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개인화된 AI 디바이스 통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 제공으로 앱 종말론 촉발

AI 디바이스, 앱 생태계를 재정의하다[테크트렌드]
2008년 등장한 애플 앱스토어는 아이폰에 깔려 있는 앱(application)을 통해 음식 배달부터 여행 예약, 은행 송금, 택시 호출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로부터 약 16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앱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AI를 장착한 AI 디바이스(device)이다.

AI 디바이스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앱을 우회하거나 심지어는 앱 자체를 없애며 우리들에게 직관적이고 개인화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대형언어모델인 LLM(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한 생성형 AI 덕분이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말하는 자연어를 인식해 음성만으로도 기존의 앱이나 서비스를 구동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존 스마트폰에서 익숙했던 앱 대신 생성형 AI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음성을 통해 필요한 정보와 기능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AI 기기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앱이 없는 AI 디바이스 출현앱이 없는 대표적인 AI 디바이스는 우선 2023년 11월에 선보인 휴메인(Humane)의 AI핀(Pin)이다. AI핀은 옷에 부착 가능한 정사각형 모양의 웨어러블 기기로 스마트폰 화면이나 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녹색 레이저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손바닥이나 주변 표면에 정보를 투사하여 음성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AI가 디바이스에 탑재되어 사용자의 습관을 학습하고 그에 기반해 사용자 니즈에 맞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전화 걸기, 문자 보내기, 일정관리, 음악 재생 등 다양한 이용자 요청을 처리한다.

올초 선보인 래빗 R1(Rabbit R1)도 앱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AI 디바이스이다. 2024년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자가전시회(CES)에 처음 소개된 래빗 R1은 사용자가 디지털 서비스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간소화하도록 설계된 포켓 사이즈 크기의 휴대용 AI 에이전트(agent)다.

이 작은 AI 디바이스는 모든 종류의 작업을 자연어로 처리하며 사용자가 지시하면 바로 앱을 구동시킨다. 2.88인치 터치스크린,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위한 회전식 카메라, 주변을 탐색하거나 장치에 내장된 보조기와 대화하기 위한 스크롤휠과 버튼을 장착했다.

래빗 R1은 공개한 지 하루 만에 1만 대가 팔리는 등 인기몰이를 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래빗 R1이 이처럼 관심을 끈 이유는 기술적인 사양이나 서비스 제공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대규모행동모델인 LAM(Large Action Model 또는 Large Agentic Model)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기능을 강화한 앱 없는 AI 기기 부상대규모행동모델, 즉 LAM은 대규모언어모델(LLM)과 행동모델을 결합하여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고 이에 맞는 작업을 수행하는 AI 모델이다. 인간의 언어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는 LLM과 달리 LAM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상황에 맞는 작업을 자율적으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일정관리, 음악 재생, 알람 설정 등의 다양한 이용자 요청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LAM은 또한 사물인터넷(IoT) 기기 등 외부 시스템과의 통합을 통해 현실 세계와 상호 작용한다. 이를 위해 래빗 R1은 36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화상통화나 물체인식 기능을 통해 물건을 인지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LAM은 무엇보다 LLM을 에이전트로 전환하여 스스로 작업을 실행해 설정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자체적으로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에이전트가 되도록 언어모델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LAM에 의해 작동되는 또 다른 사례로는 지난 2월에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도이치텔레콤이 소개한 AI 스마트폰이 있다. 소위 앱 없는 AI폰으로 불리는 이 혁신적인 AI 디바이스는 도이치텔레콤이 퀄컴과 AI 스타트업 브레인에이아이와 제휴하여 사용자 행동 패턴을 학습해 앱 대신 AI를 통해 작동시키는 LAM에 기반한다.

이 새로운 AI 스마트폰 개념의 핵심은 사용자 목표를 이해하고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AI에이전트 또는 개인 비서 역할에 있다. 즉 앱 없이 AI 에이전트에 명령을 내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방식이다. 앱에서 AI 에이전트로 진화하는 AI 디바이스의 미래우리가 현재 스마트폰에서 이용하는 수많은 앱은 그 편리함과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이용하고자 하는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해당 앱이 늘어나고 사용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시장조사컨설팅 업체인 IDC의 분석가 프란시스코 제로니모는 앱이 적을수록 휴대전화는 더 좋아진다고 앱의 한계를 빗대어 말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앱보다는 다른 형태의 이용자 경험, 예를 들어 챗봇(chatbot) 형태로 AI 기능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챗봇도 AI 기능을 일부 구현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 앱으로 사용이 제한되며 일반적으로 특정 단어를 쓰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만 개입한다.

실제로 구글 어시스턴트나 애플의 시리는 한때 스마트폰이 개인 에이전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휴가철에 해외여행 관련 문의를 하면 기존 챗봇은 예산에 맞는 호텔만 알려주는 정도다.

하지만 최근 생성형 AI를 탑재한 AI 에이전트는 기존의 챗봇과는 차이가 있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앱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서 말하는 AI 에이전트는 자연어에 반응하고 사용자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주어진 목표에 따라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율도가 높은 AI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이러한 AI 에이전트는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일정과 장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종 결재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자율적인 처리가 가능하다.

따라서 AI 에이전트를 탑재한 AI폰은 기존처럼 특정 서비스를 받기 위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앱들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터치해서 구동시킬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원하는 바를 일상 언어로 말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AI 디바이스들이 당장 기존의 앱 기반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존 스마트폰의 사용자 경험을 바꿀 게임체인저로서의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5년 안에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AI 기반 개인 에이전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빌 게이츠도 최근 “가까운 미래에 AI는 우리가 컴퓨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컴퓨터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직관적이며 개인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현재의 스마트폰에서 구동되는 수많은 앱들이 혁신적인 AI 에이전트를 탑재한 AI 디바이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