 성장한 만큼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육성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거대한 시장 규모 때문이다. 독일 데이터 회사 스태티스타에 의하면 2030년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5871억 달러(약 7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OTT의 등장 이후 애니메이션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애니메이션산업 백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OTT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미국의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 가입자 수는 1년 동안 30% 늘었다.
미국 넷플릭스 이용자 중 약 74%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청한다. 그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자 수는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넷플릭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협력을 통한 작품 제작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는 뉴욕에서 열린 UBS 콘퍼런스에서 올해 장편 애니메이션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2024년 프로그래밍 콘텐츠에 약 170억 달러(약 22조5887억원)를 지출한다. 이는 2023년 130억 달러 대비 30% 증가했다. 사란도스는 넷플릭스가 장편 애니메이션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분석회사 닐슨 자료에 의하면 넷플릭스에서 현재 가장 많이 본 영화 10편 가운데 8편이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만드는 데 높은 비용과 오랜 기간이 수반되므로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민간투자가 소극적이다. 투자비 회수의 불확실성이 큰 탓으로 분석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1~2025 애니메이션산업 진흥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2011~2025년 8월까지 운영되는 애니메이션·캐릭터 전문 펀드 결성액은 총 1338억원이다. 그중 정부출자 금액은 810억원, 민간출자는 528억원이다.
업계에 따르면 유통구조도 TV 중심으로 돌아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한국 애니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에 한국 내에서 K팝이나 드라마, 영화 등 다른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제작 다양성도 비교적 떨어진다. 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기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23 애니메이션산업백서'에 따르면 2022년 최초 공개 애니메이션 작품 중 지상파에 편성된 애니메이션 38개 중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유아 및 어린이용이다.
윤소희 인턴기자 ys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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