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세금에 단기 시세차익 없어, 투자수요는 상가·공장으로
서울 신축·준신축 낙찰가율, 재건축보다 높아
특히 집값 하락과 금리인상 여파로 주택경기 호황기에 인기를 끌었던 수도권 아파트 경매에서 투자자들이 썰물 빠지듯 빠졌다.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와 각종 세금도 이들의 진입을 막는 요소였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를 낙찰받아도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대출이 쉽고 투자수익이 높은 수도권 상가나 공장 등으로 눈을 돌렸다.
이처럼 투자수요가 빠진 자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내집 마련’을 희망하는 실수요가 채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때 주춤하던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회복되고 있다. 동시에 실수요가 선호하는 새 아파트가 투자자 위주의 재건축 아파트 대비 높은 가격에 주인을 찾는 추세다. 고금리에 바뀐 경매 트렌드 경매 전문 플랫폼 지지옥션에 따르면 법원 경매 진행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전세사기 여파에 시달리던 다세대와 주거용 오피스텔은 물론 아파트와 공장, 상가 경매도 늘었다. 경매 진행건수에는 지난번 유찰돼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최저입찰가가 나오는 경매 건도 포함된다.
이 중 투자자들이 주목한 분야는 상가, 근린시설과 공장 등이다. 경매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다. 특히 총량제가 적용돼 희소성이 높은 수도권 공장은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서울, 경기도, 인천광역시 등 수도권 지역에 한 해 시행되고 있는 공장총량제로 인해 신규 공장이 허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전 경매 전문가인 정상열 천자봉플러스 대표는 “규제와 대출 문제로 인해 요즘 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수강생은 거의 없다”며 “이미 투자자들은 대출이 잘 나오는 근린상가나 공장에 많이 들어갔고 주택 중에서는 추후 꼬마빌딩 등으로 신축이 가능한 다가구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주춤하던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올해 들어 회복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30% 전후에 머물던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올해 1월 41.52%로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으로 40%를 웃돌았다.
지난해 7월 낙찰률은 42.55%로 높은 편이었지만 이때 진행된 경매건수는 141건으로 이 중 60건이 낙찰됐다. 그런데 올해 1월 경매에는 무려 277건이 나와 115건이 주인을 찾았다. 2월에도 193건이 경매에 나와 36.79%인 71건이 낙찰됐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격을 나타내는 낙찰가율(매각가율) 역시 올해 1월 85.02%, 2월 86.64%로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두루 높아졌다. 1회 유찰된 ‘가성비’ 아파트 인기 최근 인기가 많은 서울 아파트 물건은 실수요 선호도가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 투자자들이 떠난 자리를 실수요가 채우고 있는 셈이다. 재건축 투자에 집중됐던 경매 응찰자들의 관심이 새 아파트로 돌아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3월 20일 지지옥션 ‘조회수 TOP 50’(누적 기준) 물건에는 입지가 좋은 준강남급 신축 또는 신축에 가까운 2000년대 입주 아파트가 다수 포함됐다.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 리버뷰자이’(2018년 사용승인, 동부2계 2022 타경 1439), 동작구 상도동 ‘e편한세상 상도노빌리티’(2018년 사용승인, 중앙1계 2022 타경 109811),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2008년 사용승인, 동부3계 2022 타경 54860) 등이다.
실제 서울 한강변 주요 자치구의 매각 사례를 보면 같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회 유찰되며 최저입찰가가 떨어진 신축급 중소형 아파트 경쟁률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1월 30일 용산구 이촌동 소재 ‘동부센트레빌’ 전용면적 100.92㎡는 지난해 12월 열린 경매가 한 차례 유찰되면서 최저입찰가가 감정가인 19억원에서 15억2000만원으로 떨어지자 응찰자가 17명 몰렸다. 결국 17억4000만원을 쓴 응찰자가 주인이 됐다. 최근 실거래가격이 19억5000만원이므로 2억원가량 저렴하게 장만한 셈이다.
성동구에선 올해 1월 왕십리 ‘센트라스’ 전용면적 60㎡가 감정가 90%인 11억435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감정가는 12억7000만원이었으나 이 물건 역시 경매가 1회 유찰되면서 최저입찰가가 10억1600만원으로 떨어지자 응찰자가 9명 몰렸다. 2월에는 ‘텐즈힐’ 전용면적 전용 84.90㎡도 1회 유찰된 끝에 열린 두 번째 경매에서 13억3379만원에 낙찰됐다.
가장 매각이 활발하게 이뤄진 곳은 맞벌이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마포구였다. 3월 20일 기준 올해 총 25건 중 실제 경매가 진행된 14건 모두 높은 매각가율에 낙찰자를 찾았다. 이 중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59.92㎡가 감정가 102% 가격인 12억7199만원에 매각됐고 성산동 ‘월드컵아이파크’는 94.32㎡ 타입이 감정가 9억9700만원의 93%인 9억3199만원에 낙찰됐다. 월드컵아이파크도 한 차례 유찰되며 응찰 경쟁률이 15대 1을 기록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투자보다는 실거주 수요에 가까운 응찰자가 늘면서 최근 경매에 나온 서울 신축급 아파트는 감정가보다 평균 10%, 재건축 아파트는 20% 낮은 수준에 낙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 일부 지역과 목동은 사정이 다르다. 강남구 압구정,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은 재건축 아파트가 다수 밀집했지만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돼 주택 매입 시 실거주 의무가 아직 남아 있다. 이에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재건축 아파트가 희소한 투자처로서 인기가 높은 상황이다.
지난 2월 목동6단지 전용면적 47.9㎡가 감정가의 108%인 12억6399만원에 낙찰됐다. 유찰 없이 첫 경매에 응찰자 10명이 몰렸다. 지난 1월 같은 양천구 내 신월동 재건축 아파트인 ‘신월 시영’이 76% 낙찰가율에 매각된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1월 9일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전용면적 147.7㎡도 감정가 38억1000만원의 106% 수준인 40억5100만원에 낙찰됐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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