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항공기/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항공기/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이 공중분해되고 있습니다. 알짜 사업인 화물이 떨어져 나가고 유럽 노선도 떨어져 나가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사업이 축소되고 있어요. 대한항공이 인수한다고 나선 영향인데요. 뭔가 잘 이해가 안 가지 않습니까. 두 회사가 합친다면 공중분해가 아니라 눈덩이처럼 커져야 할 것 같은데요. 이론적으론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럼, 이렇게 분해된 아시아나항공을 사는 게 이득인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대한항공은 다 분해되고 재만 남는다고 해도 목숨 걸고 사겠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항공의 셈법은 무엇인지 막장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고 나선 것은 2020년 11월이었어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난리가 났던 시기였죠. 다 어려웠지만 항공사가 특히 힘들었어요. 비행기가 아예 뜨질 못했으니까요. 아시아나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해체되면서 채권단, 그러니까 산업은행 같은 은행 관리 아래에 있었어요. 한바탕 빚잔치를 크게 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대한항공은 돈 많아서 아시아나항공 산다고 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어요. 대한항공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은행들이 큰 맘 먹고 빌린 돈 내놓으라고 하면 금세 부도날 수도 있었어요. 더구나 대한항공은 경영권 분쟁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조양호 회장이 2019년에 돌아가시고, 그 장남인 조원태 회장이 막 경영권을 잡았는데요. 여기에 반발해서 누나인 조현아, 지금은 이름을 조승연으로 바꿨는데요. 조승연 전 부사장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항공도 스스로 앞가림을 못 하긴 마찬가지였어요.

두 회사를 합친다는 구상은 산업은행을 앞세운 정부가 한 것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은 최대 채권자, 그러니까 빚쟁이였죠. 두 회사 다 그냥 두면 망할 것 같기도 했고, 또 실제로 망하면 빌려준 돈이 아시아나항공만 3조6000억원이나 되는데, 이 돈 다 떼일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또 항공은 국가 기간산업인데,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었고요.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해낸 게 합친다는 겁니다.

그림은 이래요. 우선 대한항공의 모기업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넣어주고요. 이 8000억원은 주식이랑 교환사채 같은 건데요. 어쨌든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대주주가 되는 것이고요. 한진칼은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서 7300억원을 넣어주고요. 대한항공은 이 돈 7300억원과 다른 주주들에게 받은 돈 합쳐서 총 2조5000억원을 만들고요.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대한항공이 들어가서 지분 60%가량을 확보해요. 그러고 나선 두 회사를 합병하면 ‘메가 항공사 탄생’이 되는 겁니다.

이건 시작 때부터 논란이 많았어요. 국민 세금으로 조원태 회장을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게 해주고, 여기에 더해 아시아나항공까지 몰아줘서 초대형 국적 항공사를 안겨 주는 꼴이잖아요. 물론 산업은행도 나름 논리는 있었는데요.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한다면 가장 이 산업에 대해 잘 아는 대한항공이 하는 게 맞고, 조원태 회장은 어쨌든 조양호 회장의 후계자이고, 그래서 가장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다고 봤어요. 또 아시아나항공 그냥 두면 망해서 없어질 텐데 그럴 바엔 대한항공에 주는 게 낫다는 식의 논리를 펼칩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합병 작업은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기업과 기업을 합칠 땐 그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해당 국가에서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주로 보는 게 노선을 독점하고 있는지 여부예요. 다른 항공사는 안 다니고 대한항공, 아시아나 두 곳만 다니는 노선이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죠. 만약 이런 상황인데도 승인받고 싶다 하면요. 슬롯이란 걸 내놔야 합니다. 슬롯은 시간당 비행기가 이륙, 착륙할 수 있는 횟수를 말하죠. 이걸 반납하면 다른 항공사가 가져가서 경쟁이 벌어집니다.
공중 분해되는 아시아나…대한항공, 애초에 이 작전이었어?[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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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과정에서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심사받을 땐 프랑크푸르트,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노선의 슬롯을 내놓으란 요구를 받았어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이 노선에선 2024년 3월 기준으로 총 44개 슬롯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아시아나 슬롯만 매출로 환산하면 연간 약 6000억원에 달합니다. 이 알짜 슬롯 일부를 받기로 한 곳이 바로 티웨이항공이죠. 티웨이항공은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장거리 노선을 해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대한항공이 어떻게 했냐면요. 비행기 빌려주고 승무원 빌려주고, 심지어 정비사까지 빌려주기로 했어요. 이런 식으로 대한항공이 내놓은 슬롯이 영국에선 7개, 중국에선 49개에 달합니다.

이것만 해도 간, 쓸개 다 빼준 꼴인데 여기에 더해서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부도 매물로 내놨어요. 화물 사업부는 2023년 4분기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하는데요. 코로나가 한창일 땐 이 비중이 50%를 넘기기도 했어요. 사람은 비행기로 안 다녔지만 화물은 엄청 다녔거든요. 매출이 잘 나오면 연 3조원, 잘 안 나와도 1조원 이상 하는 큰 사업이에요.

이 사업은 전망도 좋습니다. 요즘 중국 온라인쇼핑몰 많이 쓰시죠.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쉐인 같은 앱이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폭발적으로 이용량이 늘고 있는데요. 그래서 항공기 화물 물동량도 그만큼 늘고 있습니다. 알리, 테무 같은 해외 직구 화물 비중이 대한항공에선 2023년 기준으로 13%까지 올라갔어요. 이게 2019년엔 4%에 불과했습니다. 보잉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이 2023년 6조3000억 달러에서 2026년 8조1000억 달러로 크게 성장할 전망입니다.

알짜 슬롯 빼주고 알짜 화물 빼주고. 이쯤 하면 인수를 포기할 법도 한데요. 근데 조원태 회장은 합병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서 더 의지를 불태웠어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을 지원해 준 조건이 뭐였나요. 아시아나항공 인수였잖아요. 경영권 지켜주고 대한항공 살려주고, 여기에 더해 아시아나항공도 준다는데 ‘아시아나항공은 그냥 안 살게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만약 중간에 포기하면 2020년 11월에 했던 ‘딜’은 깨지는 것이니까요.

2024년 3월 기준으로 조원태 회장 지분은 5.7%밖에 안 되고요. 어머니 이명희 씨 등등 다 긁어 모아도 18% 정도입니다. 여기에 조원태 회장 편 들어준 산업은행이 10%가량 들고 있고 국민연금도 정부 지분으로 분류한다면 15%가 넘어가요. 그런데 산업은행과 정부가 돌아서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이 불안해질 수 있어요. 지분 14% 넘게 보유한 델타에어, 11% 보유한 호반건설도 있는데 이들은 상황에 따라 입장이 바뀔 수도 있고요.

또 하나는 대한항공 입장에서 아시아나항공을 가져갈 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공중분해시키는 것도 나쁠 건 없어요. 아시아나를 인수하나 공중분해시키거나 대한항공이 독점하는 건 비슷하죠.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이런 저가항공은 대한항공과 체급이 안 맞고요. 한국에서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가 아시아나뿐인데, 남이 가져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어쨌든 막는 데 성공한 것이죠. 이렇게 다 분해시켜 놓으면 나중에 다시 팔려고 산업은행이 내놓아도 살 곳이 없을 겁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남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쳐지면 소비자에겐 좋은가. 당연히 안 좋습니다. 시장경제가 작동하고 경쟁이 생겨야 좋은 것이죠. 대한항공이 시장을 장악하면 경쟁은 약해질 것이고 그럼 항공료는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걸 우려한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에 기업결합 조건으로 가격을 맘대로 올리지 못한다는 조항을 넣었대요. 근데 비행기 티켓 가격은 일정하지 않거든요. 주가처럼 매일, 매시간 계속 바뀌니까 정가란 게 없어요. 한마디로 가격을 올려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마일리지도 문제인데요. 항공사 입장에선 다 부채로 잡히죠. 2023년 9월 말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장부상 이연수익이라고 하는데요. 약 9500억원이나 합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마일리지만 떠안으면 1조원 가까운 빚이 새로 생기는 셈이죠. 이걸 어떻게 해서든 줄이고 싶어 할 겁니다. 교환 비율을 대한항공 1대, 아시아나 0.8.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어요.

결국 조원태 회장에겐 꽃놀이패가 쥐어진 셈인데요. 이 패를 어떻게 활용할지 함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